[DT현장] 직무·성과급제가 필요한 이유

2023. 2. 13.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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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희 산업부 재계팀장

30대 직장인 A씨는 대학 졸업 후 2년간 꼬박 공부한 끝에 7급 공무원이 됐다. 하지만 1년 6개월 만에 사직서를 던지고 나와 최근 IT기업에 개발자로 입사했다. 코딩을 배우면서 취준생으로 보낸 시간도 꽤 길었지만,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그 정도의 시간과 노력은 투자할 만했다고 그는 말한다.

A씨가 꿈꿔왔던 공무원 생활을 접은 데는 복합적인 영향이 작용했다. 가장 결정적으로 그의 마음을 흔든 건 '공정의 결여'였다고 한다. 그는 "성과에 따른 보상을 기대할 수 없는 조직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나보다 편하게 일하는 상사가 훨씬 많은 것을 누리는 걸 보는 게 매번 화가 났었다"고 말했다.

A씨의 사례는 공무원 집단뿐 아니라 대·중소기업 등에 종사하는 일반 직장인들에게서도 종종 들리는 얘기다. "조직 안에서 성장하기 위해 충실히 일했지만 그에 따른 성과가 크든 작든 돌아오는 건 똑같더라 " "발품 팔아 열심히 조사해 보고했더니 칭찬은 숟가락 얹은 선배만 받았다" 등 예나 지금이나 직장에서의 불합리한 경험은 만연하다.

과거엔 직장생활의 당연한 과정으로 받아들여야만 했던 이 같은 상황들이 이젠 더 이상 당연하지 않게 됐다. 산업구조가 빠르게 변하면서 사회의 예측가능성이 떨어져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진 지 오래다. 또 직장생활의 질을 중시하는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 개인에게 큰 비중을 차지한다.

연공(여러 해 일한 공로)을 토대로 정해지는 호봉제를 비롯한 현재 고용·노동 체제가 지난 70년 동안 유지되다 보니 변화하는 사회를 반영하지 못해 직장에 대한 충성도, 업무에 대한 헌신도·책임감이 소용없어졌다. 10여 년 전에 등장해 요즘도 흔히 쓰이는 단어인 '월급 루팡'(성과 없이 월급만 꼬박꼬박 챙겨 가는 직원)도 더 이상 연공형 임금체계가 이 사회와 맞지 않다는 걸 지적한다.

요즘 MZ세대 사이에선 최소한의 일만 하는 태도를 뜻하는 '조용한 사직'이 공감을 사고 있다. 받는 만큼만 일 하고 나머지 시간과 에너지는 자기계발에 투자하겠다는 마인드로, 실천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구인구직 매칭 플랫폼 사람인의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의 70%가 '딱 월급 받는 만큼만 일하면 된다'고 답했다. 61.4%는 '열심히 일한 만큼 월급이 오르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회사는 늘 월급보다 높은 성과를 요구한다'고 응답한 직장인은 89.7%에 달했다. 특히 각종 수행평가, 시험 등을 통해 '내가 한 만큼의 성과 보상'을 당연하게 경험한 젊은 세대의 응답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현 정부는 "하는 일의 중요도나 가치가 다르면 임금도 달라야 하고, 같은 일을 하는 경우 성과를 더 많이 낸 사람이 임금을 더 받아야 한다"며 강도 높은 노동 개혁에 나섰다. 지난 2일에는 임금체계 개편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상생임금위원회를 발족했다. 연공형 호봉제를 직무·성과 중심으로 전환한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임금 체계·방식은 노사 논의를 거쳐 기업이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부는 임금체계를 개편한 기업을 지원하는 방안을 상생임금위에서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경영계는 우리 기업들의 직무·성과 중심 임금체계로의 개편을 위해 임금체계 개편 시 반드시 노조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임금체계 개편절차의 경직성'을 해소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노동계는 "노동시장 양극화의 주된 원인은 임금체계가 아니라 재벌중심 경제체제인데 노조 탓만 한다"고 맞선 상황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직무·성과급제가 임금으로 대표되는 노동시장 양극화를 해소하는 데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직무성과급은 임금을 줄이거나 적게 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직무급은 직무 가치에 의해 기본급이 결정되며 직무 가치는 그 일을 잘 하는 데 필요한 경험이나 숙련 정도가 고려된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이해를 바탕으로 경영계와 노동계가 공감대를 형성하는 게 중요하다고 짚었다.

이제 방향은 정해졌다. 대대적인 개혁에 나선 만큼 정부는 시대와 상황, 기업 사정에 맞는 임금체계가 갖춰질 수 있도록 현실적이고 실행 가능한 '방법'을 신중하게 내놓아야 한다. 직무와 성과 중심의 임금체계로의 전환 시 각기 다른 노사의 선호와 이해를 취합하고 조정하기 위한 노사정의 적극적 역할이 기대된다.

박은희 산업부 재계팀장 ehpark@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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