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트랜지스터 75년, 반도체 75년

정예린 2023. 2. 13.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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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성 고려대 교수

대상을 단순히 두 가지로 분류하는 이른바 이분법은 단순성 때문에 가능하면 피해야 할 논리적 기법으로 간주된다. 흑백논리라는 식이다. 하지만 복잡하고 골치 아픈 현대 생활에 때로는 명료함이 주는 은근한 쾌감이 있다. 이런 이분법은 어떤가. '인류 역사는 반도체가 없던 시대와 있는 시대로 나뉜다.'

기왕 단순화를 하는 김에 반도체의 역사와 트랜지스터의 역사를 등식으로 놓아 보자. 물론 트랜지스터의 발명 이전에도 반도체가 존재했고, 이 흥미로운 물질에 대해 꽤나 알려졌지만 트랜지스터의 구조를 통해 반도체의 물질 특성이 비로소 그 진가를 발휘하게 되었기에 이 등식이 큰 무리는 아니다.

이 세상에 반도체가 있고 없고의 경계가 대략 75년 전이다. 좀 더 정확하게는 1947년 12월 미국 벨 연구소의 두 과학자 존 바딘과 월터 브래튼에 의해 트랜지스터가 발명됐다. 그 특허가 출원된 것이 이듬해인 1948년 6월이었고 해당 결과를 정리한 논문이 같은 해 7월에 출간되었으니 75년 전 꼭 이맘때 반도체 혁명이 숨가쁘게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은 트랜지스터 발명의 공로로 1956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게 된다. 그런데 이 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명단에는 또 하나의 이름이 올라 있다. 윌리엄 쇼클리다. 쇼클리는 이들 두 과학자의 팀 리더로서 벨 연구소의 트랜지스터 개발 프로젝트를 주도한 인물이다. 정작 세계 첫 트랜지스터를 다룬 기념비적인 논문과 특허에는 그의 이름이 빠져 있다. 제작 과정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 국내에서도 강조되는 엄격한 논문 저자 포함 원칙에 의거한다면 기특한 모범사례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쇼클리는 이것이 못내 섭섭했다. 다행히도 그의 아쉬움은 긍정의 동기 부여로 이어진다.

즉 그는 독자적으로 새로운 형태의 트랜지스터를 고안해 냄으로써 이에 대응했다. 바딘과 브래튼의 소자는 점접촉식이라 불리는 형태인데 쇼클리의 소자는 접합방식 구조를 택하고 있다. 세부 동작 원리로 보면 차이가 꽤 나지만 결국 산업 현장에 채택된 구조는 쇼클리의 방식이었다. 지금까지도 널리 사용되고 있는 '바이폴러 접합 트랜지스터'(BJT)가 바로 그것이다. 노벨상을 세 명이 공동 수상하게 된 연유이다.

반도체 개발은 1960년대 들어 또 하나의 중요한 전환점을 맞게 된다. 여기에는 한국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강대원 박사다. 그는 벨 연구소의 동료 마틴 아탈라와 모스펫(MOSFET)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트랜지스터를 개발했다. 현재 대부분의 반도체 칩이 기반으로 하고 있는 상보형금속산화반도체(CMOS) 공정의 기본 소자가 바로 모스펫이다. 반도체 역사의 흐름을 규정한 핵심 기술인 것이다.

최근 한국반도체학술대회의 논문 대상이 강대원상으로 명명되는 등 국내에서 그를 기리는 움직임이 있는데 늦었지만 다행스런 일이다.

반도체의 성능 향상은 이들 기념비적 발명 이후로 수십년 동안 꾸준히 이루어져 왔다. 주로 소자 크기를 줄이는 스케일링이 주요 방식이었으나 CMOS의 경우 최근 부쩍 구조적 변혁이 동반되고 있다. 모스펫의 기본 동작은 두 전극 사이를 이동하는 전자의 흐름을 중간에 위치한 게이트라는 전극이 제어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주로 14 나노 공정부터 적용된 FinFET(핀펫)은 이 게이트 전극을 전자가 흐르는 통로의 기존 한쪽 측면이 아닌 양쪽 측면에 배치함으로써 성능을 향상시킨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이 FinFET의 원천 특허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최근 삼성전자에서 3나노 공정에 과감하게 도입한 게이트올어라운드(GAA) 소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전자 통로를 게이트 전극이 완전히 둘러싸는 형태이다. 상하좌우 모든 방향에서 전자 흐름의 제어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한층 개선된 성능을 보일 수 있다. 단지 기존 소자는 물론 FinFET보다도 복잡한 구조여서 제작 난도가 높다. 이 기술을 완성해서 높은 수율을 먼저 확보하는 기업이 앞으로 반도체 개발의 주도권을 거머쥘 공산이 높다.

현재 10나노 이하의 첨단 반도체 공정 기술을 확보한 국가는 한국·대만·미국 단 3개국뿐이다. 방향은 다르지만 국가 전략 기술이라는 공통분모를 둔 핵 보유국은 북한을 포함하는 경우 9개국이다. 첨단 반도체 기술의 희소성이 더 강한 것이다. 핵 기술 개발은 국제 규약의 제약을 받지만 반도체 기술 개발은 국내 법규의 제약을 받고 있다. 전자는 풀기 어렵지만 후자는 풀기 쉽다. 단지 규제 완화를 향한 정부의 의지가 있을 때다. 이런 이분법은 어떤가. '지구상의 국가는 첨단 반도체 기술 보유국과 미보유국으로 나뉜다.'

이재성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한국전자파학회 부회장 jsrieh@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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