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간 회의 한번 안한 곳 수두룩 … '좀비위원회 방지법' 국회서 낮잠

우제윤 기자(jywoo@mk.co.kr), 홍혜진 기자(honghong@mk.co.kr), 전경운 기자(jeon@mk.co.kr) 2023. 2. 13.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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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원회 운영 5년 이내로 제한
일종의 '좀비예방법' 내놨지만
국회 행안위서 통과않고 보류
野 간사는 논의 약속 나몰라라
e스포츠진흥자문위 11년 동안
회의는커녕 구성도 안된 '유령'

◆ 세금 축내는 위원회 ◆

e스포츠진흥자문위원회는 2012년 e스포츠진흥법 제정과 함께 탄생했다. 급속도로 커지는 e스포츠 시장 활성화를 위해 만들어진 이 조직은 업계에서는 유명하다. 권한과 역할이 커서가 아니다. 11년간 위원회가 단 한 번도 구성조차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활동은 전혀 하지 않으면서도 법상으로는 살아 있는 이른바 '좀비 위원회'인 셈이다.

이 위원회는 문재인 정부 당시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실질적 운영이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근거 조항 폐지에 나섰다가 업계 반발 등으로 법이 통과되지 않아 살아남았다. 이후 황희 장관이 위원회를 구성해보려고 했으나 결국 실패했다. 한번 만들어진 위원회를 없애기가 얼마나 힘든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이처럼 상당수 정부 위원회는 일단 만들어진 뒤에는 역할이 있으나 마나 한데도 이름과 조직만 유지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정부 위원회 616개 중 19%인 117개가 2022년 단 한 차례도 본회의를 열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일부는 서면회의나 분과회의는 열었지만, 위원회 전체회의가 없었다는 것은 중요 안건은 전혀 논의하지 않았다는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정부 부처 위원회에 여러 번 참여한 한 인사는 "참여했던 위원회 중 '밥값을 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알찬 논의를 한 곳은 3분의 1 정도에 불과했다"며 "실제 회의를 열지 않고 서면으로 갈음하는 사례도 많았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이 같은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자 작년 9월 말 국회에 제출한 것이 '행정기관 소속 위원회의 설치·운영에 관한 법' 개정안이다. 행정기관의 장이 설치하는 모든 행정위원회나 자문위원회 운영기간이 5년을 넘길 수 없게 하고 2년마다 존속 여부를 점검하는 게 골자다. 기존에는 '한시적으로 운영될 필요가 있는' 행정위원회와 '계속해서 존치시켜야 할 명백한 사유가 없는' 자문위원회에만 일몰제를 적용했지만 이를 모든 행정·자문위원회로 확대하는 것이다. 만약 존속 기한 연장이 필요하면 행안부 장관과 사전 협의를 거쳐 법령을 개정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가급적 기한이 연장되지 않도록 해 5년이 지나면 위원회가 없어지게 한다는 취지다. 앞으로 좀비 위원회들이 만들어지지 않도록 하는 예방법인 셈이다.

하지만 이 법안은 작년 11월 30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에 처음 상정됐으나 더불어민주당 의원 한마디에 막힌 채 잠자고 있다.

국회 속기록에 따르면 1소위원장이었던 김교흥 민주당 의원은 이 법안에 대해 "내일 (3+3 협의체에서) 협의하기로 돼 있다"며 통과 대신 보류를 결정했다. 3+3 협의체는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정책위의장, 원내수석부대표, 행안위 간사까지 6명이 모인 협의체로 정부조직법 개정안과 공공기관장 임기와 대통령 임기를 일치시키는 내용의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 개정안을 논의하기 위한 일종의 태스크포스(TF) 조직이다.

당황한 한창섭 행안부 차관이 "협의체에서 위원회 관련 논의는 없다"고 항변했으나 김교흥 1소위원장은 "관련법이다. 오래 걸리지 않는다. 내일 협의한다"고 몰아붙여 결국 보류시켰다.

그러나 3+3 협의체에서 해당 법안에 대한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행안위 여당 간사인 이만희 국민의힘 의원은 매일경제와의 통화에서 "협의체에서는 정부조직법과 공운법에 대해 논의했다"며 "위원회 얘기는 일언반구도 없었다"고 반박했다.

이후 여야 간 대치가 이어지고 3+3 협의체 논의가 지지부진하면서 이 법안은 아직도 제대로 다뤄지지 않고 있다. 행안위 야당 간사인 김교흥 1소위원장은 "이태원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활동으로 논의가 지체됐다"며 "3+3 협의체에서 정부조직법과 함께 논의될 것"이라고 말했다.

예방법뿐 아니라 현재 정부가 제출한 32건의 일괄 개정안도 거의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 중 9건은 전체회의에서 안건으로 선정되지 못해 국회 상임위 법안심사소위에 회부조차 되지 않았다. 절반이 넘는 18건은 법안심사소위에 회부만 됐을 뿐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행안위 법안심사소위에 상정된 2건은 김교흥 1소위원장이 심사를 보류시켰다.

국회에서 심도 있게 논의한 사례는 극소수다. 통일부 소속 '납북피해자 보상 및 지원 심의위원회'의 경우 새로 발생한 납북 피해자가 거의 없어 위원회 기능은 없지만 위원회 자체를 폐지하는 것은 재고해야 된다는 이명수 국민의힘 의원 등의 반대로 폐지 법안이 통과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우후죽순 늘어나는 위원회에 대한 수술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박정수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는 "역대 정부가 초기에는 위원회를 줄이고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슬금슬금 늘리는 패턴을 보여왔다"며 "행정부처가 위원회에서 어떤 도움을 받았는지 정량·정성적으로 평가해 국회에 보고하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회의 시간, 빈도, 논의 성과, 정책적 기여도 등을 평가 항목으로 들었다.

위원회가 내실 있게 운영되려면 위원회 회의 내용을 공개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한 행정전문가는 "위원회 위원이 회의에서 한 발언을 공개하면 좀 더 책임감 있고 진지하게 임할 수 있을 것"이라며 "정치적 편향성 논란도 잠재우는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우제윤 기자 / 홍혜진 기자 / 전경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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