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알퍼의 영국통신] 달콤하고 기묘한 기념일, 밸런타인데이

2023. 2. 13.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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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욕 강조하려던 의도와 달리
돈으로 사랑 증명하는 날 변질
【게티이미지뱅크】

한국에서 살았던 때가 그리워지는 시기 중 하나는 밸런타인데이다. 2월 14일 여성이 먼저 남성에게 선물을 주는 풍속은 여성에게는 불공평하지만 남성에게는 상대적으로 큰 이익이다. 우리는 화이트데이까지 아내, 여자친구가 우리에게 얼마나 투자했나를 생각하고 거기에 상응하는 가격의 선물을 하면 그만이다.

이제 나는 화이트데이가 존재하지 않는 영국으로 돌아왔다. 요즘 영국에서는 나의 유년 시절과는 매우 다른 방식으로 밸런타인데이를 기념한다. 1980년대의 밸런타인데이에는 오직 여자들만이 초콜릿 상자나 꽃다발과 같은 선물을 받았다. 아버지가 '당신의 비밀스러운 숭배자' 혹은 '?' 등의 이름으로 필체를 숨기기 위해 종종 왼손으로 어머니에게 카드를 쓰던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영국의 밸런타인데이는 성탄절, 핼러윈처럼 미국식 상업주의의 침투를 받아왔다. 상점들은 남성들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돈을 더 많이 쓸수록, 그녀는 당신을 더욱 사랑하게 될 것이다." 남녀평등이 강조되는 시대에 더 이상 남성만이 여성에게 선물을 주지 않는다. 여성 또한 남성에게 물질적으로 자신의 사랑을 보여준다.

올해 주얼리 브랜드들은 남성들에게 마케팅 초점을 맞춘 듯하다. 내가 지나친 한 주얼리 상점은 '매달 새로운 펜던트를 추가할 수 있기 때문에 올해의 최고 연인상을 받기에 충분할 것'이라며 펜던트가 달린 팔찌를 주력 상품으로 홍보하고 있었다. 또한 일간지에 실린 광고성 기사에는 '꽃은 시들고 초콜릿은 먹으면 없어지지만 보석은 영원히 남아 있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반면 많은 여성들은 연인들의 심장 박동 수를 높일 수 있는 의상에 투자를 한다. 또 다른 광고성 기사는 난방비를 지출하지 않고 실내 온도를 높일 수 있는 방법으로 란제리 아이템을 소개하며 생활비의 위기를 맞고 있는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밸런타인데이의 기원 또한 오늘날의 밸런타인데이 풍속만큼이나 기이하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 2월 중순은 봄이 시작되는 시기로 고대 부족들은 다산과 풍요를 위한 축제로 2월 13~14일께 새들의 짝짓기 기간을 기념하곤 했다. 후에 이 축제는 로마의 루페르칼리아 축제로 변형되었는데 동물의 가죽으로 여자를 때리며 다산을 기원하는 다소 기괴한 축제였다.

초기 가톨릭 교회는 성탄절이나 부활절에 그랬던 것처럼 밸런타인데이에 그리스도교의 이미지를 심어 토속신앙적인 모습을 없애고자 했다. 이로써 동물 가죽으로 때리는 풍습 대신 클라우디우스 2세 황제에 의해 2월 14일에 순교를 당한 성 발렌티누스가 등장하게 되었다.

복음을 전파하며 금욕적이고 경건한 삶을 살았던 발렌티누스는 아마도 자신의 이름을 내건 기념일이 소비주의적이고 향락적인 축제로 변질된 것에 기함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가장 별난 기념일인 밸런타인데이의 수많은 기이한 점의 하나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팀 알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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