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돌초’로 풍성해진 해산물…2월 ‘보신여행’은 이곳으로 [함영훈의 멋·맛·쉼]

2023. 2. 13.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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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변 드라마 '폭풍속으로' 촬영지.
2월 하순 축제가 열리는 후포항.

[헤럴드경제(경북 울진)=함영훈 선임기자] 울진 대게는 ‘국가핵심가치 바다숲’ 1호로 지정된 왕돌초에서 산다. 백두대간과 평행으로 달리는 140리 물속 산맥이다. 가장 건강한 대게과 붉은 대게, 임연수어, 미역 등엔 수중낙원이다.

울진군민이 제철 대게 조업이 허용된 늦겨울, 가성비 높은 축제 준비에 한창이다. 봉평장의 허생원이 떠들었듯, 날이면 날마다 오는 축제가 아닌 것은 맞다.

사람들은 누구나 허허벌판에 살기보다는 산과 들, 계곡이 어우러진 곳을 좋아하는데 수중생물들도 그런 듯하다. 왕돌초는 물속에 낮은 구릉, 높은 산, 기암괴석, 계곡, 평지가 파란만장하게 조성됐으니 살기도 좋고 놀기도 참 좋았으리라.

대게 원조마을 조형물.
수중생물의 낙원 ‘왕돌초’…덕분에 울진엔 대게가 풍성
수중산맥 왕돌해산 지형도.

왕돌초 물속 산맥은 후포항에서 동해바다로 23㎞ 떨어진 곳에 남북으로 54㎞나 길게 형성돼 있다. ‘국가핵심가치 바다숲’이니 수생동물, 해초가 모여 있다. 수생동물들은 등산을 하다가 평지를 달음질치며, 센 동물이 나타나면 기암괴석 틈에 숨기도 한다. 해초들은 동물의 분비물을 거름 삼아 영양분을 키운다.

기온 다른 해류의 교차지점이라 한류성·난류성·외양성(다랑어, 임연수어 등 수심 100m 미만층을 돌아다니는 어종) 가릴 것 없이 건강한 동·식물 200종가량이 섞여 산다는 점, 다채로운 식생 스펙트럼을 지닌 해산(海山)이 육지와 가까운 연안에 있는 점, 수심고도에 따른 수직적 생물 분포가 뚜렷하게 나타나는 점은 지구촌 학계가 비상한 관심을 두는 이유다.

이 신비한 곳에서 자란 울진 대게와 붉은 대게를 국민에게 공급하는 축제는 오는 23~26일 울진군 후포항 왕돌초광장 일원에서 열린다. 동국여지승람과 대동지지는 고려 시대부터 대게가 울진의 특산물로 자리 잡았다고 전한다.

대게는 크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아니다. 몸통에서 뻗어 나온 8개의 다리 마디가 마른 대나무를 닮아 대(竹)게로 불린다. 횟집에 가거든 아는 척해보자.

불영사와 불영계곡.
왕피천 상류 굴구지산촌 계곡.
울진의 3욕 ‘온천욕, 삼림욕, 해수욕’

후포 등기산 스카이워크는 등기산공원에서 출렁다리를 건너와 갓바위공원에서부터 바다 위로 135m 뻗은 해상 산책길이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동해바다는 이탈리아 소렌토가 부럽지 않은, 에메랄드색이다. 푸른 바다가 갓바위와 부딪쳐 내는 하얀 포말, 삼색 하모니가 시시각각 펼쳐진다.

반대편으로 이어진 등기산은 산티아고 순례길 혹은 산토리니풍 유럽 해안길 미니어처처럼 숲길과 조형물이 조화롭게 만들어져 있다.

후포 등기산 해안 산책길.

울진의 3욕은 온천욕, 삼림욕, 해수욕이다. 세 종목 모두 둘째가라면 서러워한다. 후포에서 서쪽 내륙으로 20분 정도 운전해가면 백암온천마을이 있다. ‘남백암, 북덕구’ 중 백암온천은 무색무취한 53도의 온천수로 피부 체감에 적당하고, 나트륨·불소·칼슘 등 몸에 좋은 성분이 함유돼 만성피부염, 자궁내막염, 부인병, 중풍, 동맥경화 등에 좋다는 실증 보고서가 있다.

해설사들에 따르면, 사로국(훗날 신라) 북쪽의 독립 고대국가인 실직국의 한 사냥꾼은 백암산 일대에서 사냥하던 중 창에 맞은 사슴이 멀쩡히 도망치는 것을 보고 그곳에서 온천을 발견했다. 이 설화는 온천으로는 드물게 세계유산에 등재된 체코 카를로비바리를 닮았다. 근처에 백암 신선계곡이 청정옥수를 천천히 동해바다 쪽으로 내려보낸다.

월송정.
대풍헌 앞 수토사가 울릉도·독도를 지키려고 떠났던 포구.
실직국 왕이 사로국 세력을 피해 온 이곳, 왕피(王避)

후포에서 봉수까지, 즉 울진 남에서 북으로의 여행 중엔 요트학교, 평해사구, 울릉도·독도를 지켜낸 수토사(지키고 토벌하는 파견관) 출발지 대풍헌, 관동팔경 월송정·망양정, 봄에 바통을 넘겨주려는 마지막 겨울바다의 정취, 대한민국 삼림욕 1번지 금강송 군락지, 부처를 닮은 바위의 그림자가 절 앞 연못에 드리운다는 불영사와 계곡, 2억5000만년 역사의 성류굴, 드라마 촬영지, 덕구온천과 계곡, 왕피천 등 일곱 색깔 매력이 끊임없이 나타난다.

왕피천은 울진-삼척-봉화-태백-영덕-동해 일대를 관장하던 실직국의 국왕이 화친을 가장한 사로국 세력들의 기습에 급히 도피한 곳이라고 해서 ‘왕피(王避)’라는 이름을 얻었다. 실직국은 울진 금강송 군락지에 성을 쌓고 농성하며 가야보다 늦게 패망할 정도로 꽤 강건했다.

당시 울진을 무대로 다시 살아났다면, 강원 남부~영남 북부 일대의 중요한 고대국가로 남았을 것이다. 기원전 1세기 부터 강원과 영남을 모두 신라로 부르는 현행 교과서는 명백한 왜곡이라고 울진,삼척,의성,문경 등 독립국가를 수백년 유지했던 지역민들은 입을 모은다.

이현세 만화거리.
왕피천 케이블카.

왕피천 상류부터 하구까지, 또 그 남서쪽으로 이어지는 ‘ㄱ’자 물길에는 실직국 마지막 안일왕이 수 십년 저항했던 소광리 금강송 군락지와 금강송 에코리움, 왕피천 생태탐방로와 굴구지 산촌마을, 생태공원, 해양케이블카, 매화면 이현세만화거리, 근남면 숲속캠핑장이 줄 지어, 거대한 청정생태-역사-문화예술-체험 벨트를 형성한다.

지난 2005년과 2009년 2회에 걸쳐 울진세계친환경농업엑스포가 성료됐던 왕피천생태공원은 근남면 수산리의 왕피천 하류화 망양정 인근 바다가 이웃하는 곳이다. 민물과 짠물의 만남, 삼각주, 둔치 등 20여만평 공원은 은어낚시, 연어 회귀 구경, 200년 이상의 소나무 1000그루가 호위하는 산책을 즐긴다. 하구 위를 가로지르는 243m 길이의 은어다리는 인증샷 필수템이다. 은어는 마리당 49~53m나 된다.

죽변 드라마 ‘폭풍속으로’ 촬영지.
외로워 보이던 ‘폭풍속으로’ 그집, 이제는 여행자들로 가득

왕피천에서 북쪽으로 죽변항에 가면 절벽 위에 지어진 ‘ㄱ’자 이층집이 있다. 사시를 패스한 김석훈, 비련의 삶을 살아간 선술집 딸 송윤아, 잘난 형의 그늘에서 격투기 선수를 한 김민준 등이 열연한 드라마 ‘폭풍속으로’(2004년 SBS 방영)가 이곳을 무대로 방영될 당시 푸른 바다를 내려다보는 주황색 지붕의 집은 ‘멋지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론 누군가를 사무치게 기다리는 듯 ‘외롭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2023년 2월은 달랐다. 대나무가 많이 자생하는 죽변에는 이 주황색 집부터 항구까지 대나무숲 산책로가 생겨 많은 관광객이 창망한 바다를 보며 힐링하고 있었고, 코앞 해변엔 예쁜 관광기차 죽변해안 스카이레일이 여행자들의 환호성을 싣고 파도 위를 느릿느릿 걸었다.

죽변에 자생하는 소죽(小竹)은 화살을 만드는 재료로 사용됐다고 전해진다. 이 대나무숲에서 여행자들은 일반 숲의 7배나 되는 피톤치드를 흡입하며 정담 넘치는 걷기여행을 즐긴다.

국립해양과학관 바닷속 전망대 가는 다리.

해안스카이레일 종점인 봉수항에서 삼척 쪽으로 조금만 더 가면 나오는 울진 국립해양과학관은 놀이보다 공부가 더 재미있는 에듀테인먼트공간이다. 그중 수심 7m 바다 속 전망대가 백미다. 유영하는 물고기와 짜릿한 아이콘택트도 한다.

멋, 맛, 쉼, 인문학 등 없는 게 없는 울진으로, 양력 초하루와 설날에 이은, 삼세판 신년 건강다짐여행을 떠나기에 딱 좋은 때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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