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에 치이고 국내 정쟁에 밀리고… ‘골든 타임’ 잃어가는 韓 반도체

최지희 기자 2023. 2. 13.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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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반도체 세액공제 최대 25% 상향안 14일 논의
야당 반대에 통과 난항 예상
그 사이 일본은 범용 반도체에도 보조금 파격 지원
“글로벌 기업 유치 실패하면 인재 떠날 것” 지적
美, 보조금 지원 기업 中 투자 제한 내용 이달 발표
텍사스 공장 짓는 삼성전자 타격 우려
“中 투자 막히면 소부장 기업 연쇄 타격 불가피”
윤석열 대통령이 작년 5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경기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시찰하며 엄지 손가락을 들어보이고 있다./대통령실사진기자단

한국 반도체 산업이 대내외 풍파를 맞으며 경쟁력이 실추할 위기에 처했다. 국가 경제 안보의 핵심인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세계 주요 국가 간 패권 경쟁이 심화하는 와중에 한국의 반도체 산업 지원 개정안은 여전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반도체 지원법이 정치권의 정쟁에 이용되는 사이 업계에서는 “국가 지원책은 더 이상 인센티브가 아니라 반도체 산업체 유지의 필수 조건이 됐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대외적으로는 미국이 연일 대중(對中) 반도체 규제 수위를 높이면서 중국 수요 의존도가 높은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위기가 가시화하고 있다.

◇ 韓 세액공제 15%도 난망한데 경쟁국은 파격 보조금 지원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는 오는 14일 반도체 업계에서 가장 시급하다고 보는 조세특례제한법(조특법) 개정안 논의를 시작한다. 개정안은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반도체 설비투자 세액공제율을 기존 8%에서 15%로, 중소기업은 16%에서 25%로 올리고 신규 투자 증가액의 10%를 추가 공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에 발등에 불이 떨어진 기획재정부는 추경호 장관이 직접 국회 기재위 소위를 찾아 개정안 통과를 설득할 계획이다. 하지만 야당은 여전히 ‘다른 산업과의 형평성’ ‘재정 건전성’ 논쟁을 이어가고 있어 당장 통과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한국의 반도체 기업 세액공제 인상안이 국회에 묶여있는 사이 전 세계 주요국은 세액공제에 더해 보조금까지 파격적으로 지원하며 공급망 강화에 나섰다. 최근 일본 정부는 반도체 투자 지원 범위를 첨단 반도체에서 범용 제품으로 확대하고 ‘기브 앤 테이크’를 명확히 한 통 큰 지원책을 내놨다. 정부 예산 약 3700억엔(약 3조5000억원)을 투입해 전기차 등에 들어가는 범용 반도체 관련 제조 장비 투자 금액의 최대 3분의 1, 반도체 원자재 투자액의 절반을 충당한다. 조건으로는 10년 이상 일본에서 반도체를 생산하고, 반도체 부족 시 일본 내 공급을 우선해야 한다는 안을 내걸었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세계 1위 기업 TSMC에 대한 전폭 지원에 나선 대만 정부 역시 경각심을 높이며 추가 지원을 결정했다. 지난달 대만 정부는 “주요국이 모두 자국 공급망 구축을 위해 막대한 인센티브를 주고 있어 대만도 핵심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며 세계 공급망에서 주요 역할을 하는 업체에 연구개발(R&D) 투자비의 25%, 설비투자의 5%를 세액공제해주기로 했다. 여기에 대만은 지방세가 없고, 법인세 최고세율도 20%로 한국(25%)보다 낮다.

각국의 지원 정책에 글로벌 첨단 반도체 기지가 경쟁국에 몰리면 한국의 반도체 생태계가 무너질 것이라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업계 안팎에서 커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메모리 세계 1위 삼성전자가 국내보다 지원책이 다양한 해외 각국의 ‘러브콜’을 받고 있고 핵심 글로벌 기업들이 각국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생산 시설을 세우고 있는데, 한국만 뒤쳐지면 결국 반도체 인재들이 한국에 모이지 않고 밖으로 떠날 수밖에 없다”며 “반도체 허브화에 실패해 인재들이 떠나면 경쟁국과의 격차는 급속도로 벌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 韓 반도체 수요 높은 中 사업 불확실성 지속

미국은 대규모 지원으로 세계 주요 반도체 기업 공장을 유치한 데 이어 이들 기업의 중국 사업망까지 제한하고 나섰다. 매출의 절반을 중국 수요에 의존해 온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또다시 불확실성을 키우며 이달 미국 상무부의 입을 주목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조 바이든 대통령은 자국에 반도체 공장을 지으면 기업 규모와 상관없이 25% 세액공제를 해주고, 반도체 시설 투자와 R&D 등에 527억달러(약 67조원)를 지원하는 반도체법에 서명했다. 막대한 지원과 지정학적 선점 경쟁이 맞물리면서 삼성전자부터 TSMC 등이 미국에 수백억달러를 투자해 반도체 공장을 짓기로 했다.

문제는 미국이 이달 말 발표할 예정인 반도체법 세부 지침이다. 미국 정부는 지원 대가로 반도체 기업이 10년간 중국 등 미국 안보를 위협하는 우려 국가에 첨단 반도체 시설을 신설하거나 추가 투자하는 것을 금지했다. 세부 지침에는 이와 관련한 구체적인 계약 기준이 명시될 예정이다. 이 기준에 따라 국내 반도체 업체들의 중국 사업 방향이 정해진다. 당장 영향이 큰 곳은 텍사스주 테일러에 170억달러(약 21조원)를 투자해 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는 삼성전자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에서 낸드플래시를 생산 중이며, 쑤저우에서 후공정(패키징) 공장을 운영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 시안 공장은 작년부터 강화된 규제로 이미 효율성이 많이 낮아진 상태”라며 “세부 지침 시행 1년 유예 혹은 예외 적용을 받지 못하면 사실상 중국 생산라인 운영이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이와 별개로 앞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지난해 10월 미국 정부로부터 중국 현지 생산시설에 대한 수출 통제 조치를 1년 유예 받았다. 올해 10월까지는 다국적 기업의 중국 내 반도체 생산 시설에 필요한 장비를 미국의 별도 허가 없이 공급받을 수 있으나, 이후 상황은 예단하기가 어렵다. SK하이닉스 역시 D램 생산의 약 50%를 중국 우시 공장에서 만들고 있고, 지난해 인텔로부터 인수한 낸드플래시 공장도 중국 다롄에 있다. 중국 공장 생산 차질이 현실화하면 국내 기업의 실적 타격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국내 반도체 장비업계 관계자는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이어지면서 대기업뿐 아니라 중국 매출 비중이 큰 국내 소부장 중소·중견 기업들도 도미노 경영 위기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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