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은행은 공공재” 발언, 관치 우려 지우려면

김유진 기자 2023. 2. 13.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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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저명한 저널리스트 마틴 메이어는 2009년 발간한 저서 '뱅커스'에서 은행이 사회적 역할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융당국은 은행의 사회적 기능을 강조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금융지주와 은행의 지배구조와 이사회를 정조준했다.

금융당국은 "공공재 측면이 있는 은행의 지배구조가 공정하고 투명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이사회 기능 제고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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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의 본질적 경쟁력은 결국은 신뢰다. 은행의 안전성은 퇴보했고, 이들은 오히려 거래 사업과 투자 등 수익사업에 더 치중하고 있다. 은행은 실패를 세금으로 메울 만큼 사회적으로 필요한 역할을 하는가.”

마틴 메이어의 저서 '뱅커스' 중에서

미국의 저명한 저널리스트 마틴 메이어는 2009년 발간한 저서 ‘뱅커스’에서 은행이 사회적 역할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마틴 메이어의 시각은 14년이 지난 현재 우리나라 금융시장에 완벽히 투영되고 있다. 금융당국은 은행의 사회적 기능을 강조하고 있다. 은행의 실패는 곧 국민의 피해로 이어지는 만큼 공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게 금융당국의 입장이다. 대통령까지 이를 지원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월 말 금융위원회의 업무보고에서 “은행은 국방보다도 중요한 공공재적 시스템이다”라고 했다.

금융당국이 이러한 시각을 갖게 된 데는 금융권의 잘못된 관행이 자리 잡고 있다. 금융사는 ‘주인 없는 회사’로 견제 세력 없이 경영진의 힘이 막강해졌다. 최고 의사결정기구이자 경영진을 견제해야 할 이사회 역시 경영진의 입맛에 따른 거수기 역할만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최근 몇 년간 금융권에선 수백억원대의 횡령 사고, 사모펀드 불완전판매, 비정상 외환송금 거래 등의 사고가 나며 막대한 소비자 피해가 발생했다. 금융당국이 보기에 좌시할 수 없는 수준의 금융사고가 잇따라 일어난 것이다.

사고가 발생한 면만 보면 ”늘 지역사회를 생각하고 무엇보다도 고객의 서비스를 최우선으로 생각했으며 다른 은행과 수익을 비교하지 않고 자기 주식의 주가 수익률에 대해서는 결코 생각도 하지 않았던 사람들”이라는 아서 번즈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의 은행가에 대한 평가는 완전히 틀린 말이 돼 버렸다.

결국 금융사는 개선 대상이 됐다. 금융당국은 금융지주와 은행의 지배구조와 이사회를 정조준했다. 금융당국은 “공공재 측면이 있는 은행의 지배구조가 공정하고 투명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이사회 기능 제고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동안 규칙이 존재하지 않았던 금융사의 경영진과 이사회의 행동 양식에 손을 대겠단 의미다.

하지만 금융당국의 개입이 금융회사에 또 다른 목줄을 채울 수 있다는 점은 우려된다. 규제산업인 은행업은 금융당국의 입김이 클 수밖에 없다. 최근 몇몇 금융지주 회장의 사임이 금융당국의 의견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만 봐도 금융산업에서 정부가 차지하는 비중을 유추할 수 있다. 당국은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이사회와 소통을 강화할 뿐”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금융권은 당국이 말하는 이사회와의 소통이 또 다른 명령 하달 통로가 될 것이라고 걱정한다. 최악의 상황으로 정실 자본주의의 재등장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한 금융사 관계자는 “과점 주주가 없어도 주주회사이자 민간회사인 금융업에 대한 관치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이사회와의 소통이 간섭이 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금융당국은 각계 전문가의 의견과 해외 사례 등을 참고해 객관적인 이사회 개선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객관성이 없는 방안은 당국의 생각에 따라 이사회를 주무를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 개선 방식 또한 구두 전달로 이뤄지기보다는 필요하다면 명확하게 방향이 명시된 행정지도(가이드라인)를 선택하는 편이 금융회사 입장에서도 부담을 덜 것으로 보인다. 당국의 구두 주문은 자칫 금융사에는 눈치껏 따라야 하는 ‘깜깜이 주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금융당국은 이 모든 것을 추진할 때 금융사의 주인이 정부가 될 수 없다는 점을 전제해야 한다. 금융당국은 금융사의 지배구조와 이사회를 겨냥해 칼을 빼 들었다. 이 칼이 관치를 위한 수단이 아닌 국내 금융산업 발전을 위한 객관성 있는 견제 도구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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