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안84가 아무리 용쓴다 한들...'만찢남' 제작진 착각이 낳은 참사

김교석 칼럼니스트 2023. 2. 13.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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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스팅으로 승부 끝? 기안84의 자아성찰을 너무 가볍게 들었다(‘만찢남’)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티빙의 오리지널 예능 <만찢남>은 1화에서 "어설프게 할 거면 시작도 안 했어"라는 멘트와 함께 시작한다. 200만 구독자를 보유한 인터넷 서브컬처의 총아 침착맨(이말년)과 그의 단짝 주호민을 비롯해 각자의 작품 활동과 유튜브, 각종 방송에서 함께하며 화제성과 호감도를 검증받은 15년 지기 '침펄기'(이말년, 주호민, 기안84)와 이들의 절친한 동생 주우재가 합류한 '침펄기주'를 스케일 큰 OTT 무대 위로 처음 모셨으니 가져볼 만한 자신감이다.

기획도 이들만이 할 수 있는 콘셉트다. 총 8회로 기획된 <만찢남>은 '버라이어티툰'이라 하여 웹툰 작가인 출연자들이 자신들이 그린 만화 속의 주인공이 돼 무인도에서 생존하는 이야기다. 자신들이 그린 만화가 앞으로 이들이 무인도에서 살아 돌아오는 데 힌트와 단서, 미션, 복선이 된다. 이처럼 방구석 수다만으로도 수백만 구독자들의 배꼽과 시간을 잡는 이들이 며칠간 무인도에서 함께 지내며 본격 리얼리티 예능을 찍는다니 기대가 컸다. 실제로 지난 2월 6일에는 <만찢남>이 2주 연속 티빙 오리지널 유료가입기여자수 1위에 올랐다고 홍보했다.

그런데 4화까지 절반이 공개된 시점에서 <만찢남>이 간과한 것이 보인다. OTT에서 그들만의 예능을 찍는 것은 제작진에게는 흥미로운 사건일 수 있으나 모든 플랫폼과 콘텐츠를 동등하게 이용하는 시청자 입장에선 기존에 보는 것과 다른 재미와 신선함이 있어야 한다. 2010년대 후반 예능선수들 사이에 유튜브 스타를 서브패널로 하나둘 집어넣던 방식, 최근 동등하게 활용하는 방식, 그리고 <만찢남>처럼 예능선수들을 아예 밀어내고 콘텐츠를 만드는 데까지 변화해온 것은 맞다.

하지만 방송과 웹예능을 결합하는 데 있어 여전히 과도기적 형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방송 제작진들에게 방송 밖에서 대중적 인지도를 형성된 인플루언서를 스케일 큰 무대와 높은 출력의 스피커 앞에 올려서 더 많은 대중들에게 소개하겠다는 매스미디어의 관이 진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웹예능 콘텐츠를 방송으로 가져올 때 보다 많은 대중에게 접근성을 높이겠다는 '대중성'은 기획의 명분이 되긴 하지만 착각의 씨앗이기도 하다. 캐스팅이 마케팅인 것처럼 정작 현실은 그들의 인지도 및 브랜드 위에 올라탄 것임에도, 방송과는 다른 형식의 웹예능에서 대중성을 스스로 확보한 이들을 대중성을 위한다며 TV예능의 문법 안에 다시 집어넣는다. <만찢남>만 해도 몰타로 떠나기로 하고 대부도 근처 무인도로 데려오는 생고생 몰카 설정부터, 각종 미션을 끊임없이 수행하는 게임까지 익숙한 예능 문법을 그대로 수행한다.

<만찢남>은 기존의 예능선수들이 등장하지 않는 측면에서는 새로운 예능이지만, 몸개그, 게스트 추성훈의 활용, 서바이벌 콘텐츠, 마피아 게임 베이스의 추리 설정, 4행시, 먹거리를 걸고 제작진과의 대결, 매력 어필 등등등 마치 예능 체험이 목적인 것처럼 수많은 너무나 많이 봐온 예능 레퍼런스가 쏟아진다. 그렇다보니 정작 만화의 스토리텔링을 기반으로 하는 '버라이어티툰'은 뒷전으로 물러난다. 이들이 함께 무언 갈 해나가는 이야기는 옅어지고, 이들이 대중에게 어필했던 수다의 함량은 떨어진다.

한편에선 친밀한 이들이 펼치는 캐릭터쇼인 만큼 <무한도전>의 향수가 아른거린다는 평도 나온다. 자유로움과 친밀한 관계, 엉뚱한 장면 등등의 분위기도 그렇고 실제 이들이 게스트로 참여한 적도 있고, 레전드 회차 중 무인도 편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만찢남>은 <무한도전>과는 완벽하게 정반대에 있는 콘텐츠다. <무한도전>이 위대할 수 있었던 것은 다른 곳에서 보지 못했던 캐릭터쇼, 캐릭터와 그들 사이의 관계 형성을 프로그램 안에서 창조해냈기 때문이다. 반면 <만찢남>의 침펄기는 그들의 왕국이 따로 있다. 이곳 무인도는 잠시 들린 여행지일 뿐이다.

스케일로 대중성을 확보한다고 하지만 새로움을 보여줄 오리지널리티가 없다. 최근 방송가에서 웹예능의 기획과 출연자들을 대거 흡수하면서 콘텐츠를 만들고 있는데 어려움을 겪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새롭게 만들어낼 생각은 안 하고, 인기와 인지도를 가져다 쓰려고만 한다. <만찢남>도 자막을 통해 이런저런 별명을 붙이지만 리얼버라이어티의 근간인 캐릭터쇼의 관계망은 지난 십여 년의 세월 동안 출연자들이 쌓아온 관계를 토대로 삼는다. 그러니 이 프로그램에서만 볼 수 있는 오리지널 콘텐츠, 이야기, 자연스러움, 리얼리티를 찾기가 힘들다.

게다가 대중성 확보를 위한다면서 기존에 웹툰, 실시간 방송부터 시작해 함께 공유해오고 키워온 문화를 깎아내고, 익숙한 예능 볼거리를 빼곡하게 담았다. 쉴 새 없이 이어지는 게임, 미션 등 익숙한 예능 장치와 시간표를 소화하다보니 캐릭터쇼의 묘미가 발휘될 상황은 오히려 줄어든다. 자신들의 방식으로 대중성을 쌓은 이들이 굳이 방송 예능의 문법 안으로 들어가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볼거리라면 리얼버라이어티 예능 초보들인 침펄기일 필요가 없다.

추성훈이 오면서 그나마 생기가 돈 것도 같은 이유다. 지금까지 출연자 중 설정으로 가득한 예능 문법과 촬영 현장에 가장 익숙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기존 방송보다 진화한 리얼리티와 진정성, 솔직함으로 실시간으로 소통해온 이들이 부자연스러운 상황, 억지 상황극 안에서 짜인 게임을 해야 하니 이들의 장점인 자연스러운 수다와 리얼리티가 살지 않는다.

웹 예능을 방송화할 때는 무대를 제공하는 게 아니라 자생한 대중문화 콘텐츠를 빌려온다는 생각을 잊어선 안 된다. 아쉽게도 <만찢남> 또한 서브컬처와 B급이란 네임택을 붙이고 스케일이 큰 방송 콘텐츠 위에 올리면 확산될 것이란 착각으로 무인도로 떠났다. 첫 미팅 때 바로잡을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이 조합은 너무 노출이 많이 됐다'는 기안84의 자아성찰을 모두들 너무 가볍게 흘려들었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티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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