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 1세대 조각가 4인방 모였다

이한나 기자(azure@mk.co.kr) 2023. 2. 13. 15:0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우성의 제자들 ‘분화(分化)’전

김종영미술관 3월 26일까지

평창동 김종영미술관에서 ‘분화’전에 참여한 최의순(왼쪽) 최종태 선생 <이한나 기자>
한국적 조각의 출발점을 보여주는 토종 1세대 조각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한국전 전후 불상이나 석물만 존재하던 조각 불모지에서도 우리만의 미학을 정립하려는 노력은 치열했다. 서양의 조각작품을 실물로 직접 본 적도 없던 미술학도들은 국내 최초로 조소과가 개설된 서울대학교에서 조각계 거목 우성 김종영(1915~1982)을 만났다.

서울 종로구 평창동 김종영미술관에서는 우성의 제자였던 송영수(1930~1970)와 최의순(89), 최만린(1935~2020), 최종태(91) 4인전 ‘분화(Differentiation)’가 열리고 있다. 6·25동란 전후(1950~1954) 서울대 조소과에 입학한 네 사람은 1948년 교수로 부임한 우성의 지도하에 각자 차별화된 조형언어를 정립하며 한국 조각의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애썼다. 또 우성 곁에서 서울대 조소과 후학 양성에 나선 공통점도 있다.

이 네 작가가 한자리에 모인 전시는 처음이다. 작가별로 작품 세계의 핵심을 보여주는 조각 4∼5점과 드로잉 8∼10점을 선보인다.

우성보다 먼저 떠난 제자 송영수는 50학번으로 철조조각 선구자다. 그의 작품 ‘효Dawn’(1957)는 국내 최초의 철조 조각이다. 초현실주의 영향이 엿보이는이 작품은 각도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보이는 입체 미학을 보여준다.

53학번 최의순은 우성처럼 ‘일필휘지’ 서예정신을 조각으로 구현하기 위해 무엇보다 석고 조각에 집중했다. 그는 순차적으로 문제를 풀어가듯 조형원리를 탐구해갔다. 그가 종이에 먹과 수채로 그린 평면 드로잉마저 입체의 기운이 번뜩인다. 최의순 선생은 “전후 모델과 재료 구하기도 힘들던 시절이었지만, 김종영 선생은 우리 조각의 정체성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54학번 최종태는 전후 인간 실존을 성찰하면서 여성 구상조각에 매진했다. 1971년 세계미술 탐방 기회를 가진 후 오히려 석굴암과 반가사유상의 한국적 아름다움을 새롭게 자각했다.

최종태 선생은 “당시 ‘적당히’란 건 안통했다. 부분과 전체의 관계를 강조하던 김종영 선생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고 했다.

우성보다 앞서 박승우에게 조각을 배웠던 54학번 최만린은 동아시아 미학에서 비롯한 추상으로 전환했다. 서예에서 비롯된 ‘천지현’ 연작부터 청동으로 만든 ‘태’‘맥’연작까지 생명성을 추상적으로 조형화했다.

박춘호 학예실장은 “네 사람 모두 인체에서 출발했으나 최종태를 제외하고 모두 추상으로 전환했다”며 “최근 20세기 미술에 대한 평가작업이 활발해졌는데 미술계가 발전적으로 나아가려면 구체적 사례로 담론 형성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이번 전시를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3월 26일까지.

우성 김종영의 제자 3인방 단체전 ‘분화’ 전경 <사진제공=김종영미술관>
우성 김종영의 제자 4인방 단체전 ‘분화’의 최종태 작품 전경 <사진제공=김종영미술관>
송영수의 철조 조각 ‘효Dawn’ (1957) <사진제공=포항시립미술관>
최만린의 청동조각 ‘일월 96-1-1’(1994-1996) <사진제공=성북구립미술관>
최종태의 ‘생각하는 여인’(2016) <사진제공=김종영미술관>
최의순의 석고 조각 ‘020-4’(2020)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