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방역제로 감염병 일으키는 바이러스만 골라 잡는다

박종목 한국화학연구원 바이오화학연구본부 책임연구원 연구진

한국화학연구원(KRICT) 연구진이 바이러스 차단 친환경 방역 기술을 개발했다. 왼쪽부터 박종목 책임연구원, 황태규 전문연구요원. /한국화학연구원

국내 연구진이 식물에서 추출한 물질로 조류독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돼지호흡기증후군처럼 바이러스 감염으로 발생하는 감염병을 막을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환경오염 가능성이 낮고, 인체에 부작용을 일으키지 않아 실제 방역 현장에서 널리 쓰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박종목 한국화학연구원(KRICT) 바이오화학연구본부 책임연구원이 이끄는 연구진이 감염병을 일으키는 인지질 외피를 가진 바이러스를 선택적으로 죽이면서도 자연과 인체에는 무해한 방역 기술을 개발했다고 13일 밝혔다. 코로나, 조류독감, 아프리카돼지열병, 수족구, 원숭이두창 처럼 감염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 대부분이 인지질 외피를 갖고 있다.

바이러스로 인한 감염병이 전 세계적으로 인간과 동물에서 유행하고 있지만, 바이러스를 방역하는 기술은 아직 미흡하다. 가장 큰 단점으로는 안전성이 꼽히는데, 가령 국내에서 쓰이는 조류독감 방역제 성분은 산화제 43%, 산성제제 35%, 알데히드류 13%, 양이온 계면활성제 5%로 대부분이 자연과 인체에 유해한 물질이다. 따라서 바이러스를 효과적으로 죽일 수 있는 ‘친환경 방역 기술’이 필요한 상황이다.

화학연 연구진은 방역제가 자연과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식물성 기름에서 추출한 물질로 바이러스를 죽이는 방역 기술을 개발했다. 식물성 기름에는 ‘긴사슬 알코올 유도체’라는 물과 기름이 잘 섞이게 하는 계면활성 물질이 있는데, 이 물질을 인지질 외피를 갖는 바이러스에게 뿌리면 세포막이 녹으면서 죽는 ‘셀-라이시스’현상이 일어난다. 기존 방역제는 유익한 세균도 죽이지만, 이 기술을 활용하면 바이러스만 골라서 죽일 수 있다.

바이러스 세포막은 표면에 양이온(양전하)과 음이온(음전하)으로 이뤄진 전하층을 갖고 있다. 연구진은 전하에 영향을 받지 않고 세포막을 빠르게 침투해 파괴할 수 있도록, 비이온계의 천연 중성 계면활성제를 선정해 방역제로 활용했다.

새롭게 개발한 방역 기술의 효과를 확인한 결과, 0.05%의 낮은 농도로 사용했을 때 고병원성 조류독감 바이러스를 1분만에 99.99%, 코로나 바이러스는 30초만에 99.99% 죽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긴사슬 알코올 유도체는 기존에 사용하던 방역제보다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약 10% 수준으로 나타났다. 인체에도 안전하다는 의미다. 바이러스의 껍질을 직접 녹이는 만큼 백신, 치료제의 효능을 떨어뜨리는 변이와 상관없이 방역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화학연은 이번에 개발한 기술을 민간 기업에 이전해 실제 방역 현장에서 쓰일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현재 국립환경과학원과 농림축산검역 본부의 사용 허가를 받기 위해 준비하고 있으며, 상용화 목표 시점은 올해 말이다.

이미혜 한국화학연구원 원장은 “이번 성과는 기존의 방역 기술 대비 보다 효율적이면서 보다 안전한 기술”이라며 “겨울철 조류독감, 코로나뿐 아니라 해마다 반복되는 바이러스성 동물 전염병 차단에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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