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연을 버티게 해주는 이봉련, 이게 시크릿 선샤인의 가치('일타스캔들')

정덕현 칼럼니스트 2023. 2. 13.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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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타스캔들’, 이봉련 같은 친구 하나만 있어도

[엔터미디어=정덕현] "영주야 쌤이 나 정리했대. 그냥 헷갈렸던 거래. 근데 너무 잘됐는데.. 나 너무 마음이 너무 아파 영주야. 나 그 사람 좋아했나 봐. 많이 좋아했나 봐. 영주야." 과거 자신의 엄마가 은인이었고 그래서 여러모로 헷갈렸던 것 같다고 최치열(정경호)이 한 말 때문에 남행선(전도연)은 감정이 복잡해진다. 그렇게 마음 정리하는 것이 딸 삼은 조카 남해이(노윤서)를 위해서도 잘 된 일이지만 어쩐지 슬퍼지는 감정이다. 행선은 자신이 치열을 좋아했다는 사실을 그렇게 확인한다.

그런데 행선이 그렇게 아이처럼 울며 자신의 감정을 토로할 때, 그 옆에는 절친 김영주(이봉련)가 있다. 영주는 아무 말 없이 울고 있는 행선을 꼭 껴안아 준다. 그건 마치 엄마가 우는 아이를 안아주는 것만 같다. 그 품에서 행선은 어디에도 털어 놓을 수 없는 감정을 마음껏 꺼내 놓는다. tvN 토일드라마 <일타 스캔들>은 행선과 치열의 스캔들이 아닌 로맨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지만, 그 주변에 서 있는 영주 같은 인물이 눈에 띤다. 세상에 이런 친구 하나 있으면 성공한 삶이 아닐까 싶은 그런 인물.

올케어반 엄마들이 최치열이 해이의 과외를 봐주고 있다는 사실이 발각되면서 한 걱정을 하는 행선에게 영주는 특유의 시원시원한 말투로 톡톡 쏘아준다. "아 왜 지레 걱정이래? 막말로 니들이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니고, 애들 가르치는 선생이 해이 좀 따로 봐줬기로서니 그게 이렇게 떨 일이냐? 니들이 뭐 숨어서 위조지폐를 만들었니, 밀수를 했니?" 그러면서 그 엄마들이 참 "유난하다"고 툴툴댄다.

영주의 이 말은 사실상 시청자들이 하고픈 말이다. 드라마에 몰입한 시청자라면 행선과 치열의 로맨스가 얼마나 인간적인가를 알고 있다. '가격' 같은 수치로 모든 걸 환산하는 세상에서 밥 한 끼의 진짜 '가치'로 서로의 소중함을 알아가고 또 깊어져가는 관계가 아닌가. 은인이었던 행선의 엄마가 치열에게 해줬던 음식을 이제 행선이 해주면서, '1조원'의 경제적 가치를 가진 이라도 밥 한 끼의 포만감과 편안한 하룻밤의 잠이 더 소중한 가치일 수 있다는 걸 이들의 로맨스는 보여준다. 그러니 오로지 친구만을 위하고 곁에서 시청자들처럼 그 진실을 봐온 영주가 툭툭 던지는 말이 시청자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 수밖에 없다.

결국 이 관계를 방수아(강나언) 엄마 조수희(김선영)가 '유부녀와 바람난 일타 강사'라는 스캔들로 만들어버리고, 그래서 반찬가게에 손님마저 뚝 끊기게 되자 영주는 또 톡 쏘는 사이다 발언으로 친구를 위로한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이렇게 대놓고 손님이 뚝 끊겨! 반찬이랑 그딴 그지 같은 글이 뭔 상관이라고 아, 사먹지 말라 그래. 희대의 불륜 스캔들은 개뿔. 19금 영화들을 찍어요, 아주 어? 마녀사냥을 해도 적당히 해야지 진짜. 그러니까 야 됐어. 쫄 거 없어. 그런 거 아닌 거 내가 알고, 하늘이 알고. 아니 과외 한번 받은 걸로 사람을 이렇게까지 모함을 하냐? 아 모르는 사람이기나 해? 수아 언니인지 수아임당인지 그 여자 내가 평소에도 마음에 안 들었어."

'일타 스캔들'에서 영주의 역할은 어쩌면 이처럼 시청자들이 갖고 있는 불편한 감정들을 대리해 터트려주는 것일 게다. 이런 인물이 있어야 행선과 치열의 달달한 모드에서 갑자기 고구마 상황이 되어버린 이 답답함을 조금은 풀어줄 수 있다. 시청자들에게도 작은 숨통이 되어주는 역할이다. 하지만 그러한 극중 역할을 떠나서 영주 같은 인물은 그 자체로도 큰 의미로 다가온다. 바람 잘 날 없는 삶 속에서 어쩌면 우리를 계속 살아가게 하는 건 영주 같은 인물이 옆에 하나라도 존재해서가 아닐까.

주인공들 뒤에 서 있기 때문에 전면에 나타나지 않아도 영주 같은 인물이 부여하는 힘은 지대하다. 그는 마치 전도연에게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부여했던 <밀양>의 종찬(송강호) 같다. 절망과 어둠의 끝에 서 있는 신애(전도연)의 옆자리에서 끝없이 수다를 떨어가며 보이지 않는 빛을 던져주던 존재. '밀양'의 뜻 그대로 '시크릿 선샤인' 같은 그런 존재들이 있어 우리는 힘든 나날들을 버텨낼 수 있는 게 아닐는지.

조연이지만 이런 숨결을 부여한 이봉련 배우의 숨 쉬듯 자연스러운 연기가 고맙게 느껴진다. 어찌 보면 엄마가 죽는 날 덜컥 조카까지 맡게 되면서 운동도 그만 두고 미혼이지만 기혼자처럼 엄마로서 살아가게 된 행선의 그 삶이 얼마나 만신창이일까. 하지만 그런 그가 이처럼 밝게 살아갈 수 있는 게 다 영주 같은 사람 덕분이라는 걸 납득시키는 배우의 연기라니. 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고 위로받는 듯한 느낌을 이봉련 배우는 영주라는 캐릭터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전해주고 있다. 숨겨진 빛처럼.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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