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고래가 ‘낙하’한다…우주가 탄생한다…탄소가 저장된다

남종영 2023. 2. 1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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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와 싸우는 고래|② 고래의 죽음
‘고래 낙하’와 200년 전 바다로 되돌리면 생기는 일들
지구에서 가장 큰 동물인 대왕고래는 많은 양의 탄소를 품은 ‘살아있는 탄소 저장고’이다. 고래는 죽어서 심해로 떨어지면서, 탄소를 대기에서 거의 완전히 격리한다. 게티이미지뱅크

고래는 죽으면 어떻게 될까요?

물에 떠오른 고래 사체를 먼저 찾아오는 것은 각종 바닷새와 물고기, 상어입니다. 냄새를 맡고 찾아온 이들은 사체를 쪼고 씹고 뜯어 먹습니다. 수십일이 지나서야 마침내 가라앉지요.

흐늘흐늘해진 고래 몸뚱이는 햇빛이 드는 혼합층의 경계를 지나 바다 밑으로 밑으로 내려갑니다. 결국 수백 수천m의 바다 밑바닥에 착륙하죠. 거기서도 눈먼 먹장어와 이름 모를 벌레들이 고래 몸뚱이를 파먹습니다.

고래가 죽어 바다 밑바닥에 묻히는 과정은 생태계 순환의 중요한 톱니바퀴입니다. 과학자들은 이 과정을 ‘고래 낙하’(whale falls)라고 이름 붙이고, 연구실에서 머리를 싸매고 있죠.

고래는 살아있는 ‘탄소 저장고’

고래 낙하가 주목받은 이유는 고래 사체 주변으로 형성되는 미소 생태계 때문입니다. 다른 이유는 고래의 탄소 제거 때문인데요. 아시다시피 탄소는 생물의 재료입니다. 살아있는 모든 것의 몸은 탄소로 구성돼 있어요. 사람 몸의 대략 18%가 탄소죠.

그럼, 고래는 어떨까요? 수십t에서 100t이 넘는 거대한 덩치 때문에 탄소량도 상상을 초월합니다. 요즈음 대세인 인공지능 ‘챗지피티’에 물어보니 “고래의 크기에 따라 탄소량은 4~5t에서 수십여t까지 이른다”고 답하는군요.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네요.

“이 탄소는 고래가 먹는 것들에서 비롯됩니다. 주로 크릴이나 플랑크톤처럼 작은 것들입니다. 그 생물들은 바다와 대기에서 탄소를 가져오고, 그 생물들을 먹은 고래가 죽으면 해저로 가라앉아 탄소가 퇴적됩니다. 이렇게 수만년 동안 탄소가 저장됩니다.”

고래 낙하를 통해 한해 약 2만9000t의 탄소가 해저로 이동합니다. 만약 18∼19세기 대규모 포경으로 인류가 고래를 절멸 위기에 몰아넣지 않았다면, 고래들은 단지 ‘고래 낙하’를 통해서만 19만3000t의 탄소를 해저에 저장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어요.

그래픽_GRID-Arendal, <한겨레> 소셜미디어팀

과학자들은 고래의 몸 자체를 ‘탄소의 저장고’라고 부릅니다. 덩치가 커서 탄소를 많이 가지고 있는 데다 수명이 100년을 넘기도 해서, 존재만으로 대기 중의 탄소를 가져와 저장하는 효과가 있다는 거죠. 게다가 고래가 똥을 싸면 식물성플랑크톤이 번성하면서 대기 중의 탄소가 더 많이 바다에 흡수되어 저장되고요. (이 이야기는 지난 회에서 해드렸어요.)

세계 각국은 2050년 탄소 배출량 ‘제로’를 목표로 하는 탄소중립을 향해 뛰고 있어요. 많은 기후변화 관련 보고서들은 탄소중립을 이루려면 ‘탄소 포집 기술’을 실현해야 한다고 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게 ‘직접공기포집’(DAC) 기술이에요. 대기 중 공기를 빨아들여 탄소를 뽑아낸 뒤, 해저에 저장하는 거예요. 아니면 화력발전소나 시멘트 공장 등 탄소 다배출 시설에서 나오는 탄소만 따로 포집하기도 하죠. 작동 과정에서 별도의 에너지가 드니 이 역시 탄소가 발생하고, 높은 운영 비용이 들어서, 이 기술이 진정한 해결사가 될지에 대해 의심하는 시선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을 과거부터 고래가 대신해주고 있었던 거죠. 제 몸을 바쳐서 말입니다!

고래 뼈를 빨아먹는 좀비 벌레 ‘오세닥스’

고래의 사체는 또 하나의 생태계를 구성해요. 고래가 죽으면 다양한 물고기와 문어, 박테리아와 벌레가 여기를 터전으로 살아가죠. 이름 모를 혹성이 우주를 여행하듯, 고래 사체는 심해를 향해 느린 여행을 해요. 심해에 착륙해서도 ‘오세닥스’ 같은 벌레처럼 신비로운 생물들이 달라붙어요. 오세닥스는 고래 뼈를 녹여 먹고 사는 좀비 벌레예요. 혐기성 생물(산소를 거의 필요로 하지 않는 생물)이 대부분인데, 이들을 ‘고래 낙하 전문종’(whale fall specialists)라고 불러요. 고래가 죽은 뒤 또 하나의 우주를 품고 해저로 내려가는 거죠. 신비롭지 않나요?

그 우주가 사라지고 있어요. 1980년대부터 고래 낙하를 연구해 온 크레이그 스미스 하와이대 교수와 동료들은 2019년 학술지 <해양연구저널>에서 18~19세기 참혹한 포경으로, 북대서양 대형고래의 개체수 급감과 함께 고래 낙하 전문종도 멸종에 이르렀을 것이라고 추정해요.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크루즈 해저 1674m 지점에서 발견된 귀신고래의 ‘고래 낙하’ 현장. 출처: 해양연구저널

고래는 죽으면서 어떻게 기후위기에 도움을 줄까요? 미국 메인대의 앤드루 퍼싱 교수 등 연구팀은 2010년 고래 낙하의 탄소 저장 효과를 추정했어요. 대왕고래, 혹등고래 등 덩치 큰 수염고래가 심해저로 이동시킨 탄소량은 포경시대 이전보다 훨씬 줄어들었습니다. 개체수가 현저히 줄어들었기 때문이죠. 반대로 우리가 고래를 보호해 고래가 과거처럼 많아진다면, 그만큼 탄소 흡수량을 늘릴 수 있다는 얘기죠.

고래를 보호하는 것은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하나의 대안이에요. 이 연구팀은 고래 개체수가 회복되면, 고래 낙하를 통해 연간 16만t의 탄소를 추가로 해저에 격리할 수 있다고 봤어요. 2800개 축구장을 합한 면적(20㎢)의 숲이 탄소를 흡수하는 양과 맞먹어요.

고래 낙하는 1987년 미국의 심해 잠수정 앨빈호가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 카탈리나섬 해저에서 죽은 대왕고래(혹은 참고래)를 우연히 발견하면서 시작됐습니다. 거의 같은 시기에 잠수 훈련 중이던 미 해군 병사들이 귀신고래 해골을 발견했고요. 현재는 고래 낙하 현장 사진을 찍고 물질을 수거하고, 일부러 고래의 사체를 가라앉히는 실험도 하고 있습니다. 2022년 중국 연구팀이 내놓은 결과에 따르면, 전 세계 45곳에서 자연적인 고래 낙하 현장이 발견됐다고 하네요.

호주 출신의 과학 논픽션 작가 리베카 긱스는 2021년 낸 책 <고래가 가는 곳>(원제 Fathoms)에서 이렇게 말하지요.

“죽음이 죽음으로 끝나는 것은 없다. 모든 생명의 죽음은 그것이 새 생명의 잉태에 기여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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