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수만 기록하는 디지털카드… 라운드 흐름·홀 위험도 파악안돼[최우열의 네버 업-네버 인]
종이카드 사용하던 시절엔
언더파는 ○ 오버파는 □ 로
페어웨이 안착 등도 기록해
디지털은 데이터 보존 장점
연습 자료로 활용은 불가능
골프업체 사업다각화 치중
골퍼 실력 향상에는 무관심
“기억은 기록을 이기지 못한다!(廣記不如淡墨)”
중국의 오랜 격언이자 스마트폰 앱으로 골프장 라운드 스코어를 기록·제공하는 한 정보기술(IT) 스타트업의 슬로건이다. 불과 몇 년 전에 서비스를 시작한 것 같은데 어느새 전국 골프장의 60%가 넘는 350여 개 골프장에서 서비스를 제공한다. 회원 수도 어느덧 300만 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이제는 오히려 종이 스코어카드를 제공하는 골프장을 찾기가 더 힘든 게 현실이다. 골프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 골퍼들은 심지어 종이 스코어카드가 있는 줄도 모른다. 이처럼 하루가 다르게 빠르게 변해가는 기술의 발전으로 예전에는 생활의 일부였거나, 당연하게 여겨지던 많은 것들이 우리 주변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다.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로 인해 편의점처럼 동네마다 몇 개씩 있던 비디오 대여점은 어느덧 옛 추억이 되었다. 스트리밍 음원 서비스의 활성화 여파로 이제는 CD는 물론, MP3 플레이어마저 멸종 일보 직전이다. 너무 빠른 변화의 속도가 아쉽고 애틋한 마음마저 드는 게 사실이지만 보수적인 골프계 역시 변화의 파고를 거스를 수는 없을 듯하다.
디지털 스코어카드는 종이 스코어카드와 비교해 데이터 보존과 이용 측면에서 분명 편리한 점이 있다. 하지만 기존 종이 스코어카드의 장점을 100% 이용할 수 없다는 아쉬움 역시 크다. 현재 디지털 스코어카드는 각 홀에서 기록한 골퍼의 타수를 단순 숫자로만 표시하고 있다. 한눈에 전체 라운드의 흐름과 양상을 파악하기 힘들다. 종이 스코어카드는 언더파의 경우 숫자에 동그라미를, 오버파의 경우 숫자에 네모를 표시한다.
홀 공략 전략 수립에 필요한 홀별 야디지와 스트로크 인덱스 정보도 빠져 있다. 특히 스트로크 인덱스는 대략 각 홀의 위험도나 난도를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된다. 스코어카드에 페어웨이 안착 여부나 퍼트 개수 등을 기록해 향후 연습에 필요한 자료로 활용하는 골퍼가 많은데 디지털 스코어카드에서는 불가능하다.
영원한 것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다. 기억이 소중한 만큼 망각이 절실할 때도 있다. 잊고 싶은 라운드가 있어도 데이터 수정이나 삭제 등 자신의 스코어에 대한 통제권이 없다. 가끔 캐디의 실수로 잘못된 스코어가 입력되기도 한다. 동반자들이 동의하면 수정 및 삭제가 가능하도록 바뀌었으면 좋겠다.
골프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 골프 스타트업의 등장이 반갑고 또 성공을 진심으로 바라 마지않는다. 하지만 가능성을 인정받아 여러 곳에서 큰 금액의 투자를 받은 이 업체가 사업의 본질인 라운드 스코어 정보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수익 모델의 창출보다는 고객 데이터를 이용한 사업 다각화에만 치중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골프장 정보, 골프 부킹, 골프 투어, 골프 보험, 골프 의류, 골프클럽 제조, 골프용품 유통 및 피팅, 골프 잡지, 골프백 제조 사업에 뛰어든 데 이어 골프장까지 인수했다. 문어발식 사업 확장을 일삼다 서비스 먹통 사태로 온 국민을 허탈하게 만든 ‘국민 메신저’의 악몽이 떠오르는 건 비단 나뿐일까.
서비스 안정화와 이중 백업 시스템 구축, 새로운 서비스 개발 등 핵심 역량 강화와는 다소 무관한 사업 확장은 불안해 보인다. 한참 라운드 도중 스코어가 지워지거나 몇 년간 쌓아둔 내 라운드 기록이 일순간에 사라지는 상황은 상상만으로도 아찔하다. GPS와 무선주파수(RF)칩 등을 이용해 자동으로 스코어를 기록할 뿐 아니라, 각종 경기 통계까지 산출하는 시대다. 미국의 샷링크나 아르코스 같은 기업들처럼 단순 스코어를 넘어 보다 부가가치 높은 라운드 통계와 정보 제공이 아쉽다.
골퍼의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드라이버 거리, 페어웨이 안착률, 그린 적중률, 평균 퍼트 수, 스크램블링, 샌드세이브율 같은 기본 통계에 각 클럽별 이득 타수, 그리고 골퍼의 라운드의 스윙 영상과 인공지능 스윙 분석 서비스까지 결합된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골퍼가 기꺼이 지갑을 열지 않을까.
국민대 골프과학산업대학원 교수
스포츠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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