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 논쟁] ④'공존' 해법은…타깃 중성화·돌봄지침 시급

홍준석 2023. 2. 13.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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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 줄이고 입양 늘려야…농식품부, 이달중 TNR 개편안 발표
마라도 뿔쇠오리 논의 주목…생태가치 크면 별도접근 필요
서울 종로구 창경궁에서 만난 아직 중성화하지 않은 길고양이 [촬영 홍준석]

(서울=연합뉴스) 이재영 홍준석 기자 = 효과를 두고 갑론을박이 있지만, 길고양이를 포획해 중성화한 뒤 서식지로 돌려보내는 이른바 TNR(Trap-neuter-return) 사업에 사용한 예산은 꾸준히 증가해왔다.

연도별로 보면 2020년에는 길고양이 7만3천632마리를 중성화하기 위해 106억9천400만원을, 작년에는 8만3천558마리를 중성화하기 위해 158억9천800만원을 사용했다.

길고양이 한 마리를 중성화하는 데는 20만원이 든다.

현실적으로 마땅한 대안을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먼저 고민할 수 있는 것은 개체 수 조절 효과를 보려면 TNR을 어떻게 시행해야 하는지다.

중성화율 75% 유지하려면…현황 파악·선택과 집중

75%.

마크 C. 앤더슨 미국 텍사스대 교수가 2004년 발표한 논문에서 '번식력(연간 번식 횟수·한배새끼수·성비)과 생존율 등을 고려할 때 TNR로 길고양이 개체 수를 조절하기 위해 달성해야 할 개체군 중성화율'로 제시한 수치다.

75% 중성화율을 계속 유지하려면 매년 개체군의 10∼20%를 추가로 중성화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치는 조금씩 달라지지만 TNR 주무 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 집행 주체인 지방자치단체·동물학계·수의사회는 모두 이런 부분을 인지하고 있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작년 기준 7대 광역시에는 길고양이가 67만7천50∼68만9천731마리 분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개체군 밀도 등 조건이 일정하다고 가정할 때 한국에서 TNR로 길고양이 개체 수를 유지하는 데 성공하려면 최소 50만7천788마리를 중성화한 뒤 매년 6만7천705마리 이상을 중성화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75% 중성화율을 달성한 뒤에도 7대 광역시에서만 매년 최소 135억4천100만원을 투입해야 한다는 얘기다. 최근 5년 동안 전국적으로 TNR에 사용된 예산은 연평균 108억9천880만원이다.

TNR 성공조건을 더 정확히 파악하려면 우선 현황을 더 면밀히 조사해야 한다.

TNR 국내 도입을 이끌었던 국경없는수의사회 김재영 대표는 "일단 길고양이 개체 수가 몇 마리인지 모른다"라며 "통계를 명확하게 만드는 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출발일 것"이라고 말했다.

개체군 크기를 조사하는 방법을 현행 '목시조사'에서 '포획 재포획' 방법으로 바꾸는 게 좋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재 길고양이 목시조사는 정해진 장소에서 5회 이상, 1회에 3∼4시간씩 눈으로 관찰해 기록하는 방법으로 이뤄지고 있다.

반면 포획 재포획은 먼저 채집해 표식을 달아 방사한 표본의 크기와 재차 포획한 무리 가운데 표식을 단 개체의 비율을 견줘 전체 개체군 밀도를 추정하는 연구 방법을 말한다.

길고양이 중성화사업 (CG) [연합뉴스TV 제공]

TNR 성공조건을 산출해내더라도 현실적으로 충분한 예산을 확보하기 어렵다면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여기서 자주 언급되는 것이 '타깃 TNR'이다.

타깃 TNR이란 '마리'가 아닌 '무리' 단위로 중성화수술을 시행하는 것을 말한다.

현행 TNR은 민원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다 보니 인력과 예산을 여기저기서 찔끔 사용하게 된다. 이럴 경우 번식 속도가 중성화 속도를 앞지르게 된다.

반면 타깃 TNR은 중성화 여력을 한곳에 집중하기 때문에 개체군 단위로 중성화율을 75% 이상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 이를 여러 차례 반복하면 개체 수가 조절되는 개체군이 누적된다.

대표적인 예가 서울시가 한 달에 한 번씩 운영하는 '중성화의 날'이다.

서울시는 '2021년 길고양이 서식 현황 모니터링 결과 보고'에서 향후 5년간 중성화 역량을 중성화율이 낮은 지역에 집중함으로써 길고양이 개체 수를 6만 마리 수준에서 조절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타깃 TNR을 부분적으로 적용해온 서울시의 길고양이 중성화율도 2021년 기준 49.0%로 목표 중성화율이라 할 수 있는 75%에는 못 미친다.

농식품부는 타깃 TNR을 전국으로 확산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타깃 TNR을 실시하려면 대규모로 길고양이를 포획하고 수술할 인프라를 갖춰야 하므로 지역별 여건을 살펴보고 있다.

농식품부는 이런 내용을 포함한 TNR 개편안을 이달 중 발표한다.

또 단기적으로 부담이 커지더라도 중성화율을 빠르게 높여 중장기적으로 효율성을 높이려면 TNR 예산을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는 의견을 재정 당국에 전달할 계획이다.

한편 대한수의사회 지부장협의회는 작년 2월 현행 '고양이 중성화사업 실시 요령'을 고쳐 몸무게가 2㎏ 미만이거나 수유 중인 길고양이도 중성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길고양이 급식소 [연합뉴스 자료사진]

외부요인 줄이려면…책임 있는 돌봄·반려 문화 조성

길고양이는 1년에 2∼4번 번식한다.

연간 번식 횟수는 은신처가 많고 먹이가 풍부할수록 잦아진다.

따라서 돌보미(케어테이커)가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제공하면 할수록 개체 수 조절에 성공하기 위해 도달해야 할 중성화율 기준이 높아진다.

무분별한 먹이 주기는 길고양이에게도 이롭지 않다. 개체 수가 늘어나고 밀도가 높아지면 영역 다툼이 증가하고 범백혈구감소증 등 질병에도 취약해진다.

돌보미에 대한 혐오도 커지는 실정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과거에는 발정기 울음소리에 대한 민원이 많았다면 최근에는 돌보미에 대한 민원이 증가했다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 갈등'으로 번져가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런 이유로 싱가포르나 미국 뉴욕시처럼 길고양이 돌봄 지침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서울시가 돌봄 지침을 마련 중이다.

먹이를 줄 때는 외부 노출을 최소화한 곳에서, 정해진 시간에, 한 번에 먹을 수 있는 양만 급여한다는 게 골자다. 외부 노출을 줄이는 데는 은밀한 곳에서 식사하는 고양이 습성을 고려하면서도 사람 간 갈등을 줄이는 의미가 있다.

급여량을 제한하면 먹이 부패로 인한 건강 문제를 예방하고 신규 개체 및 다른 야생동물의 유입을 막을 수 있다.

이와 함께 길고양이 급식소를 줄일 필요성이 제기된다. 서울시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서울에 길고양이 급식소가 1.9∼2.4마리당 1개씩 설치돼 과다하다는 평가가 있다.

서울시는 지난 6일에는 동물권행동 카라, 한국고양이보호협회 등과 '올바른 길고양이 돌봄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회의를 열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에 대한 의견은 다를 수 있지만 (시민단체들도) 돌봄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는 데는 기본적으로 동의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해외에는 일본 교토시처럼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줄 때 지침에 따르지 않을 경우 벌금을 주는 경우도 있다.

"사지 말고 입양하세요." [연합뉴스 자료사진]

집고양이 유기도 문제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17∼2021년 전국 지자체 동물보호센터에서 구조된 고양이는 15만2천789마리다. 연도별로 보면 2017년 2만7천83마리에서 2021년 3만2천98마리로 늘어났다.

같은 기간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처벌을 받은 사례도 34건에서 90건으로 늘어났다.

두 지표가 유기묘가 얼마나 많은지를 직접적으로 보여주진 않지만, 해당 기간 고양이 유기가 증가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호주 퀸즐랜드대가 2017년 실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전체 길고양이 개체군의 69%를 중성화하고 입양을 병행했을 때 중간값을 기준으로 개체군 규모를 2년여 만에 31% 줄일 수 있었다.

유기를 고려하면 입양의 중요성은 더 커진다.

뿔쇠오리 [연합뉴스 자료사진]

생태보전가치 크면…'이주 방사' 포함 별도 해법 고려

117마리.

작년 5월 한반도 최남단 마라도에서 서귀포시 축산과가 집계한 고양이 개체 수다.

마라도는 면적이 0.3㎢(축구장 42개 크기에 해당)에 불과하지만, 동아시아-대양주 철새이동경로(EAAF)에 위치한 중간기착지이자 난대성 해양 동식물의 터전으로서 보존 가치가 높아 2000년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됐다.

이 마라도에서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인 뿔쇠오리가 고양이에 의해 희생되고 있다는 민원이 최근 밀려들었다.

문화재청은 학계 전문가·동물보호단체·지역주민과 함께 공동 협의체를 구성해 고양이에 의한 생태 피해를 줄이기 위한 대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일단 뿔쇠오리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기 위한 조처가 필요하다는 데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한다.

마라도를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하게 한 고유의 연안 생태계를 보전하되 지역주민 의사를 존중한다는 원칙하에 고양이를 다른 지역으로 옮기는 '이주 방사'를 포함한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다.

다만 살처분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협의체에 참여하는 한 동물보호단체는 고양이를 집단 수용하는 보금자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별도의 의견을 내고 있다.

공동 협의체는 지난 10일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하려 했다가 기상 문제로 일정을 연기했다.

이외에도 전문가들은 길고양이 문제를 대하는 자세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얘기한다.

동물권행동 카라의 김현지 더봄센터장은 "인위적인 요인으로 발생한 부분에 끝까지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라며 "고양이를 특수한 동물로 취급하기보다는 생태계의 일부로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영 대표는 "(예를 들어 개는) 똑같은 개체여도 마당에 있으면 농식품부, 도로에 있으면 환경부 소관이다. 이렇게 관리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라며 "'동물청'처럼 동물을 보는 시각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가 있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뿔쇠오리 새끼 [연합뉴스 자료사진]

honk0216@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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