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바뀐 지방 권력 실감"…전국 곳곳에서 사안마다 충돌

변지철 2023. 2. 1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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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평등·영어통용도시·학생인권조례 등 갈등 이어져
일부 지역 전임 도·시정 '흔적 지우기' 비판 목소리

(전국종합=연합뉴스) 민선 8기 들어 전국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 권력이 새롭게 재편되면서 전국이 떠들썩하다.

[그래픽] 6.1 지방선거 정당별 당선 현황(종합) [연합뉴스 자료사진]

'성평등' 또는 '양성평등' 용어를 쓰는 것에서부터 영어통용도시 지정, 학생인권조례 개정 등 민감한 문제마다 여야가 충돌하는 모양새다.

심지어 전임 민선 7기 도정·시정의 주요사업이 민선 8기 들어 찬밥신세로 전락하는 등 일각에서는 '전임자 흔적 지우기'에 나섰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해 6·1지방선거 이후 지방권력이 4년 만에 180도 뒤바뀌면서 빚어진 현상이다.

17개 광역단체장 중 국민의힘은 12곳에서, 민주당은 5곳에서 각각 승리했다. 또 872명을 선출한 광역의원도 국민의힘이 540명을 차지해 322명에 그친 민주당을 압도했다.

총원 2천987명인 기초의원의 경우 2~5인 선거구인 이유로 국민의힘이 1천435명, 민주당이 1천348명을 가져가며 양분했다.

13일 전국 지자체와 지방의회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종합하면, 지난해에 이어 올해 들어 정책의 변화와 갈등이 더욱 두드러지진다.

경기도의회에서는 최근 '성평등' 용어를 '양성평등'으로 변경하는 내용의 조례안을 놓고 논란이 일었다.

국민의힘 소속 서성란 의원이 관련 내용을 담은 '경기도 성평등 기본조례 일부개정 조례안'을 대표 발의했고, 국민의힘 의원들을 중심으로 18명이 공동발의자에 이름을 올렸다.

서 의원은 개정 이유에 대해 "기존 조례는 양성평등기본법의 양성평등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제정됐음에도 상위법의 범위를 벗어나 동성애, 트랜스젠더, 제3의 성 등의 젠더를 의미하는 '성평등'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며 "이에 상위법의 양성평등 이념에 일치하도록 용어를 정비하고, 조례의 범위를 명확히 함으로써 법체계의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건강한경기도만들기도민연합·경기도기독교총연합회 등 여러 단체의 지지선언이 이어졌다.

경기도의회 [촬영 김경태]

그러나 경기자주여성연대 등으로 구성된 '성평등민주주의실현을 바라는 경기도 내 단체들'은 보도자료를 통해 "'성평등'은 남녀 관계의 평등뿐 아니라 여성과 사회구조적 불평등의 문제 해결을 위한 총체적이고 종합적인 목표이자 방법론의 문제"라며 "조례 개정 추진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고 반대했다.

이들 단체는 이어 "'조례 명칭이 상위법(양성평등기본법)과 충돌한다'는 설명은 개정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가 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찬반 논란이 이어지자 경기도의회 여성가족평생교육위원회는 지난 7일 전체 회의를 열어 "민감한 사안으로 논의가 더 필요하다"는데 의견을 모으고 해당 조례개정안을 다음날 예정된 임시회 처리안건에 올리지 않기로 했다.

인천에서는 경제자유구역인 송도국제도시를 영어통용도시로 지정하는 문제를 놓고 찬반이 한창이다.

인천시 산하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은 지난달 '영어통용도시 추진위원회 구성 조례안'을 입법 예고했다.

국민의힘 소속 유정복 인천시장이 지난해 지방선거 때 내세운 '송도 영어통용도시 지정' 공약을 실현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인천시는 오는 21일 조례규칙심의회를 열고 해당 조례안을 심의해 시의회 상정 여부를 정할 예정이지만, 영어통용도시의 기본 개념조차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글문화연대 등 시민단체의 반대 등 난항이 예상된다.

송도국제도시 인천 신항 전경 [인천항만공사 제공]

경기도와 전북 등은 학생인권조례 개정을 둘러싸고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보수 성향의 임태희 교육감을 수장으로 맞은 경기도교육청은 9일 올해 안에 경기도 학생인권조례의 개정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학생의 인권 보장보다는 학생의 책무를 강화하는데 방점이 찍혔다.

임 교육감은 취임 기자회견과 신년 인터뷰 등에서 "어느 학생이 다른 학생들에게 불편을 끼쳐도 학생인권조례 때문에 교사가 아무런 조치를 할 수 없는 비정상을 고치기 위해 자율 속 책임을 배울 수 있도록 조례를 보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전북도교육청은 학생참여위원회 설치 의무규정을 권고규정으로 바꾸는 내용의 전북학생인권조례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가 시민사회단체의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북지부와 전북평화와인권연대 등 10개 단체는 "도교육청이 각종 위원회 정비를 입법예고 하면서 전북학생인권조례 제40조에 규정된 학생인권심의위원회 규정을 '둔다'에서 '둘 수 있다'로 바꾸고, 동 조례 제41조의 '전북 학생참여위원회' 조항을 삭제했다"면서 "이는 인권보장의 의무를 지고 있는 지방자치단체가 자신의 역할을 축소하고, 자치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행태"라고 지적했다.

세종시의회 전경 [세종시의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세종시에서는 민주당 김효숙 시의원이 대표 발의한 '청소년의회 구성 및 운영에 관한 조례안'이 논란 끝에 보류됐다.

조례안은 청소년들이 청소년 관련 정책에 대해 자유롭게 의사를 표명하고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하지만 청소년의원 임명 과정에 특정 정당 인사들이 개입되면 청소년들이 치우친 정치이념을 가진 정치적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는 국민의힘 소속 시의원과 보수 성향 학부모 단체의 반발로 시의회 상임위원회 심의 과정에서 보류됐다.

지난 민선7기 도정·시정의 주요사업이 민선8기 들어 존폐위기에 몰리기도 한다.

춘천시의회는 지난해말 당초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올해 청년청 운영비 5억3천만원을 사무 중복과 특정 조직 집중 지원 등을 이유로 전액 삭감했다.

청년청은 민선 7기 시절인 2019년 춘천시가 청년 네트워크와 정책을 발굴하는 등 청년 복지를 위해 만든 사업이지만 예산 삭감으로 사실상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이밖에도 민선 7기 사업의 일부 예산이 삭감됐다.

민주당 소속 춘천시의회 한 의원은 "민선 7기 시절 추진했던 일부 핵심 사업에 대해 잘못된 부분을 개선할려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운영을 못하게 하는 것은 갈등으로 비칠 수 밖에 없다"며 "사업을 시작해 1∼2년을 운영하면서 씨를 뿌려놓고 수확을 시작할 시점에 다시 폐기하는 것은 무책임하다는 목소리도 있다"고 말했다.

춘천시의회 의사봉 [연합뉴스 DB]

강원도는 지난해 6월 국민의힘 김진태 지사 취임 후 혈세를 낭비하는 보조금 지원사업에 대해 재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 평창국제평화음악제 지원 중단을 결정했다.

2018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2019년 시작한 평창국제평화영화제는 강원도 18억원, 평창군 3억원의 지원으로 개최돼 왔으나 올해는 예산 지원이 끊기면서 열리지 않는다.

울산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국민의힘 소속 김두겸 시장이 이끄는 민선8기 울산시는 전임 민주당 송철호 시장 당시 추진한 남북교류협력기금 조성 사업을 폐지했다.

애초 남북교류협력기금의 존속 기한은 지난해 연말까지로 설정돼 있었는데, 시는 기금을 연장 운영하지 않고 일반회계로 통합 운영하기로 했다.

또 기금 조성의 근거와 운영·관리 규정을 담은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조례'는 시의회의 절차를 거쳐 폐지됐다.

시는 조례 폐지 이유로 '장기간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추진사업이 없어 실효성이 없다'라고 밝혔다.

해당 조례의 존폐 사례는 대북 정책을 바라보는 전·현직 시장의 극명한 시각차가 반영된 결과로 분석된다.

(김동철 신민재 최종호 이상학 허광무 변지철 기자)

bj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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