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 정치를 자유롭게 담론하려면

윤주명 순천향대학교 교수 2023. 2. 1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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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명 순천향대학교 교수

일상 생활에서 정치적 담론을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 정치는 시민 모두가 자유롭게 입에 올릴 수 있어야 하는 공유재이다. 우리는 시민으로서 납세를 하고 이 재원으로 정치인들의 활동을 지원한다. 이런 의미에서 정치는 시민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그럼에도 오늘날 펼쳐지는 정치적 담론 과정의 현실은 아이러니 그 자체이다. 정치적 담론은 공식적 정치인들이나 이들을 소재로 생활하는 소위 직업적 정치재담꾼들이 독점하다시피 하고, 정작 정치의 주인인 시민들은 맘놓고 정치를 입에 담지도 못하는 형편이다. 그 이유는 정치를 말하다가 지인들과 불화가 생길까 염려하기 때문이다. 사적 담화에서 정치는 금기어가 되고 말았다. 한 때는 가족.친척, 친구, 동료들은 물론 잘 모르는 사람들끼리도 만나기만 하면 날씨이야기 만큼이나 쉽게 하던 대화의 소재가 정치였는데 말이다.

우리의 일상에서 정치적 담론이 사라진 것은 우리 사회의 변화와 문화를 반영한다. 민주화의 진척과 90년대 이후 정당 간 정권의 실질적 교체가 이뤄지고 정치적 자유도 신장되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선호정당이나 정치적 성향을 비교적 자유롭게 표명할 수 있게 된 한편, 이에 걸맞게 정치적 토론을 지성적으로 펼칠 만한 시민적 역량은 충분히 갖추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정치 담론 중에 서로의 견해 차이가 나오면 기분이 상하고 인간관계도 금이 간다.

한편, 문화적으로 한국인들은 사람들과 불화하기보다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려는 정적 인간주의 성향이 강하다는 게 정설이다. 이러한 사회의 변화와 전통문화의 만남은 한국인들이 정치적 담론 중에 인간관계가 깨어지느니 차라리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마음 깊은 곳에 가라앉히고 여간해서는 정치적 진심을 드러내지 않는 전략을 선택하도록 만든다.

우리의 심리 저변에 가라앉은 공공적 이슈 곧 정치적 담론을 다시 수면 위로 끌어 올려 담론민주주의를 꽃피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서는 우선 생각의 틀을 바꾸어 보는 인지적 전략을 중심으로 논의해 보고자 한다.

먼저, 우리는 한국의 주요 정당 간 이데올로기 거리가 생각보다 가깝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흔히 주요 두 정당을 진보-보수의 대립구도에서 양자가 대단히 적대적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두 정당 모두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보수 정당이다. 그러므로 두 정당 지지자들은 자신들의 이념적 거리가 생각보다 가깝다는 것을 인지하고 상대에 대해 좀더 너그러울 필요가 있다.

둘째, 우리는 규범적으로 민주적 인간관에 바탕을 두고 살아야 한다. 국가들이 대외적으로 민주주의를 천명하고 개인도 권위주의적이기 보다 민주적 인간임을 선언하는데, 민주적 인간의 중요한 요건의 하나는 가치를 공유하며 타인이 추구하는 가치를 존중하는 것이다. 자신의 가치만 옳고 다른 가치를 가진 타인을 이단으로 규정하는 자세는 민주적 인간형이라 할 수 없다.

셋째로 정치를 권력획득을 위한 하나의 게임으로 보아 승과 패의 순환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자세도 정치적 견해 차이로 인한 불화 해소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민주-반민주의 대립구도가 해소된 오늘의 한국에서 정치는 주기적 선거를 통해 권력 획득 여부가가 판가름나는데, 한 정치집단이 이번에 이겼다고 다음에 반드시 이긴다는 보장이 없다. 패자는 다음 선거에서 승리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면 된다.

끝으로 정치 담론을 즐기는 자세가 필요한데, 이것을 위해 시민들은 정치적 담론에서 감정분출을 자제하고 자신의 주장을 조리 있게 펼치는 논증적 토론자가 되어야 한다. 정치적 담론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주장을 제시하면서 그 이유와 근거를 대고 상대의 반론을 듣고 수용할 것은 수용하는 열린 자세를 가져야 한다. 새봄과 함께 정치 담론의 꽃도 활짝 피어나길 기대해 본다. 윤주명 순천향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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