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기구] 장인이 찾아낸 황금비율…세계인 ‘K-호미’ 찬가

서지민 2023. 2. 13.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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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기구 만드는 ‘영주대장간’을 가다
“이런 섬세한 가드닝 도구 처음이야”
석노기 장인의 반세기 내공 결정체
세계 최대 온라인몰 아마존서 ‘불티’
“내 물건 산 사람이 손해봐선 안된다”
원하는 각도·두께 찾을 때까지 손질
공장제품에 밀려 찾는 이 줄었어도
대장장이의 열정은 여전히 ‘2000℃’
석노기 장인이 모루 위에 빨갛게 달군 쇠를 올려두고 망치로 두드리고 있다.

한겨울 추위가 물러가면서 서서히 농사 준비도 시작되고 있다.

이런 분위기를 가장 생생하게 실감할 수 있는 곳이 대장간이다.

이곳에서 들려오는 바쁜 망치질 소리는 머지않아 다가올 농사철의 신호탄인 듯.

또 우리 주변의 크고 작은 공간에 전시된 많은 농기구를 보면

조상의 숨결과 지혜가 느껴진다. 새봄을 맞아 체험 등을 통해

우리 농기구의 가치를 재발견해보면 어떨까.

55년 경력의 대장장이 석노기 장인.

원예에 관심 좀 있다 하는 미국 사람들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케이(K)-호미’를 칭찬한다. 유튜브에선 외국인이 호미의 장점을 설명하는 영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세계 최대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에선 경북 영주 최고 장인이 만든 호미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K-호미의 힘을 알리고 있는 주인공은 경북 ‘영주대장간’에 있는 석노기 장인(70)이다.

경북 영주시 휴천동. 영주역 중앙선 철로 뒤편에는 하루도 빠짐없이 망치질 소리가 울려 퍼지는 영주대장간이 있다. 문밖에서부터 ‘땅땅’ 쇠 두들기는 소리가 들린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가지런히 진열된 농기구가 눈길을 빼앗는다. 낫·괭이·호미·쇠스랑·거름대는 물론 식칼과 과도·가위가 날카로운 날을 뽐내며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영주대장간에서 만드는 농기구는 40여가지에 달한다.

크고 작은 기구들이 들어선 대장간 안은 자유롭게 걸어 다니기도 힘들다. 가마 속에는 2000℃가 넘는 뜨거운 불길이 치솟고, 대형 망치가 달린 기계는 메질을 멈추지 않는다. 강철 부딪히는 소리가 귓전을 울리고 후끈후끈 느껴지는 열기가 혼을 쏙 빼놓는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경북 영주대장간. 이곳에서 만드는 호미는 세계 최대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에서 큰 인기를 얻으며 팔리고 있다.

“대장간에 들어오면 원래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대화 소리도 잘 들리지 않으니 작업할 때도 군소리 없이 오직 내 앞에 놓인 쇳조각 하나에만 집중하는 거죠.”

석 장인은 영주대장간의 대표 상품인 호미를 만들고 있었다. 그는 우선 15㎝ 정도 돼 보이는 쇠막대기를 들어 보였다. 그리고 “화물차에 주로 쓰는 ‘판 스프링’인데 폐차 후 남은 걸 가져온다”며 “재질 자체가 견고해서 호미로 만들기 딱”이라고 설명했다.

1차로 판 스프링을 가마에 넣었다 뺀다. 이를 기계로 연신 두드려 5∼6배 길게 늘여준다. 석 장인이 모루(단조작업을 할 때 쓰는 받침대) 앞으로 자리를 옮긴다. 오른손엔 작은 망치가 들려 있다. 얇아진 쇠막대기는 다시 가마에 들어갔다 나와 빨갛게 달아올랐다. 석 장인이 이를 모루에 올려 재빠르게 두드린다. 이렇게 하면 쇠 조직이 치밀해져 내구성이 우수해진다. 이어서 쇠를 잡은 손을 이리저리 비틀며 굴곡을 만들고 뾰족한 날을 살려준다.

“쇠는 작업자의 속도를 기다려주지 않고 1분만에 식어버려요. 그사이에 충분히 두들기고 모양을 잡아주지 못하면 굳어서 이도 저도 못하게 되죠. 불에 달궜다 망치로 두드리는 과정을 6∼7번 반복해야 질 좋은 농기구가 완성돼요.”

‘ㄱ’자로 생긴 호미는 생김새가 단순해 보이지만 실상 그렇지 않다. 각도와 두께가 황금 비율로 딱 맞아야 손에 잘 드는 기구로 인정받는다. 손잡이에서 날이 꺾이는 각도는 30도가 적당하다. 호미질할 때 가장 손목에 부담이 덜 가는 형태다. 두께는 꺾이는 부분이 가장 두껍고 날 끝으로 갈수록 얇아지는 것이 좋다. 날 끝은 최대한 뾰족하게 만드는 것이 기술이다.

명품 호미는 입소문을 타고 세계인의 사랑을 받게 됐다. 2019년 영주대장간 호미가 세계 최대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 원예 부분 상품 톱(Top) 10에 이름을 올렸다. 한 도매업자가 석 장인이 만든 제품을 아마존에 올렸는데 예상치 못한 선풍적 인기를 끌게 됐다.

호미가 외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섬세함 때문이다. 대규모 경작이 발달한 미국과 캐나다 등에선 세밀한 작업을 할 수 있는 농기구가 거의 없어 호미가 신선하게 느껴진 것. 호미는 잡초 한두포기를 콕 집어서 뽑아낼 수 있을 정도로 섬세한 작업이 가능하다. 미국 등지에서 마당에 작은 텃밭을 가꾸는 ‘홈가드닝’이 유행하며 호미를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한 구매자는 “외국에 있는 삽은 대부분 굴곡이 없어서 땅을 팔 때 힘을 많이 실어야 한다”며 “호미는 구부러져 있어서 쉽게 작업할 수 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석 장인은 지금처럼 업계 최고가 될 수 있었던 이유를 ‘고집’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14세란 어린 나이 때부터 대장간에서 가마에 바람을 불어넣는 풀무질을 하며 막내 노릇을 시작했고, 쉬지 않고 달려온 결과 2018년 경북도 최고 장인으로 선정됐다. 55년 동안 그가 내건 유일한 목표는 ‘영주대장간에서 물건을 산 사람은 손해를 봐선 안된다’ 하나뿐이다.

“나도 사람이니까 100개 농기구를 만들면 한두개는 하자가 생길 수 있잖아요. 그렇지만 그 한두개를 사 간 사람한테는 내가 100% 능력 없는 대장장이가 되는 거죠. 그래서 우리는 무조건 무상 사후서비스(AS)를 해줘요. 원하는 각도에 맞춰 고쳐주기도 하고, 날을 더 날카롭게 벼려주기도 해요. 그러면서 어떤 각도가 황금 비율이고 얼마나 날을 살려야 사용하기 편한지 차츰 깨닫게 된 거죠.”

시대가 바뀌면서 마을마다 있던 대장간은 이제 대부분 사라졌다. 농업이 기계화되고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내는 농기구가 싼값에 판매되면서 대장간을 찾는 이가 줄어든 탓이다. 그렇지만 아직도 신념을 가지고 대장간을 유지해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흔히 대장장이 일을 ‘도면 없는 예술’이라고 해요. 정해진 규격이나 기준이 없어 오로지 감으로 작업을 할 수밖에 없거든요. 매일같이 손끝으로 칼날을 느끼며 내공을 쌓은 덕분에 지금 장인 소릴 듣게 된 거죠. 대장장이 신념과 열정이 들어간 K-농기구, 어디 한번 믿고 써보시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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