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와 세상] 고백하기 좋은 날
서양에서 수입된 밸런타인데이는 여성이 남성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날이다. 초콜릿을 건네는 것만으로도 속마음을 전할 수 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사랑을 고백하는 노랫말에서도 곳곳에서 망설임의 흔적이 역력하다.
1970년대 송창식은 ‘맨 처음 고백’에서 “몹시도 힘이 들어라/ 땀만 흘리며 우물쭈물 바보 같으니/ 화를 내면 어쩌나 가버리면 어쩌나/ 눈치만 살피다가 한 달 두 달 세 달”이라고 노래한다. 유리상자는 ‘사랑해도 될까요’(2001)에서 “조심스럽게 얘기할래요/ 용기 내 볼래요/ 나 오늘부터 그대를/ 사랑해도 될까요?”라고 노래한다.
여전히 조심스럽지만 윤하의 ‘고백하기 좋은 날’(2008)에 이르면 답답할 정도는 아니다. “사랑한단 그 말보다 더 좋은 말은 없을까요/ 사랑이란 흔한 말로는 내 맘 전할 수 없는데/ 너무 망설였지만, 오늘은 꼭 말할래요”라며 적극성을 보인다. 볼빨간사춘기도 ‘좋다고 말해’(2016)에서 “널 참 많이 좋아하는 난데/ 우린 이어질 수 없는 걸까/ 내 긴 교복 치마가 부끄러워 초라해. 예/ 네 곁엔 항상 키 크고 예쁜 애들이 넘치는데. 우 후아”라고 노래한다.
밸런타인데이는 269년 로마 황제의 허락 없이 결혼이 금지됐던 시대에 결혼을 성사시켜준 죄로 사형당한 성 발렌티누스를 기리는 날이었다. 이런 날이 초콜릿을 건네는 날로 변질한 건 기업들의 상술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어쨌든 사랑 고백은 시공간을 초월한다. 박단마의 ‘나는 열일곱 살이에요’(1938)는 지금보다 파격적이다. “나는 가슴이 두근거려요/ 당신만 아세요. 열일곱 살이에요/ 가만히 가만히 오세요. 요리 조리로/ 파랑새 꿈꾸는 버드나무 아래로.”
고백하라. 그래야 사랑이 시작된다.
오광수 시인·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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