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산책] 집권자 이기심에 무너진 달력의 원칙
해가 뜨고 지는 것으로 날을 세던 서양과 달리 우리나라는 달이 차고 기우는 것을 기준으로 날을 셌다. ‘달력’이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 하지만 이 말이 쓰이기 시작한 것은 100여년 전이다.
조선시대에는 지금의 달력을 ‘책력(冊曆)’이라 불렀다. 날짜 외에 해와 달의 운행, 월식과 일식, 절기 등도 적어 놓은 책이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역서(曆書)’라고도 했다. 달력의 북한 문화어(표준어)가 ‘력서장(曆書帳)’인 것이 이 때문이다. 북한은 한자어 표기에 두음법칙을 적용하지 않는다.
지금과 같은 달력을 만들어 쓰도록 한 인물은 흔히 ‘시저’로 잘못 쓰는 율리우스 카이사르다. 로마의 정치가인 그는 기원전 46년에 ‘365일 6시간’을 1년으로 하고 4년마다 1일이 많아지는 윤년을 두도록 했다. 그러면서 홀수 달은 31일, 짝수 달은 30일로 정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1년이 366일이 된다.
카이사르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1년 중 마지막 달인 2월에서 하루를 빼 29일로 만들었다. 당시에는 3월이 한 해를 시작하는 달이었다.
그런데 카이사르에 이어 권력을 잡은 아우구스투스는 카이사르가 태어난 7월이 31일인 반면 자신이 태어난 8월은 30일인 것이 싫었다. 이에 2월에서 하루를 가져다 8월에 더했고, 가뜩이나 부족하던 2월의 날수가 하루 더 줄어 28일이 됐다. 8월이 31일로 늘면서 9월은 30일로 줄고 10월이 31일로 되는 등 기준도 뒤죽박죽됐다. 한 집권자의 이기심으로 원칙과 공정이 무너진 사례다.
달력을 뜻하는 외래어 ‘캘린더’도 로마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카렌다’로 잘못 쓰기 쉬운 캘린더의 어원인 ‘칼렌다리움’은 로마시대에 ‘빚 장부’를 뜻하던 말이다. 로마에서는 빚의 이자를 매월 첫째 날인 ‘칼렌다에’에 지불했고, 그래서 만들어진 말이 칼렌다리움이다.
당시 많은 로마인이 칼렌다리움을 보면서 한숨을 쏟아냈을 터이고, 다른 누군가는 이를 한 장씩 넘기며 웃음을 지었을 것이다. ‘시간이 돈이다’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닌 듯하다.
엄민용 기자 margeu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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