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日 시민들 “안전, 우리도 책임”

최원국 도쿄 특파원 2023. 2. 13.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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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유가족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6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설치된 분향소 앞에서 서울시의 분향소 행정대집행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박상훈 기자

핼러윈 참사가 발생한 지 100일이 지났다. 참사 초기 우리 사회의 모습은 2001년 일본 아카시시(市)에서 발생한 압사 사고를 겪은 일본의 모습과 공통점이 있다. 사고 직후 두 나라는 시민사회와 정치권이 나서 철저한 사고 원인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 두 참사 모두 경찰과 행정 당국이 사전에 적극적으로 안전 대책을 수립하지 않았고, 사고 징후 포착 후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은 점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그러나 두 나라는 시간이 지날수록 차이점이 더 두드러져 보인다. 참사 이후 일본 여론은 “경비 당국은 물론 행사 참가자를 포함해 시민들 모두 안전을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많았다. 질서와 규칙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일본에서 인파에 밀려 어린이와 노인 등 약자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에 시민사회에선 반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일본 주요 일간지에는 실명으로 시민들이 안전에 소극적이었던 스스로를 반성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주부 나카하마씨는 요미우리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군중 속에서 개개인의 행동 방식에 대해 일본인 전체가 반성해야 한다”며 “어린이나 노인에게 상냥하고 배려하는 일본인은 모두 어디로 사라졌는가”라고 지적했다. 나고야의 와타나베씨는 아사히신문에 “일본인이 집단 안에서는 매우 이기적이라는 모습을 보여줬다”며 “콘서트장, 놀이공원, 공항 등에서 이기심과 성급함에 경찰 등 관리원의 지시에 따르지 않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당시 34세 사토씨는 마이니치신문에 “이번 사고의 근본적인 원인은 시민으로서 기본적인 질서를 지키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일본 정치권은 철저한 원인 규명을 통한 재발 방지에 모든 초점을 맞췄다. 아카시시 의회는 “사고 원인을 규명해 적절한 보고를 받고 이에 따른 정확한 대응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도시 방재 전문가, 재난 전문 구급 의사, 건축 공학자 등으로 구성된 사고 조사위원회를 결성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보고서를 만들었다. 사고 발생 후 두 달 만에 열린 합동위령제에서 유족들은 “이런 사고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희생자들을 기리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우리 사회는 어떤가. 참사 초기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시민들의 추모에는 자성의 목소리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참사는 이내 정쟁(政爭)의 도구가 돼버렸다. 지난 4일엔 민노총·시민단체·유족단체가 추모대회를 열고 서울시청 앞에 분향소를 불법적으로 기습 설치했다. 경찰 통제가 미흡해 참사가 일어났다고 지적하는 이들이 정작 경찰 통제에 따르지 않고 몸싸움을 벌였다. 참사가 정쟁으로 전락하면서 사고에 대한 시민사회의 반성, 안전하게 축제를 즐길 방안 등을 고민하는 목소리는 이제 거의 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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