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시리아, 비극의 땅에 다시 비극이 덮쳤다

이하원 국제부장 2023. 2. 13.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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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넘는 내전으로 40만 사망
叛軍 점령지 지진에 5000명 숨져
튀르키예 너머론 관심·지원 급감
국경선으로 차별받는 생명 없어야
지난 6일 지진으로 시리아 이들리브 하렘타운의 건물들이 무너져 내린 가운데 주민들이 구조작업을 하고 있다./AP 연합뉴스

하루에 사망자가 4000~5000명씩 늘어나는 중동 대지진을 다루느라 분주할 때인 9일 저녁이었다. 후배 기자에게 시리아 정부군의 만행과 관련된 보고를 받자마자 나도 모르게 분노 섞인 말이 튀어나왔다.

지난 6일 규모 7.8의 강진 발생 후 2시간 만에 시리아 정부군이 진원에서 가까운 반군(叛軍) 장악 도시 마레아를 폭격한 것이 뒤늦게 알려진 것. 시리아 정부군이 쏜 포탄 4~5발이 자유시리아군(FSA)이 점령 중인 도시에 떨어졌다. 영국 하원의 얼리셔 컨스 외교위원장이 적시에 논평했다. “반군이 장악한 도시가 강진 여파와 씨름할 때 공격받았다.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냉혹하고 극악한 명령에 따른 것”이라고 분노했다.

12일 현재 3만명 넘게 사망한 중동 대지진에서 튀르키예에는 국제적인 구호와 관심이 쏠리지만, 시리아는 그렇지 못한 배경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시리아와 전쟁 중인 이스라엘은 인도적 지원을 결정했지만, 아사드 독재 정권은 이를 거부한다고 발표해 논란을 가중하기도 했다.

지진 발생 직후 튀르키예에는 100국이 넘는 나라에서 지원 의사를 밝히거나 필요한 물품을 신속하게 보냈다. 여러 나라에서 구호대를 즉각 파견했다. 100명이 넘는 역대 최대 규모 ‘대한민국 긴급구호대(KDRT)’도 현지에서 사력을 다하고 있다. 주한 튀르키예 대사는 본지 인터뷰에서 “도와주겠다는 한국 국민의 전화가 하도 많이 와서 먹통이 될 정도”라고 말하기도 했다.

약 5000명이 사망하고, 수백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시리아는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100년 만의 최대 지진이 덮친 지역이 묘하게 아사드 독재 정권에 맞서 싸우는 저항군이 장악한 지역과 겹쳐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시리아 내전이 10년 이상 계속되면서 시리아 북서부는 고립된 땅이 돼 버렸다. 러시아의 도움을 받는 아사드 정권의 공격으로 도시 기능이 마비된 지역이 많다. 지진 피해가 심각한데 현지를 장악 중인 저항군은 매몰된 이들을 구해내거나 이재민을 거둘 만한 행정 능력이 크지 않다. 아사드 정권은 반군 지역 지원에 미온적이다. 시리아는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고 있어 국제 구조대가 조기에 투입되지도 못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시리아에 대해 “완전한 재앙 그 자체의 모습이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고 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 나온 말이다.

시리아는 국제정치에 관심을 가진 이들에게는 절망을 상징하는 나라다. 화학무기까지 동원한 아사드 정권의 악행과 내전으로 40만명이 사망했다. 해외로 도피한 난민이 500만명, 국경을 넘지 못하고 떠도는 난민은 700만명으로 추산한다. 냉전 종식 후 최대 규모의 희생자가 나왔지만, 국제사회가 외면해 버렸다.

북한 핵 문제를 ‘전략적 인내’라는 그럴싸한 이름으로 재임 8년간 방치한 버락 오바마 당시 미 대통령은 시리아 문제도 회피했다. 시리아 정부군이 화학무기를 사용, 미국이 정한 레드라인을 넘었지만, 적극 개입하지 않은 채 ‘사후 제재’만 남발하다가 여기까지 왔다.

일간지 국제 뉴스 책임자로 일하면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에 이어서 중동 대지진으로 사람들이 속절없이 죽어가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 비극의 땅에 왜 다시 비극이 겹치는가. 하늘의 뜻을 알지 못한다. 알 도리도 없다. 다만, 국경에 그어진 선(線) 하나 때문에 생명이 차별받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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