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 소리] 인간으로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윤영 인디고잉 편집장 2023. 2. 13.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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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영 인디고잉 편집장

튀르키예와 시리아에서 일어난 지진의 피해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커지고 있다. 연일 보도되는 뉴스 속에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 아직 구조되지 못한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달려가는 살아남은 자들의 마음은 얼마나 애가 탈까.

1755년 11월 1일,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대지진이 일어났다. 그날은 만성절이었고, 교회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당시는 측정 도구가 없어 정확히 파악할 수 없으나 진도 약 8.5~9 정도의 엄청난 지진이 일어나 건물이 무너졌고 곧이어 해일이 몰려왔다. 순식간에 리스본은 폐허가 되었고, 약 3만~4만 명이 사망했다. 당시 포르투갈 전체 인구가 300만 명이었으니, 엄청난 숫자다. 유럽 전역이 충격에 휩싸였다. 당시는 신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믿었던 시대였다. 신이 선한 자에게는 은총을, 죄를 지은 자에게는 벌을 내린다 믿었는데, 이 지진은 그 원리대로 설명할 수가 없었다.

리스본 대지진은 계몽주의의 시발점이라고 여겨진다. 신의 뜻으로 여기는 게 아니라 인간의 이성으로 생각하고 이해하고 판단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표적인 계몽주의자 볼테르(1694~1778)는 대지진에 대한 글을 여러 편 남겼는데, ‘리스본 대지진에 관한 시’에 그는 이렇게 적었다. “리스본은 폐허가 되었는데, 여기 파리에서 우리는 춤을 추네.” 대지진에 무참히 스러져간 사람들을 똑바로 보기 시작한 ‘인간’이 생각해낸 것은 바로 극명하게 대비되는 운명에 대한 의문이었고, 인간으로서 져야 할 책임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뇌였다. 지진의 피해를 입은 자들은 신의 벌을 받은 것이 아니라 불가항력에 고통을 받은 자들이고, 그들을 구해내고 상처를 보듬어 줄 수 있는 것은 살아남은 자들의 몫이었다. 신이 아니라 인간이 해내야 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계몽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어떠한가.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는 건물들에 신을 부르며 탄식하기는 하지만, 이제 우리는 지진이 신의 벌이 아니라는 것쯤은 모두 알고 있다. 리스본 대지진 이후 지진을 학문으로 연구했고, 지진이 생기는 이유와 그 크기를 측정하는 단위까지 만들었다. 그리고 이 엄청난 재앙을 딛고 일어서야 하는 것이 살아 있는 우리 모두의 몫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지진의 공포에 떠는 튀르키예와 시리아는 폐허가 되었는데, 여기 한국에서 우리는 춤을 추고 있다. 감당할 수 없는 폭우로 국토의 1/3이 잠긴 파키스탄은 폐허가 되었는데, 여기 한국에서 우리는 여전히 탄소배출 악당 국가로 살아가고 있다.

이제 신이 아니라 자연이 우리에게 내리는 벌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조금만 생각해도 알 수 있듯, 그렇지 않다. 리스본 대지진이 당대 사람들의 믿음과 생각을 바꿔 세계를 변화시켰듯, 우리는 비극적인 재앙 앞에서 우리의 생각을 반성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자연은 우리를 벌하지 않았고, 동시에 누군가만 누리라고 자신의 풍요를 베풀지도 않았다. 석유가 나는 나라가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는 일은 당연하지 않고, 가스가 나는 나라가 그것을 무기 삼아 전 세계를 위협하는 일은 부당하다.

내전으로 폐허가 된 시리아의 다라야에는 지하 비밀 도서관이 있었다. 서로를 죽고 죽이는 대상으로만 여기는 전쟁터에서 청년들은 버려진 책들을 모아 도서관을 만들었다. ‘인간성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인간이 서로를 죽이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과 세계의 평화를 염원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을 믿기 위해서였고, 새로운 세계가 가능하다고 상상하기 위해서였다. 폐허가 된 튀르키예에도 건물의 잔해들을 모아 쌓아 올리며 천진난만하게 놀고 있는 아이들이 있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절망 속에서도 살고자 하는 의지, 희망을 꿈꾸는 것이 인간이다.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현실을 직시하고, 그 속에서도 희망을 찾기 위해 ‘인간으로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통렬한 사유와 그에 따른 행동이다. 인간의 본성을 지키기 위해, 희망을 꺼트리지 않기 위해 튀르키예와 시리아를 돕는 게 아니라, 인간이 인간을 구하는 일로 여겨야 한다. 인간이라면, 이성을 가진 인간이라면 이 거대한 지진을 대하는 자세는 그래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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