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교육분권, 속도전이 필요하다

이선정 기자 2023. 2. 13.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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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정부 시동 건 교육분권…전 RIS 사업서 부산 탈락
전략·비전·콘텐츠 부재…市 지산학 육성 말뿐인가

기자는 11년 전 본지에 ‘지역거점 대학 키우자’ 제목의 기획물을 9회에 걸쳐 연재했다. ‘인 서울’ 블랙홀로 추락해가는 위상에 학령인구 감소까지, 당시 복합 위기 앞에서 지역대학이 경쟁력을 키우려면 어떤 해법이 필요할지를 살펴보는 기획이었다. 지방에 위치하지만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유수의 글로컬 대학을 현지 취재했는데, 지방자치단체 주도의 지역-대학 간 협업이 필수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프랑스 사례를 보자. 1980년대에 국립대 시설 증설 등 지원을 주정부가 하도록 관련 법이 개정돼 시설 개보수는 물론 실험장비 구입이나 연구개발비를 지자체가 지원하는데, 이 과정에서 주정부는 연구개발비를 늘려 자연스럽게 산·학·관 연계를 유도했다. 스트라스부르대가 속한 알자스주는 주 전체 연구개발비의 40%는 주정부가, 나머지 60%는 기업이 대도록 해 산업체도 적극 끌어들였다. 요즘 우리가 강조하는 ‘지·산·학(지자체·산업·대학)’의 모델인 셈이다. 취재 때 소피 로프리슈 알자스주청 부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이전엔 ‘국가는 교육, 지방정부는 경제와 산업’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러나 최근엔 대학을 지원하면 연구활동이 활성화되고 업계에 훌륭한 인력을 공급할 수 있어 지역산업 활성화로 연결된다는 인식으로 바뀌었다. 따라서 지자체가 대학 지원 강화에 나선다.” 지자체가 주체가 돼 대학과 지역의 경쟁력을 견인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든 것이다.

이처럼 다른 나라는 수십 년 전부터 지역 및 지역대학 경쟁력을 강화하고자 지자체가 주도하는 ‘교육분권’을 실행했지만, 취재 당시도 그렇고 지금도 한국은 중앙정부 그늘에 있다. 그나마 초중고를 관할하는 초중등 교육은 교육감을 시민이 투표로 선출하는 등 ‘교육자치’를 시도하지만, 대학을 담당하는 고등교육은 부동의 교육부 권한이다.

국가와 지자체의 지역대학 지원 책무를 명시한 ‘지방대학 및 지역균형인재 육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지 9년이 지났어도 대학 육성에 여전히 지자체의 역할은 미미하다는 평가다. 기본적으로 중앙정부가 돈을 틀어쥐어 지자체 재정자립도가 낮고, 중앙정부가 주도적으로 설계·실행한 뒤 지자체는 예산 매칭 정도로만 참여하는 구조 탓이 크다. 그 결과 지방과 지역대학의 붕괴 위기는 가속화한다.

지역교육 소멸 위기에 대응, 윤석열 정부는 교육분권을 천명했다. 시범 기간을 거쳐 2025년부터는 교육부가 아닌 광역지자체장이 연간 총 2조 원 규모의 국고 지원 대학을 선정하는 등 중앙정부가 아닌 지역이 고등교육 지원을 주도한다고 지난 1일 발표했다. 2조 원은 교육부의 대학 지원사업 예산의 50%로, 교육부 권한 절반을 지자체로 이양하겠다는 선언이다. 지·산·학 강화를 통해 글로컬 대학을 키워 ‘지역인재 양성-취업·창업-정주’의 지역발전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목표다. 이러한 큰 방향은 기자가 기획시리즈를 통해 낸 결론과 같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다.

그러나 어느 일이나 그렇듯 철저한 대비만이 효과를 낳는다. 부산시는 변화할 교육정책에 준비가 돼 있나? 윤 정부가 추진하는 지자체 주도의 지역대학 지원 핵심 프로젝트는 올해 5개 지역 내외로 시범 선정할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인데, 이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대학 중심 지자체-대학 협력기반의 ‘지역혁신플랫폼(RIS)’ 사업에서조차 부산은 탈락했다. 2020년부터 추진됐던 이 사업은 국비 지원 규모만 400억 원가량 되는 대형 프로젝트다. 현재 전국 6개 지역플랫폼(광주·전남, 울산·경남, 충북, 대전·세종·충남, 강원, 대구·경북)에 11개 시·도가 이 사업에 참여하지만, 지·산·학을 그렇게 강조하던 부산은 구경만 하며 허송세월했다. 작년 12월 발간된 국회 입법조사처의 ‘지자체 지역대학 지원 현황과 향후 과제’ 보고서를 보면 이 여파 탓인지 부산은 지자체의 지역대학 지원액이 34억 원으로 2021년 기준 하위권을 면치 못했다. 경남(499억 원)이나 울산(150억 원), 대구(153억 원)에도 한참 뒤졌다.

정부의 교육권한 이양 계획이 발표됐을 즈음 만난 부산지역 한 대학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부산시는 지·산·학을 말로만 외쳤지 지역대학 지원 금액은 최하위 수준이다. 지역대학의 운명은 곧 붕괴될 위험이지만 부산시는 대응 비전과 전략, 킬러 콘텐츠가 모두 빈약하다. 자체 재원을 거의 투입하지 않고, 영향력이 미약한 잡다한 사업만 열거하는 부산시의 현재 정책 운영 수준이라면 교육분권이 진행되면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이런 우려가 현실화하지 않으려면 부산시는 교육분권에 대비, 조직을 정비하고 인적 역량을 키우는 일이 시급하다. 중앙정부도 지역대학 지원 예산 및 조직 확보, 권한·사무 분장 등에 관한 구체적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후속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 여기엔 당연하겠지만 여야 협치가 필수다. 정부가 명시한 교육분권 본격화 시점(2025년)까지 2년도 채 남지 않았다. 교육개혁에 속도전이 필요하다.

이선정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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