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살롱] [1384] 상주 우복동(牛腹洞)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컨텐츠학 2023. 2. 13.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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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것도 희다고 하는 풍진세상. 풍진을 뒤집어쓰다 보면 숨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상주 우복동(牛腹洞)이 역대로 그런 취향의 사람들이 그리워하던 곳이었다. 소 배 속 같이 편안한 곳. 밥은 굶지 않고 살 수 있는 곳. 나는 그동안 우복동을 너무 좁은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경북 상주의 향토사학자 김광희(70) 선생의 안내를 받아 상주 일대를 답사하고 나서 깨달은 결론이다.

우복동은 대·중·소 3군데가 있었다. 가장 작은 우복동은 용유동 계곡이다. 여기에는 조선후기 개운조사(開雲祖師.1790~?)가 손가락으로 새겼다고 하는 ‘洞天’ 글씨가 초서체로 바위에 새겨져 있다. 청화산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우복동이 소(小) 우복동이다. 중간짜리 우복동은 화북면 전체에 해당한다. 견훤산성에 올라가서 바라다 보면 중(中) 우복동을 볼 수 있다. 화북면 전체도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서 오지이면서도 안에는 적당한 논밭이 있는 지역이다. 가장 큰 대(大) 우복동은 어디인가? 상주 전체가 하나의 우복동으로 볼 수 있다.

상주는 가로, 세로가 48~49㎞에 달하는 네모진 들판 도시이다. 들판이 넓어서 ‘경상도는 산간지대’라는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 든다. 먹을 것이 풍족하다 보니 사람들의 기질도 느긋하고 악착같은 구석이 별로 없다. 기후적으로도 좋은 점이 있다. 상주의 서북 방향을 천미터급의 속리산이 막아주고 있고 동남쪽은 낙동강이 감아 돈다는 점이다. 속리산 문장대와 천왕봉은 겨울의 살풍(殺風)을 막아주고 태풍 피해를 막아주는 기능을 한다. 자연재해가 적다. 풍수에서 가장 꺼리는 방향이 서북쪽이다. 서북이 약하면 외부 침입자가 재물을 훔쳐간다고 여겼다. 생태학적인 이유는 겨울에 서북쪽에서 불어오는 살풍을 싫어하였기 때문이다.

상주가 지닌 가장 큰 미덕은 포용력이었다. 3당 공존의 도시였다. 상주는 조선시대 야당이었던 남인들의 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집권여당이었던 노론의 서원이 제 모습을 유지하고 서 있었다. 흥암서원(興巖書院)은 노론인 송준길을 모셔 놓은 서원이다. 노론이 영남을 공략하기 위한 교두보 역할의 서원이었다. 그런가 하면 남명학파의 제자가 세운 낙암서원(洛巖書院)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도 특이하다. 남인의 본류를 대표하는 도남서원(道南書院)도 그 터가 훌륭하였다. 맑고 푸른 낙동강이 넘실거리면서 도남서원 앞을 허리띠처럼 돌아서 흘러가고 있었다. 정허루(靜虛樓)에 앉아 이 강물을 바라다 보노라면 어렸을 때 마음이 되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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