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찰풍선’에 미·중관계 다시 격랑…미, 관련 기업 등 제재

미, 알래스카· 캐나다 상공 미확인 비행물체 추가 격추
중, 미 하원의 규탄 결의안 채택에 “정치적 농간” 반발

이른바 ‘정찰풍선’ 사태로 미·중관계가 다시 격랑 속에 빠져들고 있다. 미국은 자국과 캐나다 영공에서 잇따라 확인된 미확인 비행물체를 추가 격추하고 정찰풍선 개발과 관련된 중국 기업과 연구소 6곳을 수출 제재 명단에 올렸다. 중국은 이번 사태가 미국의 정치적 농간이자 과잉 대응이라고 주장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11일(현지시간) 트위터를 통해 “캐나다 영공을 침범한 미확인 물체의 격추를 명령했고,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NORAD)가 이 물체를 격추했다”며 “캐나다와 미 전투기가 미확인 비행물체를 쫓았으며, 미 F-22 전투기가 성공적으로 격추 임무를 완수했다”고 밝혔다.

정체가 확인되지 않은 비행물체는 전날 미국 알래스카 상공에서도 추가 발견됐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DC) 전략소통조정관은 지난 10일 브리핑에서 알래스카주 북동부 해안 상공에서 ‘고고도 물체’가 발견돼 전투기를 출격시켜 격추했다고 밝혔다.

커비 조정관은 격추된 물체가 4만피트(약 12㎞) 상공을 날고 있었으며, 크기는 최근 격추한 중국 정찰풍선보다 작은 소형차 크기라고 설명했다. 두 비행물체의 정체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지난 4일 사우스캐롤라이나 해안 영공에서 중국 정찰풍선이 격추된 뒤 일주일도 안 돼 북미 상공에 잇따라 의심스러운 비행물체가 출현하자 즉각적인 대응에 나선 것이다.

이번 사태는 지난해 미·중 정상회담으로 어렵게 형성된 양국의 관계 개선 움직임에 찬물을 끼얹으며 두 나라 관계를 급속히 냉각시키고 있다.

미 상무부는 지난 10일 중국 인민해방군 정찰풍선과 비행체 개발 등을 이유로 베이징 난장우주기술과 차이나 일렉트로닉스 테크놀로지그룹 등 중국 기업 5곳 및 연구소 1곳을 수출 제재 명단에 추가했다.

또 미국 정부는 중국이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40개국에 고고도 정찰풍선을 보내 정보를 수집해 왔고, 배후에 인민해방군이 있다고 지목하며 주권 침해 행위에 대한 강력한 대응을 천명하는 등 중국을 향한 대대적인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앞서 미국은 자국 상공에서 중국 정찰풍선이 확인된 직후 지난 5~6일로 예정됐던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의 방중 일정도 전격 연기했다.

중국은 미국의 이 같은 움직임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중국 외교부는 지난 9일 미 하원에서 정찰풍선의 미국 영공 침해를 규탄하는 결의안이 채택되자 “완전한 정치적 농간이자 부풀리기”라며 “강력한 불만을 표명하고 결연히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중국 무인 비행선 한 대가 불가항력으로 미국 영공에 잘못 진입한, 예기치 못한 사건에 대해 중국은 이미 여러 차례 상황을 설명하고 입장을 밝혔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정찰풍선 관련 기업과 연구소를 제재한 것에 대해서도 중국 관영매체와 전문가들은 미국이 이번 사건을 침소봉대해 대중 수출 규제의 빌미로 악용하고 있다는 주장을 폈다. 동시에 중국 정부와 관영매체는 미국의 민주주의와 마약 문제 등을 비판하며 연일 반격 여론 조성에 나서고 있다.

정찰풍선 사태는 지난해 8월 낸시 펠로시 당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으로 악화됐던 양국 관계가 두 나라 정상의 첫 대면 회담 이후 다소 개선될 조짐을 보이던 상황에서 다시 양국 관계를 악화시키고 있다.

가오링윈(高凌雲) 중국사회과학원 연구원은 관영 글로벌타임스에 “이번 사건의 확대는 중·미관계를 우려스럽게 만들고 있고, 미국 일부 정치 세력이 정치적 이익을 위해 중·미 간 긴장을 이용하려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며 “양국 사이에는 안정적인 관계를 위해 이견을 관리하고 소통과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 여전히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베이징 | 이종섭 특파원 nomad@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