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스 침공한 선인장
덥고 건조한 땅에서 잘 자라는 식물인 선인장이 유럽 알프스에서 최근 번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백년 전 알프스에 들어온 뒤 잠복해 있다 최근 기후변화로 눈이 녹으면서 서식 영역을 대거 확장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스키장들이 모인 알프스 일대가 선인장에 점령당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사이언스얼럿과 가디언 등 외신은 12일(현지시간) 선인장의 종류 가운데 하나인 ‘프리클리 페어 선인장’이 최근 스위스와 이탈리아 일대의 알프스산맥에서 대거 번식하고 있다고 전했다. 프리클리 페어 선인장은 미국과 멕시코 북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손바닥처럼 얇고 넓은 줄기를 가졌고, 한국에선 부채 선인장으로 부른다.
알프스에 이 선인장이 들어온 건 18세기다. 침습종이기는 하지만 최근까지도 이 지역 식물 생태계에서 선인장은 맥을 못 췄다. 선인장은 영하 15도까지 기온이 내려가도 생명을 이어나갈 수 있지만 눈이 발목을 잡았다. 선인장은 수분에 특히 취약해 연중 대부분 눈이 쌓인 알프스에서는 서식 범위를 확대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최근 상황이 달라졌다. 기후변화로 알프스에서 눈이 빠르게 녹으면서 선인장에게 살 만한 땅이 됐다.
지난달 이탈리아 파도바대 연구진은 국제학술지 ‘네이처 기후변화’에서 지난 20년간 알프스산맥이 눈으로 덮여 있는 평균 날짜가 215일로, 지난 600년간의 평균보다 36일이 적었다고 분석했다. 알프스의 지면이 눈으로 덮인 날짜가 이렇게 적었던 적은 이전에는 없었다. 기후변화 추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선인장의 ‘알프스 침공’은 더욱 속도가 붙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과학계의 예측이다.
더 큰 문제는 선인장이 알프스에 사는 낮은 키의 식물들을 밀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 선인장의 강력한 생명력 때문이다. 스위스 발레주의 도시인 시온에서는 현재 키 작은 식물의 30%를 선인장이 차지하고 있다. 알프스에 인접한 스위스와 이탈리아의 다른 도시에서도 선인장이 다수 발견된다.
선인장은 밟거나 뿌리째 뽑아도 쉽게 죽지 않는다. 이번 연구를 진행한 피터 올리버 바움가트너 전 스위스 로잔대 교수는 가디언을 통해 “선인장의 서식 영역을 제한할 수는 있겠지만, 알프스 생태계에서 완전히 없애는 건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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