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학대로 숨진 아이들 절반, 유치원·학교 안 다녔다

천호성 2023. 2. 12.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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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학대 징후’ 파악 어려운 사각지대 놓여
“가정방문 등 학대 포착 전문인력 늘려야”
학대 피해아동 약 15%는 또 학대 당해
이달 초 부모의 학대로 숨진 초등학생 ㄱ군이 살던 인천시 남동구 한 아파트 현관 앞에 자전거가 놓여 있다. 이승욱 기자 seugwookl@hani.co.kr

최근 인천광역시에서 2살 유아와 11살 초등학생이 공적 보호·관리를 받지 못한 채 부모 학대로 잇따라 숨진 가운데, 아동학대 사망자 절반 가량은 보육·교육기관에 다니지 않아 교사 등 신고의무자가 학대 정황을 파악하기 어려운 사각지대에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주로 가정 안에서 일어나는 학대 징후를 발견하고 피해자 분리 등 필요한 조처를 할 전담 인력을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인다.

12일 보건복지부의 ‘2021년 아동학대 연차보고서’를 보면, 그해 사망아동 가운데 19명(48%)은 유치원·초등학교 등 교육기관에 다니지 않았다.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아동학대를 알거나 의심 사례를 확인한 보육교사와 초·중·고교 교사, 의료인 등은 이를 신고할 의무를 진다. 하지만 아동학대 가해자 대부분을 차지하는 부모(83.7%)가 자녀를 보육·교육·의료기관에 보내지 않으면 신고 의무자의 감시망에 포착되기 어렵다. 2021년 아동학대 신고 중 의무자에 의해 이뤄진 신고 비율은 44.9%로 절반에 못 미쳤다.

지난 7일 인천 남동구에서 친부와 계모가 초등학교 5학년 ㄱ(11)군을 학대해 숨지게 한 사건 역시 교육기관 바깥에서 일어났다. ㄱ군은 지난해 11월24일부터 특별한 사유 없이 학교에 나오지 않는 미인정 결석 상태였다. 학교 쪽은 학업을 중단하려는 학생에게 숙려기간을 주는 제도를 가정에 안내했지만, 부모는 “필리핀 유학을 위해 홈스쿨링 중”이라며 ㄱ군을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교육부의 ‘아동학대 예방 대처 요령 가이드북’을 보면, 학교는 ‘미인정 결석’ 이 발생한 경우 당일부터 다음날(1~2일차) 결석 학생과 보호자에게 연락해 출석을 독려하고, 3~5일차가 되면 교사와 지방자치단체 사회복지전담 직원이 함께 가정을 찾아가 아동이 안전한지 살펴야 한다. 교육부 관계자는 “미인정 결석 학생 가정에 우선 연락해본 뒤 연락이 안되거나 연락 자체를 거부하는 등 아동학대 정황이 의심되면 지자체 직원과 가정방문을 하도록 하고 있다”며 별도의 가정 방문이 이뤄지지 않은 이유를 해명했다. 황옥경 서울신학대 교수(아동보육학)는 “ㄱ군과 같은 장기결석 아동은 학대 신고가 없었더라도 학대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전담인력이 하루 한번씩 안전을 확인하는 등 긴밀한 보호 체계가 작동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2일 인천 미추홀구에서 엄마 ㄴ씨가 두 살배기 아들을 혼자 두고 3일 동안 외출해 숨지게 한 사건도 마찬가지다. ㄴ씨가 아들을 보육시설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기른 데다 지난해 이사를 하며 전입신고를 하지 않아, 관할 지자체는 ㄴ씨 모자가 거주한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가정 방문 등을 통해 아동학대 징후를 미리 식별하고, 가해자에 대한 행정처분이나 피해아동의 분리 보호가 끝난 뒤에도 양육 상태를 점검할 전문인력 확충과 체계 정비가 시급하다고 주문한다. 아동권리보장원 조사에 따르면 2021년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이 1년에 맡는 학대 상담은 평균 76건으로 미국(15건)의 5배가 넘었다. 복지부는 각 지자체에 아동학대 의심사례 50건당 전담공무원 1명을 배치할 것을 권고하지만, 지난해 17개 시·도 가운데 7곳은 전담인력 1인당 업무량이 정부 권고를 초과했다. 황옥경 교수는 “지자체 전담공무원·지역아동센터·드림스타트(취약계층 아동 맞춤형 통합서비스) 등으로 흩어진 아동보호 기능을 한 체계로 통합해 인력을 재배치하고, 지자체별 상황을 평가해 필요한 곳의 인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전문가를 양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아동학대 신고 건수는 2017년 3만4169건, 2018년 3만6417건, 2019년 4만1389건, 2020년 4만2251건, 2021년 5만3932건 등으로 5년 새 57.8% 늘었다. 이 중 조사를 거쳐 아동학대로 판단된 사례는 2017년 2만2367건에서 2021년 3만7605건으로 68.1% 증가했다. 피해 아동 가운데 3만1804건(84.6%)은 ‘원가정보호'(보호체계유지) 조치돼 가정으로 돌아갔다. 주양육자로부터 분리돼 친족, 시설 등에 보호된 사례는 5437건(14.5%)으로 현저히 적었다. 2021년 기준 최근 5년 이내에 아동학대를 당했으나 또다시 학대 피해로 판단된 사례도 5517건(14.7%)이었다. 피해아동 6∼7명 가운데 1명은 지자체나 복지 당국이 학대 사실을 확인하고도, 부모 등에게 재차 학대를 겪은 셈이다.

천호성 기자 rieu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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