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칼럼]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김옥분 대전을지대학교병원 간호사병원 간호사 2023. 2. 12.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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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실 밖으로 가시 돋친 말들이 새어 나온다.

가족들은 이번에도 결정을 내리지 못한 모양이었다.

결국 얼마 못 가 가족과 가까운 친척들이 병실에 찾아와 환자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인생에 있어 모든 선택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부디 그 가족들이 기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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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분 대전을지대학교병원 간호사

"난 도저히 그렇게는 못 하겠어. 뭐라도 해봐야 하는 거 아니야?"

병실 밖으로 가시 돋친 말들이 새어 나온다. 가족들은 이번에도 결정을 내리지 못한 모양이었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사지육신 멀쩡하던 60대 남성 환자에게 내려진 진단명은 말기 암이었다. 의료진이 기대하는 여명은 6개월, 환자는 병원을 떠나 조용히 정리할 시간을 갖고 싶어 했다.

하지만 가족들의 생각이 도무지 하나로 엮이지 않았다. 아내는 '고민해서 내린 결정이니 너희들이 이해해 달라'며 집이 아니라면 호스피스 병동이 있는 병원으로 아빠를 모시자고 자식들을 설득했고, '이렇게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다'며 '지금 할 수 있는 치료가 있다면 무엇이든 시도하겠다'는 자식들의 입장이 팽팽했다.

양쪽의 마음 모두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남편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해주고 싶은 배우자의 의견, 그리고 '자식'이란 사람이 짊어질 무게란 그런 것이었겠지.

결국 부부는 자식들의 손을 들어주기로 한 모양이었다. 환자는 방사선 치료를 시작했고, 모두의 바람대로 첫 번째 치료 결과는 생각보다 좋은 편이었다.

가족들은 한시도 환자를 혼자 두지 않았다. 교대로 병실을 지키며 환자의 손과 발, 그리고 말벗이 돼주었다. 그들은 마치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최선의 힘, 아니 그보다 더한 죽을힘을 다하는 것처럼 보였다.

언젠가 환자의 맏이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필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지금 상황에서 치료 시도하는 거,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인 거 알아요. 그래도 가만히는 못 있겠어요."

이후 적절한 대답을 빠르게 찾아내어 입 밖으로 내뱉었어야 했는데, 그 말을 고르는 일이 머릿속에서 너무도 오래 걸렸다. 고작 "잘 되실 거예요."라는 말로 대화를 끝맺어 버린 뒤였다.

그러게, 정말이지 잘 됐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두 번째 방사선 치료를 받고 난 뒤 환자는 눈에 띄게 악화돼갔다. 결국 얼마 못 가 가족과 가까운 친척들이 병실에 찾아와 환자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밤, 환자는 가족들 곁에서 편안히 눈을 감았다.

환자가 떠난 후에도, 환자와 가족들의 잔상이 필자에게 제법 오래 남았다. 남은 가족들은, 그들의 결정을 후회했을까?

우리는 삶의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선택한 것이 후에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예상하며 신중을 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상했던 것과 같은 결과를 이루지 못했을 땐 선택의 주체였던 자신을 원망하며 후회를 하곤 한다.

하지만 삶의 길에서 만나게 될 모든 선택은 성공 혹은 실패가 아닌, 그저 우리를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 믿는다. 인생에 있어 모든 선택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부디 그 가족들이 기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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