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에너지 전쟁의 손자병법

2023. 2. 12.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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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3년간 혹독한 '에너지 한파'가 찾아온다. 세계적 에너지 공급난이 2025년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난방비 폭탄은 이미 터졌다. 전기 등 공공요금도 더 오를 것이다.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천문학적인 무역적자가 이어지고 있다. 심지어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도 예상되고 있다.

러시아에서 가스를 수입해온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주요국 경제는 큰 충격을 받고 있다. 에너지를 92% 이상 수입하는 한국은 더욱 심각한 국면으로 빠지기 쉽다. 국가 에너지 전략을 명확히 세워야 한다.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정확하고 단순한 원칙은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주요 선진국의 위기 극복 사례를 연구해보자.

첫째, 난방비와 전기요금 인상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기업과 국민, 특히 서민이 견디는 데 한계가 있다. 서민의 삶을 지키면서도 한전과 가스공사, 발전사를 위기로부터 보호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적정한 가격 인상과 함께 정부의 과감한 지원책이 준비돼야 한다. 영국과 일본은 각각 재정 65조원, 110조원을 에너지 기업에 직접 지원했다. 독일과 프랑스 정부는 이에 더해 일부 전력회사의 국유화에 나섰다. 선진국들은 정부 재정을 과감하게 투입하고 있다. 우리가 주의 깊게 볼 대목이다.

둘째, '정의로운 전환'에도 정교함을 더해야 한다. '신재생에너지의 학교'라 불린 독일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47%나 된다. 그런데도 러시아로부터 천연가스 수입이 어려워지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천연가스 확보를 위해 전 세계가 분주하다. 중국은 카타르와 27년치 83조원 규모 빅딜을 체결했다. 독일도 카타르로부터 최소 15년간 매년 200만t을 들여오는 계약을 맺었다. 에너지 전환과 탄소중립을 선도하던 독일이 천연가스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음을 눈여겨봐야 한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도 가스전 개발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 천연가스 공급 부족은 2026년이 돼야 해소될 전망이다. 우리의 천연가스 도입 실태를 집중 점검해보자.

셋째, RE100에 성공해야 미래 산업이 희망이 있다. 글로벌 기업들이 신재생에너지 100%로 만든 제품만 구매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RE100을 하지 않으면 첨단 산업 분야에서 수출이 매우 어려워진다. 삼성전자는 미국, 유럽, 중국에서 RE100을 달성했지만 한국에선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왜 그런가? 기업의 생존을 위해 신재생에너지를 국내 어디에서, 어떻게 생산할 것인가? 정부의 확고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넷째, 당장 반도체에 필요한 전력은 어떻게 만들지 고민해야 한다. 한국 기업들이 반도체에 수백조 원의 투자 계획을 밝히고 있다. SK하이닉스는 2019년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계획을 발표했다. 용인에 시간당 2.83GW 수준의 전력이 들어간다. 앞으로 기업이 차세대 반도체를 생산하려면 훨씬 더 많은 전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어떻게 풀 것인가?

다섯째, 주요국의 SMR(소형모듈원자로) 정책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연구와 실험을 추진해야 한다.

에너지는 경제와 안보가 함께 움직이는 문제다. 세계 질서 변동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돈이 있다고 에너지를 항상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큰 시야에서 담대한 전략을 준비해야 한다. 1945년 2월 2차 세계대전 종전을 앞두고, 루스벨트 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이븐사우드 국왕을 만났다. 30년 후인 1974년 석유 동맹이 시작되면서 '페트로 달러 시대', 미국 패권 시대가 열렸다. 지금 국제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거대한 체스판이 움직이고 있다. 미래를 위해 에너지 문제만큼은 보수와 진보가 지혜를 모아 하나의 길을 가야 한다. 분열된 땅 위에는 집을 지을 수 없다.

[이광재 국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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