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전고투 日 원정' 女 정구 명문 NH농협은행, 마지막 자존심은 지켰다

오키나와=CBS노컷뉴스 임종률 기자 2023. 2. 12.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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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농협은행 이정운(왼쪽)-이민선이 12일 일본 오키나와현 나하시 오노야마 경기장에서 열린 '2023 국제 소프트테니스 챔피언십' 여자 복식 3위 결정전에서 승리를 거둔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오키나와=노컷뉴스


그야말로 악전고투 끝에 거둔 값진 메달이었다. 한국 소프트테니스(정구) 여자 실업 명문 NH농협은행이 낯선 인조 잔디 코트와 강풍, 부상 등 악재를 딛고 마지막 자존심을 지켰다.

NH농협은행 이민선(25)과 이정운(22)은 12일 일본 오키나와현 나하시 오노야마 경기장에서 열린 '2023 국제 소프트테니스 챔피언십' 여자 복식 3위 결정전에서 스즈키 리나-시라사키 히카루(도쿄여자체육대학)를 눌렀다. 게임 스코어 5 대 2 승리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후위인 이민선이 강력한 백핸드 앵글 스트로크와 절묘한 드롭샷으로 경기를 이끌었고, 이정운도 전위에서 상대를 압박하며 흔들었다. 앞서 이민선과 이정운은 4강전에서 고바야시 아미-요시다 레나(도쿄여자체육대학)에 고배를 마셨지만 이번 대회 한국 선수단에 유일한 메달을 안겼다.

당초 이번 대회는 한국 선수들에게 크게 불리했다. 선수들은 오는 9월 항저우아시안게임에 맞춰 하드 코트에서 훈련해왔지만 이번 대회는 인조 잔디 코트에서 진행됐다. 공의 반발력이나 궤적, 스피드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에 적응하기가 무척 어려웠다. 거센 오키나와의 바닷바람도 변수였다.

때문에 한국 남자 실업팀은 대회 출전을 포기했다. 오는 26일부터 열리는 국가대표 선발전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대전대 선수들이 대신 기회를 얻었다. NH농협은행은 주최 측의 간곡한 요청에 출전을 약속했던 터라 신의를 지키기 위해 출전했다. NH농협은행 유영동 감독은 "코트 적응 문제가 있지만 국대 선발전을 앞두고 실전을 치르면 장단점을 파악할 수 있어 좋은 모의고사가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런데 악재가 발생했다. 팀 에이스이자 국가대표 주축으로 활약해온 문혜경(26)이 10일 여자 단식 8강전 도중 부상을 당한 것. 오전에 내린 비로 아직 코트의 모래가 완전히 마르지 않은 가운데 달려가면서 스트로크를 하다 왼 발목을 접질렸다.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후송된 문혜경은 천만다행으로 인대 파열 등 큰 부상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NH농협은행 문혜경이 10일 일본 오키나와에서 열린 '2023 국제 소프트테니스 챔피언십' 여자 단식 8강전 도중 왼 발목 부상으로 들것에 실려 병원으로 후송되고 있다. 오키나와=노컷뉴스


다만 에이스가 빠지면서 입상을 기대하기가 쉽지 않았다. 문혜경은 임진아(21)와 함께 복식에도 나설 예정이었지만 부상으로 모두 기권해야 했다. 강력한 우승 후보가 빠진 가운데 문혜경의 부상으로 4강에 오른 나미오카 나나미(일본체육대학)가 단식 정상에 올랐다.

하지만 이민선과 이정운이 한국 여자 소프트테니스의 자존심을 세웠다. 만약 3위 결정전에서 졌다면 한국 선수단은 빈손으로 귀국해야 할 판이었다. 이번 대회는 국제소프트테니스연맹이 처음으로 테니스처럼 랭킹 포인트를 부여해 일본, 대만 등 전현 국가대표 출신들이 대거 출전하는 등 9개 국가에서 250여 명 선수들이 나섰다. 우승자는 내년 경기도 안성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 출전권도 받는 중요한 대회에서 노 메달은 종목 세계 최강을 다투는 한국의 자존심에 상처를 줄 수 있었다.

경기 후 이민선은 "그동안 코로나19로 일본 대회에 출전하지 못해 인조 잔디 코트에서 경기하는 게 정말 몇 년 만이었다"면서 "빨리 적응했어야 했는데 쉽지 않았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이어 "그래도 마지막에 승리해 자존심은 지켜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다행"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정운도 "전위에서 내가 잘 했어야 했는데 언니가 잘 이끌어줘서 이길 수 있었다"고 미소를 지었다.

악전고투였지만 성과가 없진 않았다. 이민선은 "대회를 치르면서 승부처에서 너무 서두르더라"면서 "잔 실수도 많았는데 이런 점들을 보완해서 국대 선발전에 나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정운도 "상대를 흔들어야 하는 전위의 역할이 정말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고, 선발전을 잘 준비하겠다"고 거들었다.

유영동 감독(오른쪽), 한재원 코치(왼쪽)를 비롯한 NH농협은행 선수단이 12일 12일 일본 오키나와현 나하시 오노야마 경기장에서 열린 '2023 국제 소프트테니스 챔피언십'을 마무리한 뒤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오키나와=노컷뉴스


유 감독은 "사실 국대 선발전이라는 중요한 일정을 앞두고 대회에 출전한다는 게 큰 부담이었다"면서 "더군다나 에이스 문혜경이 부상까지 입은 게 내 책임인 것 같아 괴로웠다"고 마음고생을 토로했다. 이어 "그러나 다행히 문혜경의 부상이 심하지 않아 선발전은 치를 가능성이 높아졌다"면서 "또 다른 선수들이 실전을 통해 무엇을 깨닫고 보완해야 할지 알게 됐다는 점은 수확"이라고 총평했다.

이번 대회는 아무래도 인조 잔디 코트에 익숙한 일본 선수들이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남녀 단식과 복식은 모두 일본 선수들이 우승을 차지했다. 세계 최강으로 평가를 받는 대만 남자 복식도 준우승에 머물렀다. 이민선-이정운을 꺾고 여자 복식 정상에 오른 일본 조는 지난해 '2022 NH농협은행 인천코리아컵 국제소프트테니스대회'에서는 부진했지만 홈 코트의 이점을 톡톡히 얻었다.

종목 종주국 일본에서 한국의 자존심을 지킨 NH농협은행 선수들. 가장 큰 대회인 아시안게임을 위한 첫 관문인 국대 선발전을 앞두고 액땜을 제대로 치렀고, 값진 교훈을 얻었다. 한국 선수단은 13일 귀국한다.

오키나와=CBS노컷뉴스 임종률 기자 airjr@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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