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의 숲'에서 만난 가장 겨울다운 겨울
시리도록 하얀 설경이 비행기 창밖으로 모습을 비춘다. 눈과 사과의 고장, 그리고 '인간실격'의 저자 다자이 오사무가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낸 아오모리현. 일본 도호쿠(동북) 지역 최북단에 위치한 이곳이 어디인지 아는 한국인은 많지 않다. 바로 위 홋카이도가 겨울 관광지로 먼저 명성을 떨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겨울의 맛은 모름지기 고요한 정취(靜趣)에서 오는 법. 해외 단체 관광객을 피할 수 있다는 점, 홋카이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싼 물가 등이 최근 부각되며 국내에서도 인기 관광지로 급부상 중이다. 늦겨울의 자취가 남아 있는 지금, 서둘러 아오모리현의 겨울을 즐기러 떠나보자.
국내에서 아오모리현을 방문할 때 가장 큰 장벽은 교통편이었다. 특히 지난 수년간 코로나19 확산으로 상당수 항공 노선이 사라지며 첫날 이동 계획이 꼬이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지난해 10월 외국인 관광객 무비자 입국을 허용한 데 힘입어 일본항공(JAL)이 오전 8시 15분에 출발하는 김포공항→도쿄 하네다공항 노선을 최근 부활시켰다. 오전 10시 15분 하네다공항에 내려 다시 일본 국내선을 이용하는 방식으로 오후 2시 35분이면 아오모리공항에 도착할 수 있다.
또 롯데관광(3월 5회)과 하나투어(2월 1회)는 단독으로 인천국제공항과 아오모리공항을 왕복하는 대한항공 직항 전세기를 띄울 예정이다. 이미 예약률이 95% 안팎에 이를 정도로 인기가 높다.
겨울 아오모리 여행의 백미는 설국(雪國)의 풍경을 만끽하는 '료캉스(료칸+호캉스)'다. 아오모리현은 북극의 찬 공기와 상대적으로 따뜻한 동해가 만나 생기는 해기차로 전 세계에서 눈이 가장 많이 내리는 지역이다. 내륙의 스카유 온천 지역은 연 강설량이 무려 17.64m에 달할 정도다. 일본에서도 고급 호텔로 손꼽히는 '호시노 리조트 오이라세 계류 호텔'은 2019년 국내 한 공중파 예능에서 방문했을 정도로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끼고 있다. 일본 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청정 원시림 속을 흐르는 오이라세 계류(溪流)가 손에 잡힐 듯한 위치에 자리 잡았다.
20여 명은 너끈히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의 노천탕 안에서 눈 덮인 계류의 변화무쌍한 움직임을 감상하고 있노라면 그간 쌓였던 피로가 단번에 씻겨 내려가는 느낌이 든다. 밤에는 리조트에서 제공한 차를 타고 오이라세 계류의 얼어붙은 폭포들을 돌아보는 '빙폭(氷瀑) 라이트업 투어'가 인기니 놓치지 말자. 서부 쓰가루 지역에 위치한 '그란멜 산카이소' 호텔에서는 동해에 비치는 석양 속에서 즐기는 화석 온천욕이 손꼽힌다. 식물성 화석을 머금은 거뭇한 용출수가 피부를 매끈하게 가꿔준다.
온천에서 첫날의 여독을 풀었다면 다음 날엔 일본 100대 명산으로 꼽힌 핫코다산을 방문해보는 건 어떨까. 산 아래에서 표고 1324m 지점까지 올라가는 길이 2.4㎞의 '핫코다 로프웨이'에 몸을 실으면 이윽고 눈꽃 가득 핀 대자연의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정상 지점에 올라오면 1585m 높이의 오오다케봉을 주봉으로 총 16개 산봉우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또 짙은 안개와 눈이 수목에 들러붙은 채로 동결해 만들어진 4~5m 높이의 거대한 눈사람 '스노 몬스터'들이 방문객들을 압도하는 형세로 서 있는데 이 역시 볼거리다.
핫코다산은 천혜의 자연조건 덕분에 겨울이면 일본 유일의 산악 스키장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로프웨이 도착 지점은 눈 덮인 수목을 감상하며 내리막을 주파하는 재미를 만끽하려는 스키 마니아들로 겨우내 붐빈다. 아오모리 지역은 원체 눈이 많이 내리는 데다 습기를 덜 머금어 스키에 적합한 '파우더 스노' 형태를 띠기에 "한국 스키장보다 설질이 뛰어나다", "카펫 위에서 스키를 타는 듯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핫코다산의 풍경을 감상하고 내려왔다면 아오모리현 서부 쓰가루 반도를 종단하는 '스토브 열차'에서 몸을 녹여보자. 쓰가루고쇼가와라역에서 쓰가루나가사토역까지 20.7㎞의 구간을 달리는 이 열차엔 객실 내 석탄난로(스토브)가 설치돼 있어 레트로 감성을 한껏 끌어올린다. 이 난로에 직화한 오징어구이를 사케(일본식 청주)에 곁들이며 창밖 설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야말로 '설국열차'에 몸을 실은 기분이 든다. 스토브 열차가 통과하는 고쇼가와라시는 일본을 대표하는 소설가 다자이 오사무의 생가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아시노공원역 등 정차역 곳곳엔 다자이 오사무의 사진이나 친필 메모 등이 걸려 있다. 문학에 관심이 있다면 그의 작품 '쓰가루'나 '인간실격' 등을 손에 들고 거리를 거닐어보는 것도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엔저 시대에 손에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은 것도 헛헛하다. 일본 전국 사과 생산율 부동의 1위인 아오모리현인 만큼 사과로 만든 스파클링와인 '시드르(CIDRE)'가 이 지역 특산물로 꼽힌다. 시드르는 프랑스어로 '능금주'란 뜻인데, 달콤하면서도 톡 쏘는 맛이 일품이다. 사과파이도 유명하니 잊지 말고 한 박스씩 챙겨가도록 하자.
※ 취재협조=아오모리현 서울사무소
[안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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