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풍에 창문이?!”…파티션이자 대형캔버스인 '병풍'

2023. 2. 12.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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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레퍼시픽미술관 '조선, 병풍의 나라2'전 출품작. 십장생도 사이 창이 달렸다. 궁중에서 방 안에 설치해 새로운 공간을 만들때 사용했다. [헤럴드DB]

[헤럴드경제=이한빛 기자] 약 10미터에 달하는 십장생도다. 기암괴석 사이로 물이 흐르고, 영지버섯이 피어난다. 거북, 학, 천도복숭아, 해와 달, 소나무 등 장생을 상징하는 소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그러나 총 16짝에 달하는 대폭의 회화 중간 중간 창이 달렸다. 창호지를 발라 완성한 창이다. 어떤 창에는 가죽고리로 제작한 손잡이까지 있다.

“총 4짝식 4조다. 4개 면을 세우면 방안에 또 새로운 공간을 만들 수 있다. 손잡이가 달린 곳으로 문을 열고 닫으며, 동서남북을 면해 설치할 수 있도록 뒷면에 숫자가 있다. 왕실에서 공간을 구획할 때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편지혜 큐레이터의 설명이다.

바람을 막는 이동식 가구이자 공간을 가리거나 나누는 파티션, 또 실내를 꾸며주는 역할을 했던 병풍. 우리 선조들의 생활 속에 늘 함께 있었던 병풍을 만나는 전시가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열린다. 지난 2018년 ‘조선, 병풍의 나라’에 이은 두 번째 전시다.

당시 병풍의 형식에 집중해 다양한 병풍을 소개했다면 이번엔 병풍 안에 담긴 내용을 중심으로 전시를 펼쳐나간다. 민간 병풍, 왕실 병풍에 이어 근대에 이르기까지 용처와 시기 별로 나뉜 병풍에서 제각기 다른 미감이 엿보인다. 더불어 사회 변화를 짐작해 볼 수 있는 것은 또 다른 재미다.

백수도10폭병풍, 19세기, 종이에 채색, 가나문화재단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제공]
표범 가죽 장막 사이로 사대부의 방이 엿보인다. 호피장막도8폭병풍 일부.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조선, 병풍의 나라 2' 전시전경 [헤럴드DB]
한옥에 꼭 맞춤…해방후 최고 혼수품 ‘병풍계’ 유행

조상들이 거주하던 온돌방은, 바닥은 따뜻하지만 웃풍이 든다. 병풍은 찬 바람을 막아주는 최고의 가구였다. 펼치면 커지지만 접으면 총 두께가 15cm 정도로 부피가 줄어든다. 보관마저 용이한 병풍은 조선시대 민간, 특히 사대부가(家)에서 관혼상제에 빠지지 않는 아이템이었다. 길상의 뜻이 담긴 병풍이 민간에서 많이 쓰이긴 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일상 속에서 늘 가까이 펼쳐 놓고 볼 수 있었기 때문에 교육용으로, 장식용으로 사용되는 등 다목적이었다.

조금 더 멋을 부린 병풍도 있다. ‘호피장막도8폭병풍’(19세기)은 이름은 호피(虎皮)이나 실제 문양은 표범 가죽(豹皮)이다. 왕실에서 신하에게 하사하는 호피와 표피는 귀하디 귀한 물건이었다. 섬세하게 묘사한 가죽장막 중 일부가 살짝 들려있다. 들린 틈 사이로 장막 뒤에 숨겨진 사대부의 방이 보인다. 중국의 자기와 각종 문방구류, 안경, 책 등이 빼곡히 배치됐다. 실제로 이같은 물건을 사용했는지 알 수는 없으나, 당시 사대부들이 선망하던 것이었음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조선 시대를 지나 근대에 들어서도 병풍은 인기 아이템이었다. 해방 후에는 혼수품으로 자수 병풍이 유행하기도 했다. 혼기가 찬 자녀를 둔 어머니들 사이에서 ‘병풍계’가 유행할 정도였다.

일월반도도12폭병풍, 19세기, 비단에 채색, 개인소장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제공]
채용신, 〈장생도10폭병풍〉, 1921년, 비단에 채색, 아모레퍼시픽미술관소장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제공]
최고 퀄리티는 역시 왕실 병풍

왕실 병풍과 민간 병풍의 가장 큰 차이는 그 퀄리티다. 왕실 병풍은 안료를 두텁게 사용하고 묘사도 훨씬 세밀하다. 값비싼 푸른 안료가 많이 쓰이고, 금칠도 종종 등장한다. 주제에 있어서도 왕실의 권위와 태평성대 기원, 궁중행사를 기록용 등으로 민간과는 차이를 보인다.

해와 달이 함께 떠 있는 ‘일월오봉도8폭병풍’은 왕의 권위와 위엄을 상징한다. 일월오봉도는 왕의 뒤에만 놓일 수 있었기에, 병풍 만으로도 왕의 존재를 대신할 정도였다.

물론 왕실에서도 길상과 평안과 안녕을 기원했다. ‘요지연도8폭병풍’엔 건강과 장수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요지연도는 신선들의 어머니인 서왕모가 자신의 궁전 안의 연못인 요지에 천도복숭아가 열리는 것을 기념해 잔치 여는 것을 그린 그림이다. 천도복숭아는 3000년 만에 열리지만, 그 한 알이면 수명이 3000년 늘어난다고 한다. 소식을 듣고 부처와 사천왕, 수노인, 문수보살, 이태백을 비롯해 모든 신선들이 모여드는 가운데 복숭아를 훔쳐가는 원숭이 손오공까지, 생동감 넘치는 묘사가 압권이다.

장승업, 홍백매도10폭병풍, 19세기 후반, 종이에 수묵채색, 개인소장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제공]
이상범, 귀로10폭병풍, 1937년, 종이에 수묵,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제공]
대형 캔버스처럼 변한 ‘근대 병풍’

오원 장승업의 ‘홍백매도10폭병풍’ 앞에 서면 이것이 병풍이라는 인식이 잠시 사라진다. 늙은 매화나무 두 그루가 얽혀 꽃을 피워내는데, 가지의 역동성과 구도가 관객을 압도한다. 장승업 특유의 호쾌한 붓 놀림도 눈길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세로로 긴 화면에서 매화의 전반적인 모습을 묘사하는 기존 사대부의 방식과 달리 가운데 부분만을 묘사했다. 병풍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캔버스처럼 사용해, 전체를 펼쳐야 작품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근대 전환기 달라진 미감이다.

이상범의 ‘귀로10폭병풍’, 변관식의 ‘수촌6폭병풍’은 당시의 풍경을 실경으로 그린 작품들이다. 관념과 상상의 풍경에서 벗어나 현실의 산야를 담아냈다. 이외에도 자수로 유명했던 평안남도 안주의 안주수(安州繡) 병풍, 세계 지도를 병풍으로 제작한 ‘곤여전도8폭병풍’도 독특하다. 전시에 나온 병풍은 총 50여 점이다. 전시 폐기물이 나오는 것을 최소화 하기 위해 가벽을 없애고, 철제 유리케이스 안에 병풍을 전시한다. 케이스의 두께가 10cm 미만이라, 코앞에서 세밀한 필치까지 관찰 할 수 있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다. 4월 30일까지.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조선, 병풍의 나라 2' 전시전경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제공]

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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