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합병’ SM 품은 하이브, ‘K팝 상징’ 되나…승기는 어디로?
이수만, 카카오 신주 발행 금지 가처분 신청
기각되도 SM 지분 추가 확보 난관 예상
하이브 승자되도 공정위는 또 다른 변수
대중음악계는 시너지 기대와 빈부격차 우려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이른바 ‘세기의 합병’이다. 한국 대중음악 사상 전무후무한 두 거대 공룡이 손을 잡았다. ‘K팝 창시자’인 SM엔터테인먼트의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와 세계 무대에서 ‘K팝 최전성기’를 이끌고 있는 하이브 방시혁의 만남이다.
업계는 전례 없는 격랑에 휩싸였다. 방탄소년단(BTS) 소속사 하이브가 SM엔터테인먼트의 대주주인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 지분 18.46% 중 14.8%를 4228억원에 인수한다고 지난 10일 밝혔다. 취득 예정일은 3월 6일이다. 여기에 더해 하이브는 주당 12만원에 SM 소액 주주가 보유한 지분을 확보하기 위한 공개매수에도 나선다. 다음달 1일까지 진행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하이브는 총 40%의 SM 지분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이다. 모든 거래가 성사되면, 하이브가 곧 ‘K팝의 상징’이 된다.
하이브가 SM의 최대 주주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꽤나 시끄러웠다.
시간은 지난 3일로 되돌아간다. SM엔터테인먼트의 현 경영진인 이성수 탁영준 공동 대표가 이수만의 퇴진과 배제를 골자로 한 체제 개편안인 ‘SM 3.0’을 발표하면서다. 이후 지난 7일 카카오가 SM 지분의 9.05%를 유상증자 등의 형식으로 확보, 2대 주주로 떠오르면서 ‘경영권 분쟁’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경영권 분쟁의 이면엔 SM의 지배 구조에 문제를 제기하며 불씨를 지핀 ‘행동주의 펀드’ 얼라인파트너스가 자리하고 있다.
얼라인은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가 설립한 개인 회사인 ‘라이크 기획’이 SM으로부터 받아가고 있는 거액의 인세를 꾸준히 문제 삼았다. 라이크기획은 SM 소속 아티스트의 음반과 SM이 제작한 음반의 자문과 프로듀싱 업무를 맡고 있는 하청업체다. 지난해 상반기에만 SM으로부터 114억원을 받아갔다. 이 기간 SM의 영억이익은 386억원. 전체 영업이익의 30%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얼라인은 라이크기획이 엄청난 용역비를 가져가면서도 베일에 싸여 있으니 ‘투명성 문제’로 공세를 벌인 것이다.
SM의 지배구조 개선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성수 탁영준 공동 대표를 비롯해 경영진이 모두 ‘이수만 라인’이었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이 전 총괄의 처조카이고, 탁 대표는 2001년 입사해 20여년간 이수만과 함께 해왔다. 매니저 출신으로 대표 자리에 오른 ‘직장인 신화’의 대명사다. 그러다 지난해 3월 주주총회에서 얼라인이 추천한 감사가 임명되며 미세하게 생긴 균열들이 변화를 만들었다. 결국 작년 10월, 라이크 기획과의 프로듀싱 계약이 조기 종료됐다.
이후 전개된 상황은 ‘점입가경’이었다. SM의 현 경영진이 ‘SM 3.0’ 체제를 발표했고, 곧이어 상황은 긴박하게 돌아갔다. 빅4 가요기획사이자 K팝 1인자인 하이브와 ‘콘텐츠 왕국’을 꿈꾸는 카카오가 등판했다.
‘자기 사람들’이 모두 등을 돌리자 이 전 총괄과 하이브의 의미심장한 동거가 시작됐다. 업계는 물론 온라인 상에서 SM일지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견훤이 왕건한테 갔다’는 촌평까지 내놓고 있다. 후백제의 견훤은 아들 신검에게 배신당하고, 후삼국 통일을 놓고 싸운 왕건의 고려로 귀순했다. 이 전 총괄은 견훤, 왕건은 하이브의 방시혁 의장이라는 비유다.
거대 기업들의 SM 인수전 등판 이면엔 ‘IP 확보 전쟁’이 자리하고 있다.
먼저 플랫폼 강자 카카오가 SM 인수전에 적극적으로 가세한 것은 글로벌 콘텐츠 산업에서 승기를 잡기 위해서였다. 그 뒤엔 네이버와 CJ ENM이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있다.
네이버는 이미 자사의 팬 커뮤니티 플랫폼 ‘브이라이브 팬십’을 하이브가 운영하는 팬 플랫폼 ‘위버스’와 합치며 거대 동맹을 맺었다. 위버스는 국내 K팝 가수들은 물론 해외 아티스트, 거기에 블랙핑크를 거느린 YG까지 가세한 명실상부 국내 최대, 최고 팬 플랫폼이다. 이를 통해 K팝 IP를 상당 부분 거느린 상황이었다.
카카오는 이른바 ‘네이버-하이브-YG’의 위버스 왕국에서 빠져있는 SM의 인수를 통해 기반이 약했던 K팝 콘텐츠를 강화하고, SM이 가진 아티스트 IP로 영상은 물론 음원 플랫폼 멜론, 스토리(웹툰, 웹소설)를 강화하며 기존 사업을 확장하겠다는 꿈을 꾸고 있다. 드라마, 예능부터 음악까지 다수의 콘텐츠를 쏟아내고 있으나, 업계 1인자 CJ ENM을 따라잡아야 하는 후발주자 카카오에게 SM IP는 사업 확장을 할 수 있는 ‘꿈의 발판’이었다.
CJ ENM 역시 2021년 이수만 전 총괄이 지분 매각에 나섰을 당시 상당히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며 인수전에 촉각을 세웠다.
드라마와 영화 장르에 비해 K팝 아티스트 IP가 빈약한 CJ ENM엔 보아부터 2~4세대 K팝 그룹들이 쌓아온 원천 IP를 보유한 SM은 매력적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SM C&C, 키이스트까지 산하에 자리하고 있으니, 이들을 활용해 음원, 예능, 드라마, 영화. 공연까지 확장하면 원하는 고지에 먼저 도달할 수 있다.
하지만 CJ ENM은 라이크기획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SM 인수전에서 일찌감치 발을 뺐다. CJ ENM은 그간 자체적으로 국내외 안팎에서 K팝 시장에 하나둘 깃발을 꽂았다. 일본에선 최대 연예기획사인 요시모토흥업과 합작회사인 라포네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해 현지 그룹 JO1과 INI를 데뷔시켰다. 글로벌 기업 HBO, 엔데몰샤인붐독과도 남미 아이돌 발굴 오디션 프로그램을 기획 중이다. 하이브가 1대 주주로 올라선 상황에선 CJ ENM과 이들간의 관계도 미묘해진다. CJ ENM과 하이브는 이미 2018년 합작법인 빌리프랩을 세우고 K팝 사업을 함께 이어가고 있다. 2020년 선보인 보이그룹 오디션 프로그램 ‘아이랜드’가 출발이었다. 이를 통해 엔하이픈이 데뷔했다. 곧 시즌2도 나올 예정이다.
SM 인수전 초반 당시 하이브 역시 늘 거론된 기업이었다. 그러나, 가능성은 낮았다. 이 전 총괄이 경쟁사인 하이브보다는 자신이 구현하고자 하는 IT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카카오 등의 대기업을 원한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현 상황은 그간의 지난한 스토리와는 완전히 달라졌다.
SM의 최대 주주로 올라선 하이브와 SM의 관계는 미묘하다. 경쟁사이기는 하나, 이 전 총괄과 방시혁 하이브 의장은 꾸준히 개인적 친분을 쌓아오기도 했다. 두 사람은 대형 K팝 기획사 모임을 통해 교류해왔다. 게다가 이 전 총괄은 농공학과 71학번, 방 의장은 미학과 91학번 등으로 서울대 동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친분과 프로듀서 출신인 두 사람이 K팝에 대한 미래비전에 대해 공감대를 쌓기에 충분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특히 K팝은 ‘특출난 개인’으로 대표되는 이수만 양현석 박진영 방시혁은 물론 DSP 이호연 등 혁신적인 프로듀서들이 일군 성과이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이수만은 자타공인 ‘K팝의 아버지’로 불리는 선구자같은 인물이다.
방 의장은 실제로 올해 초 이 전 총괄이 선포한 ‘휴머니티와 서스테이너빌리티(Humanity and Sustainability)’ 캠페인에 깊이 공감했고, 이번 ’경영권 분쟁‘을 겪는 이 전 총괄에게 지속가능한 K팝의 영향력 활용을 함께 하고 싶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분명한 것은 하이브는 이 전 총괄의 ’백기사‘는 아니라는 점이다. 하이브의 SM 인수 발표 이후 이 전 총괄의 경영권 회복설, 프로듀싱 복귀설이 나오자 하이브는 단호히 선을 그었다.
하이브는 “이수만이 지속해서 경영권을 행사한다거나 프로듀서로 SM에 복귀한다는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이수만은 향후 3년간 국내를 제외한 해외에서만 프로듀싱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동시에 3년간 SM 임직원을 고용하거나 SM 아티스트와 계약을 체결할 수 없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이수만은 SM의 2023년 정기 주주총회에서 의결권을 하이브에 위임하기로 했다”며 “주주제안을 통해 하이브가 지정한 인사를 이사로 선임하는 데 적극 협력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하이브는 이미 “이 총괄과 SM엔터테인먼트 사이 지배구조의 문제점을 말끔히 해소했다”고 강조한다. 하이브 체제의 SM에서 이수만의 자리는 없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이제 SM ‘경영권 분쟁’은 ‘하이브와 이수만’ 대 ‘카카오와 현 경영진’의 대결 구도로 달라지고 있다.
하이브가 이수만 총괄 프로듀서의 지분을 인수하기 전 SM 지분율은 이수만 18.46%, 국민연금공단 8.96%, KB자산운용 5.12%, 이성수·탁영준 에스엠 공동대표 포함 등기임원 0.66% 등이었다. 현재는 하이브가 14.8%, 국민연금공단 8.96%, KB자산운용 5.12%, 이수만 3.66% 등의 순서다. 기타 소액 주주가 60%에 달한다.
다만 법원의 가처분 신청은 변수다. SM 현 경영진은 카카오를 대상으로 주당 9만1000원에 123만주의 신주를 발행하는 유상증자를 실시했고, 이수만 전 총괄은 법원에 신주 및 전환사채 발행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법원이 이수만이 제기한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면 카카오가 공시대로 SM 지분 9.05%를 확보할 수 있다.
다음 달 6일로 예정된 주주총회 이전 하이브가 공개매수로 40%에 달하는 지분 확보에 성공하면, SM과 하이브는 마침내 ‘공룡 기획사’가 된다. 하이브는 이 전 총괄에게 남은 지분에 대해서도 풋옵션(특정 시기에 미리 정한 가격으로 지분을 팔 권한) 계약을 맺은 만큼 최대 43%까지의 지분을 확보하게 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SM의 현 경영진과 카카오는 더 많은 지분을 확보해야 한다. 업계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는다. 이미 하이브가 12만원으로 공개매수를 선언했기에 비용 부담도 상당하다.
그럴 지라도 하이브가 SM 인수에서 승기를 들어올리기 위해선 공정거래위원회라는 큰 산도 넘어야 한다. 이는 또 다른 변수다.
현행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자산 또는 매출액이 3000억원 이상인 회사가 자산 또는 매출액이 300억원 이상인 상장사 주식을 15% 이상 취득할 경우 공정위에 기업결합을 신고해야 한다. 현재까진 하이브가 체결한 지분이 14.8%로 경쟁 심사 대상에 해당하진 않는다. 하지만 추가로 25%의 지분을 확보한다면, 취득 주식에 대해 기업결합 신고를 해야 한다. 공정위는 이를 통해 시장 경쟁의 제한이나 지배력 남용 우려를 살펴본다. 두 기업의 시장 점유율 역시 검토 대상이 된다.
업계에선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나온다. 양사가 결합하면 K팝 업계는 기존 빅4에서 명실상부 원톱 시대로 들어선다. 하이브와 SM 연합의 절대 강자와 JYP, YG의 2중 체제다. 하이브는 SM을 통해 K팝의 전통과 역사를 흡수하며 세계 시장에서 다양한 시너지를 내리라는 기대가 크다. 일각에선 세계 최대 엔터테인먼트사로 도약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빈부격차는 심해진다. 이미 K팝 업계는 ‘자본의 규모’가 콘텐츠의 양과 질을 결정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가요계 관계자는 “이미 대형기획사 타이틀이 프리미엄이 되는 시대였는데, 하이브와 SM이 결합한 공룡 기획사의 탄생은 기존의 중소기획사와 인디 음악인들을 위축하고 다양성을 해치는 결과가 되리라는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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