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 블러드 어쩌나"…하이브+SM에 엇갈린 투심과 팬심 [연계소문]

[김수영의 연계소문]
연(예)계 소문과 이슈 집중 분석
하이브, 이수만 지분 인수키로…SM 1대 주주 등극
변화 반기는 투자자들 "K팝 공룡 탄생"
팬들은 "'패밀리십' 강조하더니" 실망

방시혁 하이브 의장, 이수만 SM 최대주주 /사진=각 소속사 제공

‘K팝의 본류’ SM엔터테인먼트의 창업자 이수만 전 총괄프로듀서가 방시혁 의장이 이끄는 하이브에게 지분 대부분을 넘기기로 했다. K팝이 세계 무대에서 위세를 떨치고 있는 가운데 대표주자의 전격적인 인수합병(M&A) 소식이 전해지며 업계에선 기대와 우려의 목소리가 동시에 나오고 있다.

방시혁 의장이 이끄는 방탄소년단(BTS) 소속사 하이브는 지난 10일 이수만 전 총괄이 보유한 지분 14.8%를 4228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맺었다고 밝혔다. 이번 거래로 하이브는 SM의 단독 최대주주 지위에 오른다.

BTS를 필두로 세븐틴,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엔하이픈, 르세라핌, 뉴진스 등 인기 아티스트를 보유한 하이브가 보아, 동방신기, 소녀시대, 샤이니, 엑소, 레드벨벳, NCT, 에스파까지 1~4세대 아이돌을 아우른 SM 인수에 성공하면 '대형 K팝 공룡'이 탄생하게 된다. 이에 투심은 즉각 반응했다. 하이브가 SM 지분 인수를 발표한 10일 SM 주가는 전날보다 16.45% 뛴 11만4700원에 장을 마감했다.

하지만 업계 및 팬들 사이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먼저 인수 배경인 SM 내부 경영권 다툼을 지적하고 있다.

이수만 전 총괄은 카카오를 2대 주주(지분 9.05%)로 끌어들인 SM 경영진에 반발, 우호 지분 확보를 위한 신주 발행은 위법이라며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제기한 상태다. 이후 자신의 SM 지분을 하이브에 넘기기로 했다. 그간 업계 후발주자이자 경쟁자로서 지분 매각 대상에서 하이브를 배제해왔던 점을 고려하면 이 같은 결정은 경영권 다툼에 대한 맞불 성격이 강하다.

SM의 내홍은 격화하는 모양새다. 카카오의 손을 잡은 SM 이성수, 탁영준 공동대표를 포함해 센터장 이상 상위직책자 25인은 "모든 적대적 M&A(인수합병)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앞서 두 공동대표는 이수만 독점 프로듀싱 체계에서 벗어나겠다며 'SM 3.0 시대'에 대한 계획을 밝힌 바 있다. 반면 SM에서 17년간 활동한 가수 겸 배우 김민종과 SM 표 음악과 퍼포먼스를 구축한 유영진 대표 프로듀서 등은 반기를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하이브가 안정적으로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하이브가 추가 공개매수로 충분한 지분을 확보하지 못하면 경영권 분쟁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엔터 업계에서 프로듀서의 역할이 중요한 건 자명한 사실이다. 콘셉트가 가미된 음악과 퍼포먼스, 비주얼 디렉팅을 비롯해 칼군무까지 해외 팬들이 장점으로 꼽는 K팝 고유의 장점이 자리 잡기까지 프로듀서의 역할은 절대적이었다. 특히 SM은 K팝 아이돌 1세대를 연 장본인이며, 현재에 이르기까지 창업자 이수만 전 총괄의 공은 막대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K팝의 글로벌 흥행과 맞물려 엔터 산업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만큼 SM에서 총괄 프로듀서의 역할도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미 JYP엔터테인먼트는 아티스트별로 제작 본부를 따로 둬 독립성을 강화하고 있으며, 다수의 소속사를 인수한 하이브도 멀티 레이블 체제를 강조하고 있다. 해외 진출 영역이 확장하고, 아티스트 IP(지식재산권)를 활용한 사업도 다양해지면서 한 사람에게 의존하는 시스템에 한계가 왔다는 지적이 꾸준히 일었다.

결국 이번 사태는 정체성 유지와 다변화의 기로에 놓인 엔터 업계의 고민을 보여준 사례가 됐다. 하이브의 결단으로 SM 내부 조직 변화는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업계에선 독과점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가요계가 오랜 시간 대형기획사 'SM, JYP, YG' 중심 구도를 이어가다 하이브가 가세하며 중소 엔터사들의 진입이 한층 어려워진 상황에서 이번 M&A로 이같은 구도가 공고해질 것이란 관측이다.

한 가요계 관계자는 "하이브와 SM은 개별적으로도 이미 압도적인 우위를 지닌 기업들이다. 아이돌 4세대를 주도하고 있는 팀만 봐도 음반, 음원 모든 측면에서 두 회사의 영향력이 막강하다는 걸 알 수 있다"며 "업계의 진입 장벽이 더 높아져 시장 흐름에 다양성이 부여되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한 팬들은 SM이 지니고 있던 고유성을 잃을까 걱정하고 있다. 실제로 SM은 가요 기획사 중에서 '패밀리십'을 가장 큰 장점으로 지니고 있었다. SM의 음악에 피가 반응한다는 뜻의 '핑크 블러드', 세계관을 펼쳐내는 공간을 칭하는 '광야' 등 단어를 만들어내며 아티스트와 팬 간의 결속력을 다졌다.

한 팬은 "아티스트끼리, 팬들끼리 소통하고 서로 응원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게 쉽지 않은데 SM은 합동 공연 브랜드가 꾸준히 인기 있을 정도다. 이건 팬들의 자부심이기도 했다"면서 "각 소속사가 지닌 색깔을 좋아하는 팬들이 많은데 그 근본이 훼손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팬 역시 "역사가 깊은 K팝 소속사라서 (M&A 소식에) 아쉬운 마음이 더 크다"면서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에는 동의하지만, 고래들의 경영권 싸움에 그간 열과 성을 다해 아티스트를 응원해 온 팬들의 마음만 다치는 기분"이라고 토로했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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