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경영평가 따른 성과급”
성과급 재원 인건비란 주장도
설득력 없는 잘못된 주장일 뿐
자신들 발등 찍는 민영화 주장
한전 적자 요인 스스로 살펴봐야

9946원. 지난해 4월부터 올해 1월까지 4인 가구 기준으로 오른 주택용 전기요금 인상액입니다. 부가세나 누진제까지 적용하면 실제 인상폭은 더 큽니다. 하지만 한국전력공사의 적자는 여전합니다. 전기요금 추가 인상론과 전력도매가격 조정론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한전이 허리띠를 더 졸라매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옵니다. 그런데 이 얘기만 나오면 한전 직원들은 예민한 반응을 보입니다. 왜일까요. 

한전 직원들은 ‘성과급을 양보해야 하지 않느냐’는 주장만 나오면 신경질적으로 반응한다.[사진=연합뉴스]
한전 직원들은 ‘성과급을 양보해야 하지 않느냐’는 주장만 나오면 신경질적으로 반응한다.[사진=연합뉴스]

“불가피하게 전기요금을 올리더라도 이해할 만한 (한국전력공사의) 자구책이 필요하다.” 전기요금 인상론이 불거진 지난해 6월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했던 얘기입니다. 그러자 한전 임직원의 성과급이 도마에 올랐고, 한전 경영진은 성과급 전액 혹은 일부를 반납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한전의 재무상황은 더욱 나빠졌습니다. 전기요금은 지난해 10월과 올해 1월 추가로 더 올랐습니다. 지난해 4월부터 올해 1월까지 주택용 전기요금은 4인 가구 기준(월평균 307㎾h 사용량 기준)으로 평균 전기요금은 5만원을 넘길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해 3월에 4인 가구의 가구당 전기요금이 4만원 수준이었음을 감안하면 25%나 오른 셈입니다.

그런 분위기에서 “한전 직원들도 허리띠 졸라매기에 동참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건 당연합니다. 그게 추 부총리가 언급한 ‘이해할 만한 한전의 자구책’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런 얘기가 나올 때마다 한전 직원들은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입니다. 물론 자신들의 이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만큼 반발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반발의 논리가 명확하지도, 일관적이지도 않다는 겁니다. 

더스쿠프가 지난해 12월 ‘적자에도 지급된 한전 직원들의 성과급’을 문제 삼자, 한전 측은 “민간기업처럼 실적에 따라 성과급을 더 받고 덜 받는 게 아니라 정부 경영평가에 따라 지급하는 것”이라면서 “공기업이 임의로 결정하는 게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정부가 주는 대로 받는 건데 무엇이 문제냐’는 게 그들의 핵심 논리였죠. 

하지만 이 주장엔 오류가 있습니다. 기본급의 최대 500%까지 지급할 수 있는 한전의 성과급은 내부평가를 통해 지급하는 자체성과급(200%)과 정부 경영평가에 따라 지급하는 경영평가성과급(300%)으로 나뉘는데, 한전은 경영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을 때도 자체성과급을 꽉꽉 채워 나눠 줬기 때문입니다. 

이런 반론이 나오자 한전에선 또 다른 주장이 튀어 나왔습니다. “공기업 성과급의 재원은 직원들이 당연히 받아야 할 인건비(상여금)에서 나온 것”이라는 의견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오류입니다.

상여금이 성과급의 일부 재원이었던 건 사실이지만, 기본급의 200%였던 상여금을 1985년에 500%로 끌어올려 재원을 만들었습니다. 정부가 무작정 상여금을 떼어내 직원들의 임금을 깎는 방식으로 성과급 재원을 만든 게 아니라, 전체 성과급을 인상해주고 그 안에서 일부 차등이 생기는 경영평가성과급 재원을 마련했다는 겁니다.  한전 직원을 포함한 공기업 직원들을 위해 기존에 받던 상여금은 그대로 받으면서 ‘성과급을 더 받을 수 있는 근간’을 만들어준 셈입니다.

더스쿠프의 취재에 응대하는 과정에서 한전 측도 “경영평가성과급 재원이 모두 인건비에서 나왔다는 건 한전의 공식 입장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한전 일부 직원들의 ‘성과급 재원은 우리가 당연히 받아야 할 인건비’라는 주장에 설득력이 없다는 겁니다. 

과연 한전의 적자 원인이 ‘낮은 전기요금’에만 있는지 의문이다.[사진=뉴시스]
과연 한전의 적자 원인이 ‘낮은 전기요금’에만 있는지 의문이다.[사진=뉴시스]

그러자 한전 직원들은 이번엔 이런 논리를 내놨습니다. “불합리한 전기요금 구조는 제쳐두고 적자니까 성과급을 받지 말라는 건가. 그럼 전기요금을 정상적으로 올려서 이익을 낼 수 있도록 민영화를 하자.”

이리저리 반론을 펼치다가 끝내 ‘민영화를 하자’는 주장까지 내놓은 셈인데, 이건 타당할까요. 사실 ‘한전의 민영화’라는 건 전력시장을 개방하자는 논리와 같습니다. 한전이 전력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선 불가능한 주장입니다.

더구나 한전이 경쟁력을 갖추려면 구조조정이 필요할 텐데 그 과정에서 정리해고가 진행될 수 있고, 윤석열 정부가 강조한 ‘주69시간 근무’가 일상화할지도 모릅니다. 

결국 한전이 들고 있는 ‘기득권’을 내려놔야 한다는 건데, 이게 과연 직원들이 원하는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지난해 5월 ‘한전 민영화’ 논란이 불거졌을 때 한전 노조위원장 출신인 김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한전의 독점구조가 깨진다면 수익이 나는 지역은 민간이, 사회적 약자나 벽ㆍ오지는 한전이 맡을 수 있다. 그러면 한전 적자는 더 커지고, 파산에 이를 수도 있다.” 한전의 민영화는 한전 직원들에게 더 나쁘게 작용할 거라는 얘기입니다. 

그렇다면 한전 직원들은 왜 민영화까지 거론한 걸까요. 그건 바로 한전의 적자가 오로지 ‘낮은 전기요금’에만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실상은 그렇지 않은데도 말이죠. 사실 한전의 돈은 곳곳에서 줄줄 새고 있습니다. 

일례로 2017~2021년 5년간 내부 감사와 감사원ㆍ산업통상자원부 등 외부 감사를 통해 드러난 한전의 ‘재정상 조치’ 금액은 2조5263억원(연평균 5052억원)이었습니다. ‘재정상 조치’란 감사 후에 드러난 문제를 ‘추징ㆍ회수, 변상, 감액, 예산절감, 환불’ 등을 통해 해결하면 나타날 경제적 효과를 뜻합니다. 쉽게 말해 한전에서 그만큼의 돈낭비가 이뤄지고 있었고, 그게 감사를 통해 적발됐다는 의미입니다.

더구나 재정상 조치 금액이 줄어든 것도 아닙니다. 2021년에만 6996억원의 재정상 조치가 있었습니다. 20 17년(4632억원)보다는 51.0%, 2020년(3028억원)보다는 131.0% 증가한 액수입니다. 20 17~2020년 평균 재정상 조치 금액(4567억원)보다도 53.2% 더 많습니다.  

그렇다고 경영관리 시스템이 공정한 것도 아닙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최근 드러난 일만 볼까요. 지난해 6월 감사원 감사를 통해 한전은 하도급업체로부터 뇌물을 받은 한전 직원이 형사처분을 받았는데도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해당 하도급업체의 입찰을 제한하지 않아 문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덕분에 누군가는 한전의 예산으로 배를 불렸을 겁니다.

10월에는 국정감사 과정에서 한전이 한전 퇴직자 단체인 ‘한전전우회’의 자회사(JBC)에 1996년부터 2022년(2021년에 2년 연장)까지 27년간 도서지역의 전력공급사업을 수의계약으로 몰아줬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이외에도 기간을 넓히면 감사원으로부터 지적받은 한전의 부실은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이런 논란을 두고 한전 관계자는 “한전은 회사의 예방적 감사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퇴직자 일감 몰아주기 논란은 계약방식 변경을 위한 법률적 검토를 하고 있다” 등 지극히 원론적인 답변만을 내놨습니다. 이미 관련 대책을 내놓고, 현실에서 시스템이 잘 굴러가는지 점검을 해도 모자랄 판에 원론적인 답변을 내놓고 있다는 건 대안이 없다는 방증이 아닐까요.

자, 이쯤에서 정리해 보겠습니다. 적자에도 지급되는 한전 성과급이 논란을 불러일으키자 한전 직원들은 “정부의 경영평가에 따라 받는 것이니 문제될 게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경영평가가 낮을 때도 자체성과급을 받았다는 반론을 제시했을 땐 “성과급 재원은 당연히 받아야 할 인건비”라고 해명했습니다.

그 인건비 재원이라는 게 결국 상여금의 대폭 인상으로 마련된 것 아니냐는 반론이 나오자 “한전을 민영화하자”는 주장을 내놨습니다. 한전 노조위원장 출신 국회의원이 “한전의 민영화로 한전이 파산할 수도 있다”고 했는데 말이죠. 성과급 방어를 위한 논리 만들기에만 급급하다 보니 제 발등까지 찍은 셈입니다. 

과연 이번에는 또 어떤 반론을 내세울까요. 어떤 반론이 됐든 한전 직원들의 주장이 합리적인지는 따져봐야 할 듯합니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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