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 감독 차기작 낙점된 ‘이 소설’…작가가 밝히는 집필 배경은

최훈진 기자 2023. 2. 12.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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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경 작가는 2018년 미국에서 출간한 데뷔작 ‘인센디어리스’로 전미도서비평가협회 존 레너드 상 등 권위 있는 상의 최종 후보에 오르며 주목을 받았다. 그는 “눈 밑에 짙게 바르는 아이섀도는 ‘약하고 순종적’이라는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편견에 저항하기 위해 저만의 방식을 찾은 것”이라고 했다. 문학과지성사·사진작가 스미타 마한티 제공
“‘서로 사랑한 두 사람이 종교적인 이유로 세계관이 너무나도 다르다면 어떨까’란 질문에서 출발한 소설입니다.”

2018년 컬트 종교와 테러를 다룬 첫 장편 ‘인센디어리스’(The incendiaries·문학과지성사·사진)로 미국 문단의 주목을 받은 한국계 미국인 권오경 작가는 11일 줌(화상회의)으로 진행된 온라인 기자 간담회에서 종교를 소재로 소설을 구상하게 된 배경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최근 한국어로도 번역 출간된 이 소설은 광신적 사이비 종교 ‘제자’(弟子)의 교주 ‘존 릴’, 어머니의 죽음 후 자책하며 방황하다 이 종교에 빠지는 ‘피비’, 신학대를 관둔 뒤 우연히 사랑하게 된 피비가 사이비 종교에 빠지는 걸 막으려는 ‘윌’ 등 세 인물의 관점에서 쓴 이야기가 교차하며 전개된다.

권 작가는 이를 통해 ‘영원한 삶’을 믿는 신앙인과 비신앙인이 지닌 세계관의 간극을 보여주고자 했다. “한때 저는 목사를 꿈꿨지만 17살 때쯤 책을 읽으며 내가 가진 관점만이 유일한 진리라는 신념을 유지하는 게 불가능해졌습니다. ‘우리 영원히 살 것’이라는 믿음에서 ‘우린 결국 흙, 먼지 알갱이, 우주가 될 것’이라는 새로운 세계관으로 넘어간 게 제게는 충격이자, 크나큰 슬픔이었습니다.”

신앙을 잃어 본 그의 경험은 주인공들의 심리적 묘사에 반영됐다. 윌이 “내가 그리스도에게 신물이 났던 까닭은 오히려 그분을 사랑하기를 멈출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고백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소설 속에서 권 작가과 같은 경험을 갖고 있는 ‘윌’은 극단주의 종교의 본질엔 안락과 구원을 찾아헤매는 인간의 결핍과 외로움이 있다는 걸 드러낸다.

10대 때부터 작가의 머릿속을 맴돈 이 작품은 세상에 나오기까지 10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그는 “아무 페이지나 펼쳤을 때 문장이 살아있고, 더 이상 가꾸고 싶은 생각이 안들 때 완성됐다고 느꼈다”며 “힘들 땐 세상에 혼자 남은 듯 공허하고 외로웠던 ‘17살의 나’를 떠올렸다”고 했다. 그의 전부였던 신앙은 문학으로 대체됐다. “문학은 제 마음과 정신이 있는 곳입니다. 이상적인 형태의 책이 존재한다고 믿고, 집필을 통해 그걸 찾아나가죠.”

소설 속엔 이산(디아스포라)문학적 요소도 곳곳에 묻어난다. 피비가 “나는 이민자잖아. 이민자들은 심리 상담을 믿지 않아. 내가 그런 걸 한다고 하면 주위 한국인들이 의지박약이라고 볼 거야. 다른 인종 집단들에게 일어나는 일이라고”라고 말하는 대목이 대표적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세 살 때 미국으로 이주한 이민 2세인 권 작가는 현실적 이유로 예일대에 진학해 경제학을 공부했다. 하지만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일을 하라”는 부모님의 격려 덕분에 브루클린 칼리지에 예술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으며 글을 계속 써나갈 수 있었다.

그는 가장 큰 영향을 준 작가로 영국 작가 버지니아 울프(1882∼1941)를 꼽았다. 그는 “버지니아 울프의 저서들 중에 특정 문단은 족히 수 백 번을 읽었다”고 했다. 그는 한국계 미국인에게 황무지나 다름없던 영미권 문학에서 앞선 길을 개척한 이창래, 이민진 등 선배 작가들도 언급했다.

인센디어리스는 이민진 작가의 소설 ‘파친코’를 제작한 코고나다 감독이 맡아 드라마로도 제작 중이다. 권 작가는 소설이 발표된 후 큰 호응을 얻고, 드라마화까지 결정된 과정을 말하며 “지난 5년간 한국 콘텐츠들은 아시아계 콘텐츠는 인기가 없다는 할리우드의 인식이 얼마나 틀렸는지 잘 증명해왔다”고 강조했다.

7년째 집필 중인 그의 차기작은 발레리나와 사진작가, 두 여성의 야망과 욕구를 다룬 이야기다. 그는 “여성은 늘 누군가의 엄마, 딸, 자매 등이 되길 강요받았다”며 “왜 여성은 남성과 달리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에 대해선 장려 받지 못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져왔었다. 많은 분들이 공감하실 거라 생각한다”고 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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