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태가 ‘이재명 방북입장료격’ 300만달러 건넨 北 특급공작원 정체는?

정충신 기자 2023. 2. 12. 11:09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부부장급 특수공작원 ‘리호남’…김정일 총애, 정찰총국 핵심 공작조장
노무현·이명박·문재인 정권 핵심인사 상대 정상회담 미끼 거액 방북료 챙겨
2007년 10월 평양 남북정상회담 당시 남북경제인간담회에 북한 측 대표단으로 참석한 리호남. 왼쪽에서 두번째.

2019년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이 800만달러(100억원 상당)를 국외로 밀반출해 북한 측에 ‘스마트팜 사업용’ 명목으로 500만달러를 주고 당시 이재명 경기지사의 방북 입장료 격으로도 300만 달러를 제공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가운데 김 전 회장에게 방북료를 요구한 것으로 언론에 소개된 ‘북한 관계자’는 다름아닌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총애를 받은 부부장급(우리의 차관보) 대우를 받는 고위공작원 리호남(본명 리철)으로 확인됐다. 리호남은 노무현·이명박·문재인 정권 핵심인사들을 상대로, 역대 대통령들이 남북문제 성과에 집착하며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려는 상황을 이용해 거액의 방북료를 받아 챙기는 등 성공적인 대남 공작을 펼친 특급공작원으로 정평나 있다.

김성태 전 회장은 2019년 7월 필리핀 마닐라에서 북측 관계자를 만나 “이재명 경기지사가 다음 대선을 위해 방북을 원하니 협조해 달라”고 부탁하자 북측 관계자는 “방북하려면 벤츠도 필요하고 헬리콥터도 띄워야 하니 500만달러를 달라”고 한 것으로 보도됐다. 양측은 금액을 300만 달러로 합의했고 같은 해 11~12월 북한 측에 돈이 건네졌다고 한다.

국가정보원 등 첩보당국은 언론에 등장하는 ‘북측 관계자’가 30여년간 대남공작 활동을 한 특급공작원 리호남으로 확인했다.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은 “리호남은 대남공작에 뛰어든 1990년대 초반부터 현재까지 무려 30년 넘게 활동하면서 대남정치공작, 남북교류사업 등 경제공작(외화벌이공작),문화영향공작, 기밀수집 탐지 등으로 전형적인 간첩공작을 벌여왔다”고 밝혔다. 이름은 리철운, 리호남, 장호진 등으로 다양하며 여러 사건에서 그의 정체가 일부 노출됐음에도 최근까지 활동 중이다.

첩보당국에 따르면 리호남과 관련된 대표적인 대남 정치공작 사례가 1997년 벌어진 이른바 총풍(銃風)사건과 북풍(北風)사건이다. 당시 여당과 안기부가 북한을 끌어들여 총선과 대선에 영향을 미치려 했다는 사건이다. 1997년 11월 베이징에서 한나라당 정재문 의원이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인 안병수(본명 안경호)를 만날 때도 리호남이 개입했는데, 당시에는 리철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전모가 공개된 두 사건은 안기부의 대북공작을 역이용한 북한의 대남 정치공작이 성공한 사례로 평가된다.

유 원장은 “2006년 10월 20일 리호남은 북한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 참사 명함을 지닌 채 베이징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최측긴인 안희정(후에 충남지사)과 이화영(후에 경기도 평화부지사) 열린우리당 소속 의원을 만났다”며 “접촉 목적은 교착상태에 빠진 남북관계의 개선과 특사 파견 및 정상회담 문제를 논의하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이후 2006년 12월 16일 이화영 의원은 평양을 방문했다. 당시 리호남은 방북 성사비조로 돼지농장의 신축을 요청했고 모기업이 이를 제공해 2007년 3월 7일 이해찬 전 총리가 평양을 방문했고, 같은 해 10월 노무현·김정일 정상회담(2차 정상회담)이 성사됐다.

2007년 12월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자 리호남은 대남라인을 동원해 당선자 측에게 접근했다. 이미 대선 전에도 리호남은 이명박 후보의 최측근인 박영준(후에 지식경제부 차관)과 접촉해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영남의 대통령 취임식 참석건을 갖고 협의를 진행한 바 있다. 2012년 대통령선거 때는 문재인 캠프의 핵심인사와 연락선을 구축해 취임 이후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구체적 제안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리호남은 정권과 코드를 맞추며 경쟁적으로 대북 교류사업에 뛰어드는 재벌기업 등을 역이용해 이른바 입장료, 추진비, 성공보수 등 막대한 외화를 챙기는 대남 와화벌이 경제공작에도 탁월한 성과를 냈다. 1998년 정주영 회장의 소떼 방북 타진 시 대북사업가가 그해 1월 베이징에서 접촉했던 북 관계자도 리호남이었다. 2005년 ‘남북합작 애니콜 삼성전자 광고’ 성사도 리호남 작품이다. 삼성, 대우, CJ그룹, 금호아시아나그룹, GS그룹, 프라임그룹 및 최근의 쌍방울그룹 등에 이르기까지 국내 대기업의 대북 접촉 현장에는 늘 그가 있었다. 2019년 12월 한국가스공사 직원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대북가스사업을 협의하기 위해 접촉했던 관계자도 리호남이었다. 또한 KBS 등 방송사들이 북한에서 프로그램을 제작할 때도 도움을 줬다. 리호남은 2010년 적발된 간첩사건, 즉 북한에 ‘작전계획 5027-04’ 및 군사교범 등을 제공한 혐의로 징역 6년형을 선고받은 박채서(흑금성)를 포섭하기도 했다. 2021년 농협해킹사건에 연루돼 2022년 검거된 간첩사건 배후도 리호남이었다.

리호남은 한국 국가기밀 및 군사상 기밀은 물론 국내 각종 정치 정세 자료를 탐지·수집하는 등 종횡무진 활약한 공로를 인정받아 공화국 2중영웅 칭호, 국기훈장 1급(3회), 국기훈장 3급(2회)을 받았다. 2009년 2월 김정일의 지시로 대남 공작부서 대폭 개편 후 신설된 ‘정찰총국’으로 배치돼 대외(해외)정보국 소속 핵심 공작조장으로 활동 중이다.

정충신 선임기자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