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쉿!” 안타키아에 고요가 찾아오는 순간···생존자 숨소리 들으려 모두가 멈췄다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 현장을 가다]
“쉿!” “조용히!”
11일(현지시간) 오전 튀르키예 남부 안타키아의 한 건물 폐허에서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던 한국 해외긴급구조대(KDRT) 대원들이 손바닥을 편 손을 머리 위로 줄줄이 들어 올렸다. 검지를 들어 입에 갖다대며 조용히 해달라는 신호를 보내는 남성도 있었다. 그 순간 주변 사람들이 일제히 동작을 멈췄다. 근처에 있던 중장비도 작업을 멈췄다. 모든 소리가 일순간 멎고 생존자가 발견된 곳으로 눈동자들이 향했다.
포크레인을 비롯한 드릴, 망치의 굉음으로 가득한 안타키아에서도 이따금씩 고요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바로 생존자를 확인할 때다. 구조에 나선 이들이 콘크리트 잔해 틈새로 몸을 구기고 들어가 누군가의 이름을 연달아 외치며 반응을 기다릴 때면, 주위 사람들은 숨소리마저 참은 채 두 손을 모아 기도를 했다. 상황을 모르고 대화하며 지나가는 사람에게는 ‘쉿’하는 제스처가 날아왔다. 생존자가 낼 지 모르는 ‘희미한’ 소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모두가 온 몸의 감각을 귀에만 집중했다.
강진 발생 이후 130시간 넘게 흐른 이날, 안타키아 주민들은 여전히 ‘소리’에 희망을 걸고 있었다. “분명 내가 소리를 들었다”며 구조단을 찾는 이들이 끊이지 않았다. “오늘 아침까지 소리를 들었다” “저쪽에서 소리가 난다”며 도움을 요청하는 식이다. 이날 한 여성은 기자를 붙잡고 “어제 여기서 잤는데 소리가 들렸다. 8살 아이가 여기 갇혔다. 계단 올라가는 쪽에 있는 것 같다. 제발 포크레인 좀 치워달라”고 연신 호소했다. 또 다른 여성은 “소리가 어젠 들렸는데 오늘 아침엔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르겠다. 살려달라”며 구조대원을 붙들었다. 붕괴된 곳에서 소리가 나는데, 사람이 내는 소리인지 아니면 개나 고양이가 내는 소리인지를 논의하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중장비가 도저히 진입할 수 없는 현장에선 인명 수색견의 목에 걸린 방울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한 남성이 “아이 넷과 아내가 저 안에 있다. 제발 도와달라”고 해서 따라간 건물더미에선 지켜보는 이들이 숨을 죽이고 수색견의 움직임을 좇았다. “찾아봐!” “이리로! 한 번만 더!”하고 독려하면 수색견은 냄새를 맡으며 생존자의 흔적을 찾았다. 모두가 구조견이 찾았다는 신호로 짖어대기만을 기도했다.
그러나 강진 발생 일주일이 다가오며 ‘소리가 들렸다’라는 말이 내포하는 희망은 점점 작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과거 발생한 대지진에서 생존자는 지진 발생 3일 내에 구조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튀르키예·시리아 강진 사망자가 2만8000명을 넘겼다는 소식은 생존 가능성에 기대를 걸기 어렵게 한다.
전세계 70개국에서 구조단이 파견됐다고는 하나, 지진 피해 지역이 워낙 넓은 만큼 구조 인력이 부족한 실정도 한 몫한다. 현지에서 만난 한 구조 관계자는 “출동하는 한국팀을 붙잡고 현지인들이 무작정 ‘여기 살아있는 사람이 있다. 소리가 들린다’고 구조 요청을 하면 그리로 가보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생존자가 아니고 사망한 상태다. 아무 것도 없는 경우도 있다”며 “다들 마음이 급하니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실낱 같은 소리일지라도 포기하지 않은 결과 연일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 11일 오전 KDRT는 튀르키예 구조팀과 공동 작업을 벌여 안타키아 내 4층 건물 중 3층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65세 여성을 구조했다. 이 작업이 진행되는 약 4시간 동안 주변 중장비까지 조용해지는 순간이 대여섯번 찾아왔다. 그리고 이날 오후엔 완전 붕괴된 4층 건물에서 어머니(51)와 아들(17)이 같이 구조됐다. 튀르키예 지진 피해 현장에서는 모두가 단 한 사람의 소리에 집중하는 순간이 모여 기적을 만들고 있다.
안타키아 |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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