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계 베스트셀러 작가 “내 작품의 영상화는 정치적인 일”
2018년 첫 장편 ‘인센디어리스’
한국계 이민여성 극우 기독교도로
종교·사랑 탐색…7개 언어 번역
‘파친코’ 감독이 드라마로 제작중
“세상의 고통 속에서 철저히 혼자라고 느꼈는데 독서를 통해 그건 사실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는 제임스 볼드윈(흑인 작가)의 말이 떠올라요. 저 또한 상실로 고통을 겪을 때 책 안에서 동지애를 느꼈던 것처럼, 큰 상실에 대해 계속 글을 쓰고자 합니다. 문학이야말로 외로움을 치유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약이잖아요.”
극우 기독교에 함몰된 한국계 미국인 여성이 주도한 반사회적 테러와 그를 사랑한 남성 등을 주인공으로 삼은 첫 소설 <인센디어리스>(문학과지성사)로 독자와 평단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 작가 권오경(미국 이름: R.O. 권)이 지난 11일 한국 언론과 인터뷰 중 전한 말이다.
“상실”이라는 그의 발언 앞에는 10대에 목사가 꿈일 만큼 독실했으나 기독교를 등지게 된 ‘한국계 미국 이민자 여성의’가 생략되어 있다. 세 살 때 한국을 떠나 교회 기반 미국 엘에이(L.A.) 한인 사회와 독실한 부모 아래 자란 권오경은 17살 ‘영생’의 ‘확신’에 가득 찬 종교에 회의를 품고 신앙을 버린다. 이 시절 상실의 슬픔은 데뷔작의 뿌리가 되거니와, 진리 추구라는 작가적 신앙을 ‘축성’한다.
“가령 볼테르의 책을 볼 땐 기독교도가 아닌 그를 위해 기도할 정도로 진지하게 신앙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많은 것을 읽을수록 세상의 유일한 진리라는 기독교적 신념을 유지하기가 불가능해졌다. 종교가 사람을 당기는 매력은 확신이다. 답을 찾을 수 있다는. 이제 이런 확신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지려고 한다.”
2018년 미국서 출간된 <인센디어리스>(The Incendiaries)는 피아노에 재능을 보였던 한국 이민가정의 소녀(‘피비’)가 엄마의 죽음 뒤 방황하다 극우 종교단체를 추종하는 과정을 유려한 호흡으로 전개해낸다. ‘낙태’에 반대하며 중절수술 병원 상대의 테러에 이르기까지 지극히 현실적이면서도 은유적인 도발로 사랑의 본질을 관통하려는 작품으로, 많은 독자를 포섭했다. 현재 <파친코>를 연출한 한국계 코고나다 감독에 의해 드라마로도 제작 중이라 미국 사회에서 구현되는 종교, 선거마다 정쟁이 되는 임신중절 이슈, ‘이민자성’ 등이 여전히 혐오범죄의 대상이 되는 아시아계 여성을 통해 중층화하고 전면화할 전망이다.
권오경은 스스로 “(작품의 영상화는) 정치적 의미를 갖는 일”이라며 “할리우드 영화나 방송에서 아시아인이 나오면 인기가 없단 생각이 틀렸다는 게 지난 5년 잘 증명되어 왔다. 내가 자라던 때와 다른 환경에서 지금 아시아계가 자랄 수 있어 기쁘다”고 말한다. 특히 “한국계가 아닌 미국인 여성이 남자친구에게 ‘오빠’라고 부를 정도로 한국 드라마나 영화의 영향이 훨씬 가시적으로 드러나고 있다”고도 말한다.
그러면서도 “성차별, 인종차별은 내 삶의 일부”라는 작가는 “동시에 아시아계에 대한 혐오폭력이 많아지고 있어 분노할 수밖에 없다.” 권오경은 아시아계 여성에 대한 미국 사회의 편견과 맞서기 위해 진한 눈화장을 한다.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덜 힘겨운 세상을 만드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2018년 트위터로 ‘커밍아웃’(양성애자라 밝힘)을 하기도 했는데, 대중의 호응이 뜨거웠다.
“한국계 작가로 살 수 있을지 두려웠다”며 예일대 경제학과로 진학, 은행업에 종사했으나 본래의 ‘욕망’대로 작가가 되고자 브루클린대 예술학 석사 과정을 마친 게 2008년이다. “족히 100번은 읽었을 버지니아 울프의 문장, 그리고 차학경, 이민진과 같은 1세대 한국계 미국인 작가들”이 큰 힘이 되어줬다. 그는 “그토록 싫어했던 경제학 일에도 감사하고 있다. 글쓰기가 아무리 힘들어도 그때의 고통과 절망을 느끼진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10년을 공들여 내놓은 <인센디어리스>는 단숨에 베스트셀러가 되어 7개 언어로 번역된 상태다. 차기작은 발레리나와 사진작가 두 여성의 사랑과 욕망을 그린다. 마무리 단계에 들어간 이 작품 또한 7년째 붙잡고 있는 중이다. 첫 작품을 국내 번역·출간한 문학과지성사가 이날 주관한 인터뷰는 샌프란스시코에 거주하고 있는 작가와 국내 기자들 간 ‘줌’으로 17시간의 시차 넘어 이뤄졌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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