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마진국] 배두나에게 물었다, 영화가 답했다…“‘누칼협’ 아세요?”

강푸른 2023. 2. 12.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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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다음 소희’의 주인공 소희(김시은 배우)는 특성화고교 실습생으로 콜센터에 파견된다. 트윈플러스파트너스 제공.

※주의 : 영화 '다음 소희'의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혹시 '누칼협'이라는 말 아세요? 요새 유행어인데…."

지난달 31일, 영화 '다음 소희' 주연을 맡은 배우 배두나씨를 인터뷰하며 던진 첫 질문입니다. 다소 엉뚱하게 들리시나요? 누가 더 최신 유행어에 민감한지 따지려는, 소위 'MZ 테스트' 같은 걸 하려는 건 아니었습니다. '누칼협', '누가 칼들고 협박했느냐'는 질문을 줄인 단어야말로, 영화가 온몸으로 부딪히고 있는 담론을 상징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정주리 감독의 영화 '다음 소희'는 2017년 LG유플러스 전주고객센터에서 일하던 특성화고 실습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을 다룹니다. 대기업 고객센터지만 외주화 전문 업체 ㈜LB휴넷이 운영하던 이곳에서 고(故) 홍수연 학생은 서비스를 해지하려는 고객의 마음을 돌려야 실적을 채우는 '해지 방어팀'에서 일했습니다. 얼마나 스트레스가 심한 일이었을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겠죠. 결국 홍 양은 실습 5개월째에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영화 속 소희의 삶도 그렇게 멈춥니다.

그러나 영화의 '최강 빌런(가장 센 악역)'은 폭언을 던지는 고객님들이 아닙니다. 흥 많고 씩씩한, 어쩔 땐 '욱'하는 소희는 어쩔 땐 고객을 놀려먹고 성희롱을 일삼는 변태에겐 시원하게 욕도 퍼부을 줄 아는 인간이니까요. 영화는 그보다 더 큰 세계, 열아홉 살 소희의 일터 위의 위를 비춥니다. 아니 노려봅니다. 소희가 자살한 다음, 사건을 맡아 회사 경영진을 면담하던 형사 유진(배두나)처럼요.

영화 ‘다음 소희’의 한 장면. 트윈플러스파트너스 제공.


유진 앞에서 회사는 애초부터 소희가 말썽이었다는 변명을 늘어놓습니다. 가정 형편에 성격까지 들먹이며 책임을 피하려는 모습은 비겁하기 짝이 없지요. 그러면 하청 업체가 문제일까요? 궂은일은 외주에 맡기고 끝까지 코빼기도 비추지 않는 원청 대기업의 잘못은 없을까요? 교문에 '취업률 100%' 현수막을 내걸기 위해 애완동물관리과인 소희를 콜센터로 보낸 학교는요? 바로 그 취업률로만 학교를 평가해 성과급을 차등 지급하는 지방교육청은 어떻습니까?

"어떻게, 이젠 교육부로 가시게요?" 연기 도중 배두나가 실제로 모멸감까지 느꼈다고 고백한 이 장면에서, 유진을 조롱하는 장학사의 대사는 일개 형사가 넘어서기에는 너무 두꺼운 현실의 벽을 보여줍니다. 겹겹이 누적된, 혹은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처럼 움직이는 이 연쇄 작용은 영화 속에서 생각보다 평범한 한 단어로 응축됩니다. 소희가 그토록 받고 싶어 했지만, 사실은 처음부터 받을 수 없는 돈이었던 '인센티브'죠.

'인센티브', 즉 일한 만큼 받아간다는 방침은 일견 문제 될 것 없어 보이지만 인간의 노동을 오직 숫자로 판단한다는 의미가 숨어 있습니다. 아이들이 실제로 무슨 일을 하는지 일의 질을 따지기보단 취업률만 신경 쓰는 학교와, 상담사가 '쳐내야'하는 콜이 상담에 따라 얼마나 고통스러울 수 있는 지엔 관심이 없는 회사처럼요. 큰 틀에서 이는 다시 실적에 따라 모든 것을 차등 지급하는 ' 무한 경쟁'의 대원리로 연결됩니다.

영화 ‘다음 소희’의 한 장면. 트윈플러스파트너스 제공.


감독 표현에 따르면 "절제하고 절제해서 이 정도"라는 '다음 소희'는 분노하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명확한 끓는점을 향해 서서히 달아오르고, 일단 끓은 뒤에는 확실하게 분노를 터트리지요. 그 과정에서 관객이 체험하는 건 눈 앞에 칼을 들고 협박해야만 위계와 강압이 만들어지는 건 아니라는 당연한 사실입니다. 팀장이 자살한 뒤 새로 온 팀장은 소희를 향해 "일하기 싫으면 관둬. 누가 떠다밀었어?"하고 다그치지만, 그 말에 소희가 대꾸할 수 없다는 사실이야말로 소희의 진짜 처지를 보여주는 게 아닐까요.

이쯤에서 첫 문장의 답을 소개하며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영화 '거인' 속 최우식과 비견될 만한 연기를 보여준 김시은 배우와 배두나 배우는 이 영화가 지금 꼭 필요한 이야기라는 생각에 출연을 결심했다고 하죠. 배 씨는 '누칼협'의 뜻은 알지 못했다면서도, 만약 영화 속 유진이 되어 그 말에 답한다면 이렇게 말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말하면 할 말 없죠, 사실. 근데 적어도…. 모르겠어요. 개인적으로 인간이 인간에 대한 어떤 이해심이나 연민을 갖는다면, 특히나 만약에 그것이 오로지 나의 세상이었던 사람한테 '그냥 걸어나오면 되지, 누가 뭐 칼 들고 협박했어? 왜 거기 있었어?' 라고 한다면 그건 너무 잔혹한 것 같아요. 저는 그것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그런 생각이에요. 이 영화를 했을 때에도 그런 마음이었고요."

https://news.kbs.co.kr/special/danuri/2022/intro.html

강푸른 기자 (strongblu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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