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1년] 전쟁이 바꿔버린 식탁 풍경⋯가장 많이 오른 식품은?
곡물자급률 낮은 우리나라 '직격탄'
식용유 20.5%·밀가루 19%·크림빵 9.1%·짜장면 8.7%↑
고기소·양돈 배합사료 각 22.9%, 18.9% ↑
요소비료는 정부 지원으로 11.6% 내렸지만 21년 8월보다는 18.9% 상승
농가 팍팍한 생산·소비 활동 방증
지난해 2월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발발한 전쟁으로 국제 곡물시장에서 지각 변동이 심하게 일었다. 세계 최대 곡창지대로 꼽히는 우크라이나의 영토가 전쟁으로 피폐해지면서 주요 곡물 생산량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곡물 수출대국인 러시아 역시 전쟁을 수행하느라 정상적인 수출 활동을 할 수 없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해바라기유 1위, 유채·옥수수 3위, 밀 5위 수출국이다. 러시아 역시 밀 1위, 보리 3위, 옥수수 6위 수출국이다.
추가 가격 상승 요인도 발생했다.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각종 원자재값이 연쇄적으로 뛰었기 때문이다. 주요 농산물 수출국가의 기상 악화에 따른 작황 부진까지 더해졌다.
머나먼 타국에서 일어난 전쟁이 지난 1년간 한국 농민들의 생활을 얼마나 팍팍하게 했을까. 농민이 자주 구매할 법한 식품 ·농자재·외식메뉴 10종의 가격 변동폭을 통해 짐작해보기로 했다.
우선 도시는 물론 농촌에서도 흔히 소비하는 대중적인 식품 6개를 선정했다. 라면·빵·밀가루·국수·식용유 등이 그것이다. 구체적인 제품은 브랜드 인지도를 고려해 정했다. 가격은 한국소비자원에서 운영하는 가격정보 종합 포털인 ‘참가격’을 기준으로 했다 그 결과 적게는 9.1%, 많게는 20.5%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많이 뛴 것은 식용유였다. 이달 3일 기준 이마트·농협하나로마트 등 전국 대형마트에서 판매하는 <해표 맑고 신선한 식용유>(900ml)의 평균가격은 5120원이었다. 지난해 같은 달(4250원)과 견줘 무려 20.5% 급등했다.
밀가루도 그에 뒤지지 않았다. <곰표 밀가루 중력다목적용>(1kg)은 1880원으로 전년(1580원)과 비교해 19% 높았다.
이어 과자·소면·라면·빵 순으로 증가폭이 컸다. <농심 새우깡>(90g)은 1020원→1180원으로 15.7%, <오뚜기 옛날국수 소면>(900g)은 3150원→3550원으로 12.7% 상승했다. <농심 신라면(5개입)>은 3680원→4100원으로, <삼립 정통크림빵>(3개입)은 3280원→3580원으로 각각 11.4%, 9.1% 인상됐다.
의외로 외식을 많이 하는 계층이 농민이다. 일손은 부족하고 연령대는 높다 보니 새참이나 점심 등을 근처 요식업소에서 시켜 먹거나 가서 사 먹는 사례가 많다. 전쟁은 한국 농민의 외식 부담도 키운 것으로 보인다. 한국소비자원 참가격에 따르면 중국집 짜장면 전국 평균가격은 한그릇당 6282원으로 지난해 2월 전국 평균가격(5779원)과 견줘 8.7% 비쌌다.
농민의 생산활동은 소비활동보다 훨씬 더 여유가 없었다. 이를 알아보기 위해 사료(소·돼지) 2개 품목, 비료 1개 품목 등 3개 품목의 가격을 짚어봤다.
농림축산식품부의 ‘월별 배합사료(공장도) 가격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양돈용 배합사료의 평균가격은 1㎏당 799원이었다. 올 1월 가격이 집계되려면 이달 중순이 지나야 해서 지난해 12월 가격이 현재로서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이른 가격이다. 전쟁이 발발한 지난해 2월(674원)과 비교하면 18.6% 높다.
고기소용 배합사료는 더 큰 폭으로 치솟았다. 1kg당 607원으로 지난해 2월 가격(494원) 대비 22.9%나 상승했다.
사료비가 크게 뛴 것은 산업 구조와 관련이 깊다. 우리나라는 배합사료에 사용되는 곡물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데다 곡물 가격이 제품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더욱이 사료용 곡물을 들여오는 대표적인 두 국가가 공교롭게도 전쟁 수행국인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다. 전쟁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농경연에 따르면 최근 3년(2019~2021년)간 우리나라의 사료용 밀의 총수입량은 125만t이다. 이중 우크라이나에서 61만t(48.9%), 러시아에서 18만t(14.3%)이 수입됐다. 두 나라가 전체 수입량의 3분의 2가량( 63.2%)을 책임졌던 셈이다.
비료도 마찬가지였다. 이달 3일 발표된 통계청의 ‘2022년 농가판매 및 구입가격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농가구입가격지수는 125.2로 전년 대비 12.7% 올랐다.
이중 가장 큰 상승폭을 기록한 품목은 비료였다. 지난해 비료값은 전년 대비 무려 132.7% 올랐다. 정부 지원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해 3월부터 농가 비료 구매 부담 경감을 위해 가격 인상분의 20%만 농가가 부담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이를 고려하더라도 비료값 인상 수준은 농가가 체감하기엔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올 2월 ‘그레뉼요소(20kg)’의 농민 실구매가는 1만2600원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했던 지난해 2월 실구매가(1만4250원)보다 11.6% 낮다. 이 가격은 정부·농협이 인상차액 중 80%를 지원하는 것을 뺀 농가 실제 부담 가격이다.
정부 등의 지원으로 1년간 농가 부담이 줄긴 했지만, 지난해 2월에서 6개월 더 전인 2021년 8월 실구매가(1만600원)와 비교하면 여전히 18.9% 높다.
불행 중 다행인 점은 지난해 11월 ‘흑해 곡물수출협정’ 연장이 결정되면서 곡물 국제 선물 가격이 지속적인 감소 추세에 있다는 점이다. 흑해 협정은 지난해 7월22일 러시아·우크라이나가 유엔·튀르키예의 중재 아래 흑해를 통해 양국의 곡물·식량·비료를 수출하도록 맺은 것이다.
유엔무역개발협의회(UNCTAD)는 “(협정 발효로) 극심한 인플레이션 이후 식량 가격이 낮아질 수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연장 기간이 지난번과 같이 120일밖에 되지 않아 이후 가격 동향은 지켜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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