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상’ 아니라 ‘지원’으로 돕겠다는 질병청
4-1 인과성 인정 대신 법으로 지원 보장
입증책임 지는 것에는 난색
재심의 때 별도 기관서 진행
피해자·가족 “우리가 돈 때문에 이러나”
질병관리청이 코로나19 백신 접종 이후 숨지거나 병에 걸린 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제도 개선을 예고하자 피해자와 가족은 근본적인 해결 방안이 아니라고 반발한다. 접종 이상 반응자 지원을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지원·보상 사례로 인정 받지 못한 질병이나 사망을 재심의하는 전문가 단체를 별도로 마련하는 게 개선안의 핵심인데, 시간적 개연성이 있는 이상 반응을 피해로 인정하는 전향적 조치가 빠졌기 때문이다.
11일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이 같은 이야기가 나온 것은 지난 1일 ㈔코로나19백신피해자가족협의회(이하 코백회)와 면담 때였다. 질병관리청 보상총괄팀 측은 백신 접종 이후 이상 반응이 생긴 시기가 시간적 개연성이 있으나, 백신과 이상 반응에 대한 자료가 충분하지 않아 인과성을 인정 받지 못한 채 정부 ‘지원’을 받는 ‘4-1’ 판정자들을 더 안정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겠다고 제안했다.
▮“4-1 인과성 인정은 불가”
앞서 백신 피해자들은 백신 인과성 심사에서 4-1 판정을 받은 사례를 ‘피해 보상’ 사례로 폭 넓게 인정해달라고 요구했다. 이런 요구를 반영해 지난해 11월 국회에서는 감염병예방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당시 김미애(국민의힘) 의원의 발의안에는 ‘백신 접종과 이후 발생한 질병 간 시간적 개연성 등이 인정되면 인과관계를 추정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법안 발의 의원들과 피해자 측은 질병청에 법안 현실화를 위한 대책을 마련해달고 요청했으나 질병청은 구체적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3개월 만에 입장을 내놓은 질병청 측은 “의학적 근거 없이 인과성을 인정하면 전체 (피해) 보상의 틀이 흔들리기 때문에 4-1 판정 사례를 백신 피해 사례로 인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그 대신 4-1 판정자를 안정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법적 장치를 마련했다고 보완책을 이날 제시한 것이다. 질병청 관계자는 “그간 지원을 통해 보상에 상응하는 수준의 도움을 주려고 노력했다”며 “법적 근거 없이 예산 사업으로 해온 것을 체계적 근거 아래에서 안정적으로 뒷받침하려는 조치”라고 설명했다.
백신 피해자와 가족은 “이미 받고 있는 조치를 법적 지원으로 포장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하기”라고 반발한다. 코백회 관계자는 “정부가 검증도 되지 않은 백신을 맞으라 해 따랐는데, 이후 중증에 시달리고 가족이 숨졌다. 정부도 백신 이외에 다른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에 지원해주고 있는 것 아니냐. 그렇다면 그게 ‘(치료) 지원’이냐. ‘(피해) 보상’으로 인정해 주는 게 맞다”며 반대 의사를 명확히 했다.
만약 4-1 판정자의 지원을 법적으로 규정하면 지원 폭이 기존보다 더 줄어들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변호사 출신의 김미애 의원은 “현 지원 규모가 법적 지원 규모보다 많을 수 있다. 법의 잣대로 그나마 있던 지원 규모가 줄어들면 피해자들을 2번, 3번 죽이는 일이 되기 때문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김 의원은 이어 “인과 관계를 추정한다는 것은 입증 책임을 질병청이 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되면 백신 피해자들이 호소하는 문제의 상당 부분이 해소될 것으로 본다”면서도 “정부 입장에서는 전 세계 어떤 나라에서도 인과관계 추정을 인정하는 곳이 없는 상황에서 관련 법 제도까지 마련하는 게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정부 입증 책임 지는 건 부담”
코백회도 백신 접종과 그 이후 발병한 질병의 인과성 입증 책임을 비전문가인 피해자에게 지우는 행정의 개선도 시급하다며 질병청에 대책을 요구했다. 강기윤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해 9월 질병관리청장이 백신 부작용에 대한 입증 책임을 지도록 하는 내용의 특별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백신 부작용 피해자들은 그간 각종 의료 기록지와 서류 등을 스스로 수집하고 해석한 이후 질병청을 상대로 백신과 이상반응의 인과관계를 입증했다. 징병청이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으면 이의 제기 시 입증 책임은 온전히 피해자 몫이었다.
이와 관련해 질병관리청은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질병청 관계자는 “실제 인과성을 규명 조사하는 것은 정부의 몫”이라면서 “의학적 전문성이 떨어지는 피해자가 인과성 입증을 하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해 이미 완화된 입증 책임을 지우고 있다. 입증 책임 전환에 앞서 이런 상황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재심의 시 별도 기관서 진행”
이외에 질병청은 김미애 의원 발의 법안 중 ‘백신과 이상반응 간 인과성을 인정 받지 못한 이들이 별도의 전문가 집단을 통해 재심의 받을 수 있게 하는’ 내용을 보완해 인과성 재심사 시 제3의 전문가 단체를 꾸려 추진하는 방안을 제안했는데, 이에 대해서 피해자 측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현재는 1차 인과성 판정을 하는 감염병관리위원회 내 예방접종 피해보상전문위원회가 재심의를 맡는데, “기존 위원들이 또 심사하면 똑같은 결과가 나오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았다. 제3의 전문가 단체를 꾸리는 방안에 대한 구체적 언급은 없었지만, 질병청 추천 전문가와 피해자 추천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형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두경 코백회 회장은 “정부 지원조차 받지 못하는 4-2 판정을 받은 분들 중 상당수는 질병과 백신 접종 간 시간적 개연성이 있어서 억울한 분들이 많다”며 “이런 분들은 차등을 해서라도 인과관계를 인정하고, 그래도 인과관계를 인정 받지 못한 분들은 제3의 기관에서 심의 받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은 이어 “백신 피해자들이 원하는 것은 백신으로 인한 질병·사망을 정부가 인정하는 것”이라며 “이런 부분 때문에 정부 관련 심사에서 피해 보상 판정을 받으려는 것이지 돈이 주목적이 아니다. 이 점을 정부도 잘 알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한편, 코백회는 11일 코로나19 백신 접종 뒤 숨진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서울 청계광장에 마련한 분향소에서 44번째 ‘백신 희생자 추모 및 특별법 제정 촉구 집회’를 열었다. 이날 코백회 측은 정부에 ▷광역별 백신 부작용 치료 전담병원 선정 ▷사망자 및 중증환자 대상 생계 유지비 및 치료비 선 지원 후 정산 ▷사인 불명과 이상 반응 시간적 개연성 90일 기준 인과성 인정 ▷피해보상 전문위원회 심의내용 공개 및 심의 시 피해자 가족 또는 대리인 입회 ▷피해보상 전문위원회 인과성 검토 4-1 평가 기준의 기저 질환자 제외 조항 폐지하고 전면 재심의 ▷기존 심의한 피해보상 심의 결과 4-1은 2로 4-2는 3으로 보상범위 상향 조정 ▷기존 피해보상 전문위원회 해체하고 새로운 심의위원으로 재편성 ▷피해보상 전문위원회 심의 결과 이의신청은 제3의 기관에 위탁하여 객관적인 평가 ▷백신 피해자 인과성 인정 확대 및 입증 책임 국가에 전환 요청 등의 제도 개선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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