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과 마라톤 잃었지만 韓 살린 벨기에 6·25 참전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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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런던올림픽 마라톤 종목에서 한국 육상선수와 기량을 다툰 벨기에 선수가 있었다.
둘 다 금메달을 목표로 뛰었으나 고난의 레이스 끝에 벨기에 선수만 동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다.
유엔군사령부가 10일 공개한 벨기에의 육상선수 겸 6·25전쟁 참전용사 에티엔 가이의 사연이 한국인의 심금을 울린다.
2차대전으로 한동안 쉰 올림픽이 1948년 영국 런던에서 개최됐을 때 그는 벨기에 국가대표팀 선수로 금메달을 노리며 마라톤 종목에 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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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선수 최윤칠과 경합한 끝에 동메달 따내
6·25전쟁 발발 후 동생과 나란히 자원해 참전
동생은 전사… 본인은 다쳐 마라토너 꿈 접어
1948년 런던올림픽 마라톤 종목에서 한국 육상선수와 기량을 다툰 벨기에 선수가 있었다. 둘 다 금메달을 목표로 뛰었으나 고난의 레이스 끝에 벨기에 선수만 동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다. 그렇게 ‘우연한 조우’에 그칠 뻔했던 이 벨기에 선수와 머나먼 신생국 한국의 인연은 한반도에서 6·25전쟁이 터지고 벨기에가 유엔군 일원으로 참전을 결정하며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된다.
전후 가이는 육상선수 중에서도 가장 힘든 마라톤 선수가 되었다. 영국에서 군사훈련을 받을 때 장시간 쉬지 않고 달리는 연습을 반복한 결과였다. 2차대전으로 한동안 쉰 올림픽이 1948년 영국 런던에서 개최됐을 때 그는 벨기에 국가대표팀 선수로 금메달을 노리며 마라톤 종목에 출전했다.
마라톤 레이스엔 한국인 경쟁자도 있었다. 훗날 대한육상연맹 고문을 지낸 최윤칠(1928∼2020) 선수가 주인공이다.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장거리 달리기에 두각을 나타낸 최윤칠은 신생 독립국 대한민국이 처음 출전하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 조국의 품에 안기겠다는 청운의 꿈을 품고 런던으로 향했다.
2년 뒤인 1950년 6월25일 한반도에서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전쟁이 발발했다. 벨기에는 이웃나라 룩셈부르크와 합쳐 700여명 규모의 혼성부대를 편성해 유엔군 일원으로 참전시켰다. 이에 가이는 친동생이자 같은 공수부대원인 동생 피에르 가이와 나란히 자원해 한국으로 떠났다.
하지만 전선 투입 2개월 만인 그해 3월 동생 피에르는 타고 가던 비행기가 적에 격추돼 전사하고 만다. 형 가이 본인은 2년 뒤인 1953년 3월 전투 도중 지뢰 사고로 다리를 크게 다쳤다. 이에 관해 유엔사는 “올림픽 동메달리스트였던 가이는 전쟁 기간의 부상으로 마라톤 선수로서의 꿈을 영영 접어야 했다”고 소개했다.
유엔사에 따르면 6·25전쟁 기간 벨기에는 연인원 3498명의 병력을 한국에 파견해 그중 104명이 전사하고 부상자도 336명에 달했다. 연인원 100명을 파병한 룩셈부르크도 15명이 목숨을 잃었다. 유엔사는 “벨기에·룩셈부르크 참전용사들의 숭고한 희생에 경의를 표한다”며 “결코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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