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남수의 視線] 곽상도의 50억, 이승기의 50억

천남수 2023. 2. 11.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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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장동 일당’에게서 아들 퇴직금 등의 명목으로 거액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곽상도 전 국회의원이 지난 8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을 마친 후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무리 생각해도 6년 근무한 퇴직금이 50억 원은 아니다.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그런데 사실이 되어 버렸다. 지난 8일 서울중앙지법은 곽상도 전 의원의 아들이 화천대유에서 퇴직금 명목으로 받은 50억 원의 뇌물과 알선수재 등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곽 전 의원 아들의 퇴직금 50억 원은 사회통념 상 이례적으로 과도하나, 이 돈이 곽 전 의원에게 전달됐다는 증거가 없으므로 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했다. 국민은 분노를 넘어 혼돈의 상태에 빠졌다.

지난해 12월 가수이자 배우인 이승기 소속사였던 후크엔터테인먼트는 이승기에게 미지급 정산금과 그에 대한 이자를 합쳐 50억 원을 지급했다고 밝혔다. 이에 이승기 씨는 미지급 정산금이 입금됐음을 확인하면서 자신과 합의를 하지 않은 일방적인 지급에 대해 “정확한 음원 수익이 아니라는 점과 돈 때문에 싸우는 것이 아니라 다시는 이러한 일이 발생되지 않기 위해 싸우는 것”이라면서 50억 원 전액을 사회에 기부한다고 했다. 그는 서울대 어린이병원에 20억 원을 기부하는 등 선행이 이어지고 있다.

곽상도 전 의원의 아들이 퇴직금 명목으로 받았다는 50억 원과 이승기 씨가 소속사로부터 음원 수익으로 받은 50억 원. 보통사람은 퇴직금은 고사하고 평생 가질 수 없는 엄청난 돈임에도 이렇게 다르게 느껴지긴 어렵다. 보도에 의하면 이번에 곽상도 전 의원의 아들이 퇴직금으로 받은 50억 원은 지난해 퇴직금 순위 네 번째로 많은 역대급 액수라고 한다. 보통사람들은 평생을 직장생활을 하고 받는 퇴직금과는 비교할 수 없는 금액이다. 더구나 30대 나이에 고작 6년을 근무하고 받은 퇴직금이 50억 원이라니. 누가 이를 퇴직금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일반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국민 여론이 들끓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국민의 공분을 사는 것은 비단 50억 원이라는 돈 때문만은 아니다. 상대적 박탈감에 배가 아파서 나오는 얘기는 더욱 아니다. 우리 사회가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나 하는 자괴심이 들기 때문이다. 또한 법적 해석에 따라 얼마든지 유죄가 무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특히 예전에는 쉬쉬하며 벌어진 일들이 이젠 노골적으로 행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고의로 수사를 게을리했거나 혹은 수사 능력이 떨어져서 제대로 수사를 못 했든 검찰이 뇌물죄를 입증하지 못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부정이 용인되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결국 곽상도 전 의원 부자는 세금 납부와 함께 증여도 깔끔하게 성공한 사례로 길이 남게 될는지도 모른다.

▲ 가수 겸 배우 이승기(왼쪽)가 지난해 12월 29일 서울대어린이병원에 방문해 소아 진료환경 개선을 위한 발전기금 20억 원을 전달하며 김연수 서울대학교 병원장과 기념 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반면 이승기의 50억 원이 국민에게 주는 감동은 진했다. 소속사에 의해 피해를 입었음에도 이를 돌려받는 과정에서 생긴 수익을 전액 기부하겠다는 것은 그의 선한 심성을 짐작게 한다. 유명 연예인으로 고소득을 올리고 있지만, 50억 원은 그에게도 결코 가벼운 금액은 아닐 것이다. 소속사에 의해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원칙대로 음원 수익에 대한 권리를 지키겠다는 것도 원칙과 상식을 중시하는 것도 상식에 속하는 문제다. 그런 점에서 이승기의 50억 원이 국민에게 감동을 줬다면, 곽상도의 50억 원은 박탈감과 분노를 줬을 뿐이다.

이번 1심 재판 결과를 접하면서 새삼 확인되는 것이 있다. 바로 유죄를 무죄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은, 거꾸로 적용하면 무죄를 유죄로 만들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차라리 유죄를 무죄로 만들면 사회가 타락하고 국민적 공분을 사는 데 그치지만, 무죄를 유죄로 만들 수 있는 사회라면 이는 비극이다. 함께 지켜야 할 사회적 가치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이는 공동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역사적 퇴행에 다름 아니다. 자연히 기존 질서에 대한 저항감이 나타나게 되는데, 이는 극단적 분열을 낳을 수밖에 없다. 그런 사회는 공동체 붕괴와 공멸을 불러오게 된다는 사실을 역사는 증명하고 있다.

곽상도 전 의원의 아들이 받은 퇴직금 명목의 50억 원은 양 극단의 분열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다시 한번 그 상처를 깊게 했다. 법원의 1심 판결은 사법부의 권위를 추락시켰고, 결국 사회 정의의 기본을 무너뜨리고 말았다. 지금은 어느 때보다 공정과 상식을 강조하는 시대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특권을 용인하지 않는 사회다. 그러나 사회 정의의 마지막 보루인 심판관이 검찰에 의해 무너지는 것이 현실이 됐다. 윤석열 정부가 강조하고 있는 ‘공정과 상식’이 ‘곽상도의 50억’으로 희화화되는 시대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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