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 70주년 판문점을 찾아가다

이상현 2023. 2. 11.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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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필국 앵커 ▶

민족의 비극, 6.25 전쟁이 중단된 지 올해로 70년이 됐습니다.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직후 설정됐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역시 70주년을 맞았는데요.

◀ 차미연 앵커 ▶

정전협정 체결 70주년을 맞아 통일전망대는 분단의 상징인 판문점을 찾아가봤습니다.

코로나 이후 분위기가 조금 바뀌었다는데요.

그 역사의 현장 이상현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 리포트 ▶

70년 전인 1953년 7월 27일.

서울에서 직선거리로 52km, 평양에선 147km 떨어졌고, 널빤지로 만든 문이라는 뜻의 널문, 판문이라 불리던 한적한 시골마을에서, 2년간 이어져온 6.25전쟁 휴전협상이 마침내 타결됩니다.

[1953년 7월 대한뉴스] "7월 27일 오전 10시 드디어 휴전이 성립이 되어 일단 전투가 중지되는 단계로 들어갔습니다. 이로써 3년 동안에 걸쳐서 계속되어온 한국의 동란은 새로운 단계로 돌입하게 된 것입니다."

그로부터 70년.

통일대교를 지나 개성쪽으로 나 있는 대한민국 1번 국도를 따라 그때의 널문리, 판문점을 찾아갔습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 들어서면 과거 널문다리로 불렸다는 '돌아오지 않는 다리'가 가장 먼저 나타납니다.

"남측에서 북측으로 송환한 인원들은 남측에서 이 다리를 건너서 북측으로 북측에서 송환한 인원들은 이 다리를 통해서 북측에서 남측으로 단 한번 송환을 할 수가 있고 그 이후에는 되돌아갈 수 없다 해서 돌아오지 않는 다리라는 명칭이 붙었습니다."

휴전 직후 수많은 포로들이 오갔고 과거엔 북한군들이 공동경비구역으로 진입하던 통로였지만, 지금은 폐쇄된채 글자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녹슬어버린 군사분계선 표지판만이 외로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 다리 폐쇄와 동시에 양측의 공동경비도 사라지게 했던 1976년 북한군의 도끼만행 사건.

[1976년 8월 대한뉴스] "8월 18일 오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안에서 노무자들의 작업을 경비하던 유엔군 경비병들을 북한괴뢰 경비병 약 30명이 계획적으로 기습해와서 악랄한 살인만행을 저질렀습니다."

돌아오지 않는 다리의 북한쪽 시야를 가린 미루나무의 가지를 치던 도중 도끼를 빼앗아든 북한군에 살해됐던 미군 장교 2명은 그 자리에서 변함없이 추모되고 있었는데요.

그 돌아오지 않는 다리쪽을 감시하던 초소 위로 올라가봤습니다.

[이상현 기자/통일전망대] "제금 지금 서 있는 이곳은 판문점의 한 초소인데요, 제 뒤로 북한 땅이 한 눈에 보입니다. 저 뒤로 숲이 하나 보이는데, 그 안에 있는 건물이 1953년 정전협정이 체결된 장소입니다."

우거진 숲속에 가려져 하얀색 지붕만 보이던 70년 전 역사의 현장.

지금은 북한 땅이 된 옛 판문점을 21개의 유엔 참전국들이 기념비를 통해 1km 정도 떨어진 곳에서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정전협정 체결장소 옆쪽으론 인공기가 내걸린 북한의 평화박물관이,

[그리프 호프만/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 중령] "역설적이게도 저 평화박물관엔 북한군이 아군에게서 탈취해 만행에 사용했던 그 도끼가 그대로 전시돼 있습니다."

그 뒤쪽으론 비무장지대에 있는 북한의 최전방 감시초소가 눈에 띄었습니다.

왼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대형 인공기를 내건 북한의 선전마을, 기정동 마을이 보였고 그 뒤편으로 개성공단의 모습도 희미하게나마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북한땅을 뒤로 하고 하얀 말뚝으로 표시된 군사분계선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나타나는 7개의 건물들.

정전협정 체결 직후 군사분계선쪽으로 옮겨온 지금의 판문점으로, 2017년 11월 이 옆으로 귀순하던 북한 병사를 향해 북한군이 남쪽으로 총격을 가하며 잠시 군사분계선을 넘었지만 즉각 물러났던 사건은 정전협정의 존재감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리프 호프만/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 중령] "군사분계선 너머 총격이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북한군과 유엔군이 자제력을 발휘해서 총격이 멈추고 추가적인 쌍방간 교전이 없었다는 점에서 정전협정이 여전히 유효하고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좋은 예입니다."

북한과 중국군측 포로교환이 이뤄지기도 했던 회색 건물은 현재 북한군이, 유엔군측 포로교환이 있었던 하늘색 건물은 유엔군이 관리하고 있는데요.

하늘색 건물, 1번 임시건물이라는 뜻의 T1은 중립국 감독위원회의 회의실, T2는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실, T3는 군사정전위 소회의실입니다.

[신동호/유엔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 통역관] "이 T2라고 하는 곳은 유엔사와 북한군의 군사정전위원회 소속 인원들이 회의를 하는 곳이었는데 (1994년) 북한군이 군사정전위원회를 폐지하고 판문점 대표부를 설치했고 지금 그 이후부터는 군사정전위원회 회의라고 하지 않고 유엔사와 북한군간의 장성급 회담장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그 T2 건물 안으로 들어가봤습니다.

굳게 닫힌 북한쪽 출입문 앞을 경비병이 지키고 있는 가운데 남북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유일한 공간.

[이상현 기자/통일전망대] "제가 지금 서 있는 이곳, 탁자 위 마이크 선이 지나는 이곳이 바로 지난 70년간 남북을 갈라온 군사분계선이 지나는 곳입니다. 평범한 회의공간이지만 제 왼쪽은 남한, 오른쪽은 북한에 있는 셈입니다."

그 T2 건물과 T3 건물 사이 공간엔 나지막한 콘크리트 경계석이 놓여져 군사분계선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 경계석 너머 북한 지역, 판문각 주변엔 적막감이 감돌고 있었는데요,.

과거 흔히 보이던 북한 경비병들은 코로나19 이후 자취를 감췄다고 합니다.

[그리프 호프만/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 중령] "코로나 19 이전까지는 종종 대면접촉이 있었지만 코로나 이후엔 북한이 극도로 신경을 쓰면서 대면접촉을 꺼리고 있고 대신 판문각 안에만 있으면서 직통전화를 통해 통신을 하고 있고 밖에 나올 때, 심지어는 건물 안에 있을 때도 방호복을 입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정전협정 70주년을 맞은 전쟁과 대립의 상징 판문점.

[그리프 호프만/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 중령] "우리가 할 일은 정전협정을 잘 준수해서 한반도에 전쟁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고 평화가 지속되게 하는 것이고, 정전협정 70주년인 올해는 이를 기념하고 상기시키는 중요한 한해라고 생각합니다."

통일이 될 언젠간 남북의 통로와 대화의 창구로 우리 기억 속에 남을 것입니다.

통일전망대 이상현입니다.

이상현 기자(shon@mbc.co.kr)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replay/unity/6454214_2911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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