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스러운 거미' 감독 "이란사회 비추는 거울 같은 영화 되길"

김정진 2023. 2. 11.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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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 아바시 서면 인터뷰…"정부 방해에 요르단서 촬영"
칸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이란 여성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증거"
알리 아바시 감독 [판씨네마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김정진 기자 = 영화 '성스러운 거미'는 이란 사회에 관한 영화다. 이란 출신 감독이 만들고 이란 배우들이 출연했다. 하지만 작품 정보란의 국가명에는 덴마크, 독일, 스웨덴, 프랑스 등 4개 나라의 이름이 적혀있다.

2000년대 초 이란 마슈하드에서 한 남성이 16명의 여성을 살해했던 사건을 다룬 이 작품은 이란 정부의 방해로 요르단에서 촬영됐다. 연쇄살인마 사이드 하네이를 연기한 메흐디 바제스타니는 지난해 칸영화제 이후 지금까지 고국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성스러운 거미'를 연출한 알리 아바시 감독은 최근 연합뉴스와 가진 서면 인터뷰에서 "이란 정부는 영화 제작의 거의 모든 단계에서 우리를 막고 방해하려고 했다"고 밝혔다.

"(정부가) 법원 소환장을 보내기도 했어요. 제작진을 위협했고, 정부 고위층은 영화에 대해 나쁜 소문을 퍼뜨리고 공개적으로 비난하기도 했죠. 이란 정부의 방해로 튀르키예에서의 촬영도 어려워져 요르단 암만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치·안보적 이유로 이란에서 많은 소품을 가져올 수도 없었죠."

영화 '성스러운 거미' [판씨네마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실제 '사이드 하네이'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 이란에 머무르고 있었다는 아바시 감독은 "당시 범인이 체포되고 난 뒤에 일부 사람들이 그를 영웅으로 칭송하고 있다는 기사를 접하고 나서부터 사건에 흥미를 갖게 됐다"고 영화를 만든 계기를 설명했다.

사이드 하네이는 자신이 살해한 것은 '부정한' 성판매 여성이며, 그들을 죽인 것은 종교적 의무를 수행하기 위함이었다고 주장했다. 당시 이란 사회 일각에서는 그의 범죄를 정의롭다고 여기고 옹호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2002년에 발표된 (사이드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았을 때는 더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인터뷰 영상 속 사이드 하네이는 다소 순진해 보일 정도였어요. 그는 카메라 앞에서도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말들을 했고, 저지른 죄에 비해 행복하고 평화로워 보였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정직함까지 느껴지는 태도에서 더 복잡한 심경을 갖게 됐죠."

영화 '성스러운 거미' [판씨네마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영화는 범인이 아닌 그를 쫓는 기자 라히미(자흐라 아미르 에브라히미 분)의 시선에 초점을 맞췄다.

감독은 "이 사건에서 제가 느낀 진정한 미스터리는 평범한 아버지이자 남편, 사회인이 어떻게 여성들을 공개적으로 죽이며 이중생활을 했느냐에 대한 것이었다"며 연출 의도를 밝혔다.

또 관객이 이란의 여성들과 사건 피해자들이 느꼈던 폭력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범죄 과정을 생생하게 묘사했다고 말했다.

"저는 이런 종류의 영화에서 등장하는 폭력은 폭력적으로 묘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관객에게 충격과 실감 나는 느낌을 줘야 하기 때문이죠. '성스러운 거미'는 사회 문제에 비판적인 태도를 가진 영화이기 때문에 관객이 느긋하게 (의자에) 기대 팝콘을 보면서 영화를 본다면 제가 연출을 잘못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의 중심에는 감독뿐 아니라 자흐라 아미르 에브라히미, 메흐디 바제스타니라는 두 배우가 서 있다.

라히미 역을 맡은 자흐라 아미르 에브라히미는 사생활 영상 유출로 2006년 이란을 떠나 프랑스에서 망명 생활을 시작했다. 이란의 '국민 배우'로 불렸던 메흐디 바제스타니는 이 작품에 출연한 뒤 제작진 보호 아래 베를린에 체류 중이다.

감독은 메흐디 바제스타니에 대해 "그가 이란으로 돌아가게 될 경우 직면해야 할 상황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면서 "그가 이 영화에서 보여준 것들은 이란 정부가 허용하는 것을 훨씬 뛰어넘은, 이제껏 그 어떤 이란 배우도 해본 적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영화 '성스러운 거미' [판씨네마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자흐라 아미르 에브라히미는 '성스러운 거미'로 지난해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아바시 감독은 "그의 개인적 스토리와 칸영화제 수상은 이란 여성들에게 그들이 무엇을 할 수 있고 어떤 것을 성취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와도 같다"며 기쁨을 드러냈다.

사이드 하네이 사건 이후 20여 년이 지난 지금, 이란에서는 지난해 시작된 일명 '히잡 시위'가 지속되고 있다. 감독은 그 뜻을 함께하기 위해 다양한 영화제와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고 밝히며 "중요한 것은 어떤 행동을 하든 이슬람 정권을 향한 압박을 그치지 않는 것"이라는 소신을 밝혔다.

다만 이 시위가 20년 전과 비교해 이란의 전반적인 인권 의식이 더 발전했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했다.

"소셜미디어(SNS)의 성장과 인터넷의 보급, 휴대용 TV 등 다양한 방법으로 국경 밖 세상과 소통하게 되면서 많은 사람이 남녀 사이의 불평등에 대해 더 날카로운 시각을 지니게 됐습니다. 우리가 지금 이란에서 직면하고 있는 것들, 이란의 거리에서 일어나고 있는 용감한 남성과 여성의 혁명이 그 증거죠. 저는 이 영화가 이란 사회를 비추는 거울 같은 영화가 되길 바랍니다. 그 거울이 깨끗하지 않고 부서져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 영화를 통해 이란에서 사는 사람들의 상황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알리 아바시 감독 [판씨네마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대리모를 소재로 한 데뷔작 '셜리'(2016)부터 남들과 다른 외모를 가진 두 사람의 사랑을 그린 '경계선'(2018), 이란 사회의 병폐를 파헤친 '성스러운 거미'까지. 아바시 감독은 작품을 통해 끊임없이 우리 사회가 가진 문제들을 그려내고 있다.

그는 "차기작은 아직 결정하지 않았지만 동시대의 이야기를 다루고 싶다"고 말했다.

"영화감독으로서 제 목표와 의무는 우리 삶의 현실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말하는 현실은 '현실주의'(realism)와는 다릅니다. 현실은 다층적입니다. 시적이면서도 잔인하고 환상적이고 거칠면서 따분합니다. 복잡하며 항상 객관적인 것도 아닙니다. 저 자신을 위해서나 다른 사람을 위해서 영화를 통해 그런 것을 어떤 식으로든 표현해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영화감독으로서는 충분할 것 같습니다."

stop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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