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줄줄이 문 닫는데…국내선 백화점 '승승장구' 왜?
일본의 대표적 백화점들이 줄줄이 문을 닫고 있다. 일본 시부야의 상징 '도큐백화점'이 1월말 문을 연 지 55년만에 문을 닫았다. 훗카이도 오비히로시의 후지마루백화점도 122년의 역사를 뒤로 하고 폐점했다. 국내 백화점의 지난해 연간 판매액이 통계작성 이후 처음으로 대형마트를 앞선 것과 대조적이다.
6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백화점 연간 판매액은 37조 7674억원(추정치)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34조 7738억원을 기록한 대형마트의 연간 판매액을 앞질렀다. 2015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처음이다.
또 다른 통계에서는 이같은 현상이 2021년부터 이미 관측됐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집계하는 '연간 주요 유통업체 매출동향'에 따르면 오프라인 유통 채널의 매출 순위는 2021년부터 백화점-편의점-대형마트 순으로 바뀌었다.
지난해에도 백화점이 온오프라인 유통채널에서 차지하는 매출비율은 17.8%로 48.6%의 온라인 매출을 제외하면 오프라인 채널 중에 가장 많았다.
2019년까지만 해도 백화점의 오프라인 유통 매출 순위는 대형마트에 밀려 늘 대형마트-백화점-편의점 순이었다. 백화점은 코로나19의 여파로 오프라인 유통 매출 순위를 편의점에게 내주며 3위로 밀리기까지 했다.
백화점은 코로나19 유행 초반 사회적 거리두기와 경기불황 등에 대한 우려로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유행 하반기에 들어설수록 해외여행이 막힌 소비자들의 대체소비처로 백화점이 떠올랐다. 증권, 코인 등 자산시장의 호황으로 두둑해진 소비자의 주머니가 명품과 같은 고가품으로 한꺼번에 쏟아졌다. 실제 국내 주요 백화점에는 명품을 사기 위해 영업시간 전부터 줄을 서는 '오픈런'이 적잖게 연출 됐다
반면 일본에서는 백화점 산업은 쇠락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지난달 31일 도쿄 시부야의 명소였던 도큐백화점 본점이 문을 닫았다. 같은 날 홋카이도 오비히로시 후지마루백화점이 폐점했다.
일본 백화점은 1980~1990년대 중산층 가정의 주말 나들이 장소였다. 1990년대에 시작된 장기 경기침체기인 '잃어버린 30년'을 거치며 매출이 줄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결정타가 됐다. 1999년 전국 311곳에 달하던 백화점 수는 20년여 만에 40%가량 줄어들었다
지난해부터 일본도 코로나19 유행이 완화되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됐으나 한국과는 양상이 달랐다. 코로나19 이전부터 이어져 온 장기간의 경기불황으로 인해 코로나19가 완화된 시점에도 일본에는 '보복소비'와 같은 양상이 일어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일본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코로나 팬데믹 때 저축을 늘린 일본인들이 코로나가 끝나가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저축액을 찾아 쓰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본인들이 쌓아놓은 가계의 코로나 저축은 국내총생산(GDP)의 10%를 넘는 수준까지 불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백화점의 '변신'도 한국과 일본 백화점의 성적표를 갈랐다고 분석한다. 국내 백화점들은 단순히 물건을 파는 역할에서 벗어나 고객의 수요에 맞는 다양한 체험형 콘텐츠를 도입해 고객이 백화점에 머무를 수 있도록 한 반면 일본 백화점은 물판점의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부산 해운대에 있는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의 경우 백화점 본관은 연면적 29만3500㎡(8만8784평)에 영업면적 14만762㎡(4만2580평)에 달하는데 이 중 1만여평을 아이스링크, 스파, 골프레인지, 서점, 극장 등 물건 판매와 관계없는 비물판시설로 채웠다. 대전 신세계백화점은 '대전신세계 Art&Science'로 명명하고 내부에 과학관을 만들었고 신세계백화점 대구점에는 국내 백화점 최초로 아쿠아리움을 입점시켰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지난해 서울 여의도에 더현대서울을 출범하면서 '백화점'이라는 단어를 과감히 떼어냈다. 백가지 물건을 파는 곳, 백화점이란 틀에서 벗어나겠다는 의미다. 36년 전 현대백화점 압구정 본점 개장 때부터 단 한 번도 떼 본적 없던 '백화점' 단어를 지운 것은 백화점 업계의 지향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실제로도 총 영업면적 가운데 물판 비중은 30% 밖에 되지 않는다. 나머지 공간은 다양한 체험을 제공하는 공간으로 채워넣었다.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한국의 경우 체험형 컨텐츠를 통해 백화점을 지역 랜드마크로 만드는 전략을 십수년 전부터 펼쳐왔다"며 "그 지점이 일본과의 차별점"이라고 설명했다.
김민우 기자 minuk@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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