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점 11년주기 알아내고 혜성도 추적...고려와 조선의 기록에 남은 당대 최고 천문학 연구들
태양 흑점 관측… 11년 주기 들어맞아
“현대 천문학의 시간 범위 넓혀줄 소중한 자료”
3월 11일 신묘
밤 5경 파루 이후에 혜성이 허수(虛宿) 별자리 영역에서 보였다. 혜성이 이유(離瑜) 별자리 위에 있었는데 북극에서의 각거리는 116도였다. 혜성의 형태나 색깔은 어제와 같았다. 꼬리의 길이는 1척 5촌이 넘었다.
전직장 신 김종부, 전정 신 이담, 겸교수 신 박재소, 전검사 신 김태서, 측후관부사과 신 정상순
조선 천문 담당 관청인 관상감에서 기록한 천문 관측 자료 ‘성변측후단자’의 내용이다. 이 내용은 조선의 천문학자들이 영조 35년인 1759년 4월 조선 상공에 나타난 핼리혜성을 관측한 것이다. 한국천문연구원과 한국천문학회, 한국우주과학회, 연세대는 최근 성변측후단자를 유네스코(UNESCO) 세계기록유산에 올리기 위한 절차에 돌입했다.
과거 조선시대 천문학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성변측후단자는 현대 천문학자들이 봐도 관측이 정교한 수준이라고 한다. 성변측후단자가 아니더라도 우리 역사에서 천문학과 관련된 자료와 유산은 적지 않다. 별을 관측한 첨성대나 천상열차분야지도가 대표적이다. 조선비즈는 고천문학 자료를 연구하고 있는 양홍진 천문연 고천문연구센터장과 역사 속 천문학을 살펴봤다.
조선에는 천문과 기상을 담당하는 관청 관상감이 있었다. 천문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은 양반이나 중인이었다. 관상감에 들어가기 위해선 천문 시험을 쳐야 했다. 천문 현상을 관측하는 것은 왕실에 중요하기 때문에 주로 관측은 궁 내부에서 이뤄졌다. 다만 일식이나 월식처럼 특이한 현상은 강원도 금강산이나 강화도 마니산, 서울 남산에서 관측했다.
성변측후단자는 왕실 산하 관청이 핼리혜성을 관측한 자료 중 가장 오래됐다. 총 35명의 천문 관료가 관측에 투입됐고, 25일 동안 혜성의 위치, 크기, 색 변화를 기록했다. 별자리에 따라 바뀌는 핼리혜성의 위치, 북극성에 대한 각도를 적어놔 지금도 궤도 계산이 가능하다.
관상감에서는 혜성뿐만 아니라 초신성, 운석과 같은 특이한 천문 현상을 체계적으로 기록했다. 천문 관측 때는 전날 관측자가 무조건 포함된다. 관측 전날에는 천문 현상이 어땠는지 일종의 ‘인수인계’를 하기 위해서다. 기록된 천문 현상은 현재 대통령 비서실 격인 승정원을 거쳐 왕에게 보고된다. 과거 천문 관측 기록이 체계적으로 남아있을 수 있는 이유다.
조선시대에만 천문학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삼국시대와 고려 때도 천문학은 왕실에게 중요한 영역이다. 양 센터장은 또 다른 주목해야 할 기록으로 ‘태양의 흑점’ 관측을 꼽았다. 역사에 남아있는 흑점 관측 기록 가운데 현재 알려진 11년 주기가 가장 잘 들어맞는다는 설명이다. 당시에는 천문학 관료가 자수정을 해에 덧대 흑점을 관측했다. 관련 기록은 고려의 역사서 ‘고려사’에도 나온다.
1160년 8월 28일, 해 가운데에 흑점이 나타났다.
1171년 9월 20일, 해에 흑점이 나타났는데 크기가 복숭아 같았다.
태양의 흑점은 태양자기장의 강도를 반영한다. 흑점 수나 크기가 변하면 지구에 태양복사에너지에도 변화가 있다. 태양의 흑점을 관측한 기록이 오래 남아있을수록 태양의 활동에 따라 지구가 뜨거웠는지, 추웠는지 추정할 수 있다. 나아가 앞으로 지구의 기후에 태양이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물론 중국에도 태양 흑점을 관측한 기록이 있지만, 주기가 정확하지 않아 기록의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양 센터장은 과거의 천문학 자료를 분석하는 것은 현대 과학에서도 매우 가치가 높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대 천문학에서의 과거 기록은 굉장히 한정적”이라면서 “과거의 천문 자료가 얼마나 잘 남아있는지에 따라 현대 천문학에서 연구할 수 있는 시간적 범위가 달라진다”고 말했다.
앞서 성변측후단자에 기록된 핼리혜성의 기록도 우주의 변화를 추론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 핼리혜성의 주기는 76년인데, 혜성의 주기가 같다는 것은 태양계 내부에서 한 번도 부딪히거나 간섭받지 않았다는 뜻이다. 과거의 관측 기록으로 주기를 파악하고 태양계의 안정성을 알 수 있다는 게 양 센터장의 설명이다.
양 센터장은 “성변측후단자에는 케플러 초신성 기록도 남아있는데, 별이 폭발한 시점을 알면 흔적들이 팽창하는 속도를 추정할 수 있고 그 주변 우주 공간의 밀도를 알 수 있다”며 “옛날 기록으로 우주의 진화를 알 수 있는 만큼 과거 천문 자료는 매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한국 전통 천문학은 일제강점기에 들어서고 관상감이 없어지면서 명맥이 끊겼다. 그 자리는 조선기상청이 차지했고, 과거 천문 기록을 연구하는 이가 없어졌다. 성변측후단자도 이 과정에서 관리가 소홀해져 네 권만 남았다. 다행히 현재는 천문학계와 과학사학계를 중심으로 활발한 연구가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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