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천석 칼럼] 이재명 대표 ‘기소’와 ‘불기소’ 사이 中間은 없다

강천석 고문 2023. 2. 11.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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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 대표 배임·부패방지법 위반 혐의로 ‘中道’ ‘協治’ 물 건너가
총선 승리 절박한데 ‘윤심’·'당심’·'민심’ 호사스러운 ‘입 사치’

미국 대통령이 순방(巡訪) 외교를 마치고 전용기가 워싱턴공항에 접근할 무렵, 대통령이 조종사에게 쪽지를 보냈다. 크게 몇 바퀴 더 돌다 착륙하라는 것이었다. ‘쟁점 법안 심의는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대통령에 대한 야당의 인신 공격성 발언이 더 거세졌다’는 ‘의회 상황 보고’라는 전문(電文) 한 통 때문이었다. 착잡해진 대통령은 전용기 문이 열리기 전에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기에 착륙 시간을 늦추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미국 정치는 우리 국민에게 별 위안이 되지 않는다.

국회 전경. /뉴스1

한국은 50년 전 미국처럼 누구도 위협하지 못할 세계 최강국이 아니다. 며칠 전 평양에서 김정은 군대는 한국 공격용 전술핵 부대 행진을 벌였다. 북한이 한국을 핵무기로 공격할 경우 미국이 보복하겠다는 미국 약속을 흔들기 위한 대륙간탄도미사일도 과시했다. 국민 76.6%가 자체 핵무장을 지지할 만큼 북한 핵무기는 실존적 위협이 됐다. 일본은 독일과 더불어 핵무기를 만들려고 하면 언제든지 최단 시간에 만들 수 있다. 북핵 앞에 발가벗은 나라는 한국이다. 우리가 깊이 고민해야 김정은도 핵 위협의 역효과를 걱정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100% 대통령’이 아니다. 정부 정책이 국회에서 법 제정으로 뒷받침받지 못하면 ‘온전한 대통령’이라 하기 어렵다. 그런 뜻에선 ‘윤석열 정부’ ‘윤석열 시대’는 아직 열리지도 못했다.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 의결에서 보듯 국회는 민주당 손아귀에 있다. 정부 제출 각종 개혁 법안은 국회 의안(議案)창고에서 잠자고 있거나, 법안 본질이 훼손돼 있으나마나한 법이 돼버렸다. 대통령은 동분서주(東奔西走)하지만 열매 맺는 건 보기 어렵다. 장·차관 임명권과 법률의 시행령 개정만으론 나라를 끌고가는 데 한계가 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생활수준·교육과 의료 혜택은 지난 70년 동안 흘린 땀 덕분이다. 한국의 해외 관광객 숫자가 일본보다 많다. 기업가는 창의력(創意力)을 발휘해 대담·신속하게 투자하고, 노동자는 기술 숙련도와 근로 기강을 세우고, 대학과 연구소는 밤늦도록 연구실 불을 밝혀 기술을 캔 성과다.

문재인 정부 들어 모든 게 거꾸로 흘러갔다. 문 정부 시절 국회는 4047건의 기업 규제 법안을 발의(發議)해 기업 발을 묶었다. 하루 2.8건꼴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의 3배 가깝다. 상당수는 위헌(違憲) 조항을 담고 있다. 그러는 사이 반도체는 중국 추격이 거세졌고, 일본은 미국·대만과 기술·자본을 공유(共有)하며 정상 탈환을 선언했다. AI와 로봇은 미국·중국·일본·독일에 크게 뒤지고, 반도체보다 큰 시장이 열리는 바이오 생명공학은 제대로 발도 담그지 못했다.

여기까지 이르면 민주당·좌파 지식인·좌파 언론은 ‘중도(中道)정치’와 ‘협치(協治)’라는 단어를 꺼낸다. 문 정부 시절 그들이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던 말이다. ‘중도’는 원래 ‘올바른 길’이란 뜻이고 ‘중간’은 ‘이것과 저것 사이의 가운데 지점’을 가리킨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혐의 사실에 대한 ‘기소’와 ‘불기소’ 사이의 ‘중간’은 없다. ‘중도’는 기소가 ‘바른 길’이면 그 길을 가고, 불기소가 ‘바른 길’이면 그 길을 가는 것이다. 반대로 다른 현안에 대해 민주당 주장이 옳으면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입장을 바꿔 야당 주장을 채택하는 것이 ‘중도 정치’다. ‘중도’가 가능해야 ‘협치’도 가능하다.

엄밀하게 말하면 문 정부 검찰이 마지못해 열었다가 급히 덮어버린 이 대표 수사에서 업무상 배임·부패방지법·제3자 뇌물수수라는 혐의의 얼개가 드러나는 순간 ‘중도 정치’와 ‘협치’는 물 건너갔다. 어떻게 대통령과 민주당 대표가 얼굴을 맞대고 여야 영수회담을 연출(演出)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대통령과 집권당 책임은 한 근(斤)도 가벼워지지 않는다. ‘온전한 대통령’ 역할 한 번 못하고 ‘반쪽짜리 대통령’으로 시종(始終)하고 만다면 뽑아준 국민에 대한 무책임이다. 국민과의 약속을 이행하려면 내년 4월 총선을 ‘온전한 대통령’으로 가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 상황에서 윤심(尹心)·당심(黨心)·민심(民心) 운운은 호사스러운 ‘입 사치(奢侈)’에 지나지 않는다. 대통령 주변의 낭설(浪說)과 유언비어 가운데 사실이 몇 그램(g)이라도 들어있는 것이 없나 샅샅이 뒤져봐야 한다. 뽑아준 국민 가슴에 풀리지 않을 멍울을 남겨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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