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구조대 떠나버려” 시민들 맨손으로 잔해 파헤쳐[지진 참사 현장 르포]

아디야만=강성휘 특파원 2023. 2. 11.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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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디야만(튀르키예)=강성휘 특파원

강진 발생 닷새째인 10일(현지 시간) 튀르키예(터키) 남부 도시 아디야만. ‘외지인’인 압둘 케림 씨(50)는 8층짜리 아파트가 완전히 무너져 내린 곳에서 목장갑만 낀 채 건물 잔해를 뒤지고 있었다. 혹시 모를 생존자를 찾는 중이다. 케림 씨는 7일 하카리에서 차로 9시간을 달려 이곳에 왔다. 그는 “정부 구조대원들은 생체 신호가 잡히지 않으면 이내 현장을 떠난다. 우리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며 다시 분주하게 손을 움직였다.

진앙 가지안테프에서 180km 떨어진 아디야만은 도시 전체가 융단 폭격을 맞은 듯했다. 건물 잔해를 걷으며 생기는 먼지와 살아남은 이들을 위해 피운 모닥불 연기로 공기는 잿빛이었다. 구조 현장에는 케림 씨처럼 자발적으로 나선 시민이 대다수를 이뤘다. 이들은 집에 있는 삽이나 망치를 들고 튀르키예 각지에서 모여들었다. 민간 구조대원인 유소프 설하트 씨(21)는 “인력이 부족할뿐더러 시신을 수습한다 해도 신원을 모르니 망자를 위해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게 괴롭다”고 말했다.

지진 발생 닷새째인 10일(현지 시간) 오전 튀르키예 남동부 아디야만에서 맨손으로 무너진 건물 콘크리트 조각과 흙을 파헤쳐 매몰자를 꺼내고 있다(왼쪽 사진). 아디야만 도심 시계탑 시곗바늘이 나흘 전 규모 7.8의 강진이 덮친 바로 그 시간, (오전) 4시 17분에 멈춰 있다. 아디야만=강성휘 특파원 yolo@donga.com

폐허 속 ‘4시 17분’에 멈춘 시계… 거리 곳곳 이불에 싸인 시신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
봉사자들 10분새 시신 3구 수습
중장비 부족해 구조작업 더뎌
생존자들 “우린 버려졌다” 분통



“여기 또 있다!”

야트막한 언덕 높이의 건물 잔해 위에서 맨손으로 콘크리트 조각과 흙을 파헤치던 구조대원이 소리쳤다. 기자가 지켜본 10분 새 세 번째 시신이었다. 함께 딸려 나온 보라색 이불에 시신을 말아 아래로 내려보냈다. 지켜보던 이들 모두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머리를 숙여 고인에 대한 예를 갖췄다. 이어 한 구조대원은 “대부분 자다가 봉변을 당했다. 주변에 같이 자던 다른 사람이 있을지 모르니 발밑을 조심하라”고 연신 기자에게 당부했다.

●골목 곳곳 신원 확인 못한 시신들


10일(현지 시간) 오전 9시, 아디야만 도심 원형교차로 안에 서 있는 시계탑의 시곗바늘은 4시 17분을 가리킨 채 멈춰 있었다. 6일 규모 7.8의 강진이 튀르키예 남동부를 덮친 바로 그 시간이었다. 아수라장 같은 상황도 나흘 전에 비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폐허가 된 잿빛 도시, 10분에 한 대꼴로 질주하는 앰뷸런스 사이렌이 이재민의 흐느낌을 덮었다.

기자가 찾은 8층짜리 아파트 붕괴 현장에서 부녀로 추정되는 시신이 2분 간격으로 수습됐다. 딸은 어려 보였다. “너무 작아, 너무 가벼워.” 구조대원이 눈물을 흘렸다.

골목 곳곳에서 잔해 속에서 수습한 뒤 임시로 모아 둔 시신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신원이 확인돼 이름표가 붙은 시신보다 그렇지 않은 시신이 더 많았다. 시신 담는 검정 포대(보디백)가 모자라 담요로 대충 말아둔 시신도 적지 않았다. 민간 구조대원 유소프 설하트 씨(21)는 보디백에 담겨 바닥에 누운 시신들을 가리키며 “내일까지 신원이 확인되지 않으면 정부에서 임의대로 처리한다”고 전했다.


이때 히잡을 두른 채 울고 있는 여성을 조수석에 태운 앰뷸런스가 현장을 지나쳐 갔다. 생존자를 싣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를 보던 메흐메트 씨(32)가 “아직 찾지 못한 내 누나와 매형도 저렇게 살아 돌아올 거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성난 가족들 “아디야만은 버려졌다”

이곳 현장에서 만난 구조대원 100여 명은 대부분 아디야만 주민이거나 타 지역에서 온 봉사자들이었다. 다른 주택 붕괴 현장에서는 이웃 도시에서 온 주민들이 가져온 모종삽과 니퍼, 망치 따위로 쓰러져 있는 콘크리트 더미를 걷어내고 있었다. 안전모를 쓴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공사용 장갑이나마 낀 사람도 별로 없었다.

인근 도시 바트만에서 온 무사 바이담 씨(32)는 “중장비가 너무 부족하다. 밤이면 전기도 없어 수색 작업이 어렵다”고 말했다. 20m 떨어진 또 다른 건물 잔해에서 만난 데브란 카라엘 씨(41)는 “여기 있는 크레인이나 굴착기 모두 실종자 가족들이 돈을 내서 빌린 것”이라고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실종자 가족들은 “정부 지원은 도대체 언제 오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부모 형제자매 등 가족 7명을 잃은 알리 바란 씨(23)는 “나흘이 지났는데 구조대도, 경찰도, 군인도 보지 못했다”면서 “아디야만은 버려졌다”고 말했다. 여동생 가족 7명이 여전히 잔해 밑에 있다는 율리아 악토프렉 씨(53)는 “심지어 아디야만 주민들조차 이곳을 떠났다”며 “정부가 구호 음식을 보내고 있는데 필요 없다. 구조 장비를 보내 달라”고 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이날 아디야만 내 이재민을 위한 구호 천막을 찾아 성명을 발표했다. 그는 “너무 많은 건물이 손상돼 신속하게 정부가 개입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부 사람들이 가게를 털고 있는데 비상사태하에서 이런 일을 저지른 사람들은 응당한 처벌을 받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디야만=강성휘 특파원 yol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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